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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만난 지 하루 만에 우리는 결혼을 약속했다

by 팀클 세라 Apr 0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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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본 자료에서, 결혼 전에 동거한 커플의 이혼율이 그렇지 않은 커플보다 높았다는 통계를 본 적이 있다. 그 자료가 지금도 유효한지는 모르겠지만, 사람과의 관계는 길다고 좋은 것도 짧다고 나쁜 것도 아닌 거 같다.


나는 지금의 배우자를 처음 만나고 그 이튿날 결혼을 결정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주위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정말 그렇게 한눈에 반한 거였냐고... 아니다. 나에게 그런 불같이 타오르는 감정 같은 것은 조금도 없었다.


그때 내 나이는 서른셋.

해외 취업으로 싱가포르에 정착한 지도 벌써 3년 반이 흘렀다.

해외에서 싱글의 삶은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여유로웠다. 그리고 한국이었다면 복잡했을 법한 인간관계도 그곳에서는 매우 단순했다. 나와 함께 일하는 회사 동료들 몇몇과 싱가포르교회 지인분들이 전부였으니까...  홀가분하고 자유로웠다. 적어도 처음 2년간은 이국적인 생활이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순간순간 밀려오는 외로움과 보글보글 매콤한 김치찌개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한국어로 누군가와 마음껏 수다를 떨고 싶은 충동만 잘 견딜 수 있다면, 타국에서의 싱글생활도 나름 괜찮았다.


 독신주의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애써 결혼을 해야 한다는 생각도 딱히 없었다. 20~30대에는 그냥 나의 커리어를 쌓는 일에만 몰두했고 한 단계씩 성장하고 있어서 나름 뿌듯해하고 있었다.


회사 동료 중 인도인 친구가 있었다. 그녀는 나보다 20살 이상이 많았지만 어차피 서로 속내를 다 드러내고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정도로 가까왔기에 나이와 관계없이 우리는 서로를 친구(friend)라 했다. 그 친구가 한 번은 나에게 깊은 한숨을 쉬면서 답답함을 호소했다. "세라, 나 사실은 결혼이 정말 하고 싶어. 하루하루가 외로워서 견딜 수가 없어. 앞으로도 이렇게 쭉 혼자 살아야 한다는 게 너무 두려워". 길고 풍성한 속눈썹 아래 왕방울처럼 크고 진한 눈에서 금방이라도 눈물샘이 터져 나올 기세였다.


평소 너무나 밝은 성격에 나랑도 늘 즐겁게 지냈던 친구였었기에 50이 넘어 혼자 살면서 외롭고 힘들다는 그 고백이 살짝 충격으로 다가왔다. "노력해 보면 안 돼? 주위에 어디 좋은 사람 없을까?" 나름 위로라도 될까 싶어서 조심스레 물었다. "Never..." 주위에 괜찮은 사람은 이미 결혼을 했고, 자기와 맞는 나이 또래는 아예 찾을 수도 없단다.  나이에 결혼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고...  본인처럼 그렇게 적령기 놓쳐서 후회하지 말고 기회 되면 꼭 결혼하길 바란다는 당부도 해주었다. 그녀의 뼈아픈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 진심 어린 충고는 날 내 마음에 깊이 새겨졌다.

  

결혼이 내 인생의 최종 목적지가 될 수는 없지만 살아가는 중에 만일 삶의 동반자가 될만한 사람을 만나면 그 기회를 놓치지 말자는 다짐을 했다. 하지만 아직 나조차도 내가 누구인지 잘 모르는데, 누군가를 내 인생의 짝이라고 확신하는 건 참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냥, 나와 신앙관이 같은 사람이 내게 결혼하자고 먼저 손을 내밀면 그 사람이 바로 하늘이 내게 보내준 짝꿍이겠거니, 그렇게 믿기로 했다.


2007년 4월 중순, 싱가포르에서 휴가차 일주일간 한국에 들어왔다. 회사에서 맡은 업무들이 많고 바빠서 이참에 한국을 그냥 정리하러 들어온 터였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가족들, 친구들을 만나고 내 물건과 옷가지들을 정리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제 3일 후 싱가포르로 가면, 한국에는 다시 올 일이 없을 것 같아서 싱가포르행 비행기도 편도 티켓으로 예매했다.


내가 한국에 잠깐 들어다는 소식을 들었는지 평소 연락이 뜸했던 사촌언니가 전화를 주셨다. 시간 되면 떠나기 전에 선이나 한번 보고 가는 게 어떻겠냐고 하셨다. 모처럼 언니도 뵐 겸 가볍게 약속을 했다. 언니를 먼저 만나서 약속된 장소로 이동을 했다.

"언니, 근데 지금 만나러 가는 그분 어떤 분이시래요?"

“글쎄... 나도 잘은 모르겠어. 아, 홀어머니에 누나가 다섯 있다고 하더라.”

"아. 그렇구나"  내가 들은 정보는 이게 전부였다. 나에게 선을 주선해 주는 언니도 상대방에 대해 딱히 아는 건 없다.    


우리를 소개해 주신 양쪽 어른 분들은 처음 만난 우리가 남매처럼 많이 닮았다고 하셨다. 커피숍에서 우리의 첫 만남은 최대한 예의를 갖추어 인사말 정도와 몇 가지 가벼운 대화 정도였다. 이미 너무 늦은 시간이라 한 시간 남짓 보고 헤어졌다. 이틀 후 한국을 떠나야 했기에 이 만남에 크게 의미를 두지도 않았다.


그런데 다음 날, 늦은 퇴근 후 다시 한번 보자는 연락이 왔다.

 "아니 듣기에 휴가차 싱가포르에서 잠깐 나오신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내일모레 다시 들어가신다고요... 앞으로 계속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가 없을 텐데 왜 저랑 이런 만남을 하신 겁니까? 이럴 거였으면 처음부터 자리를 만들지 않으셨어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계속 만나서 교제를 하고 싶습니다."


별생각 없이 만나러 나갔던 나의 행동에 순간 아차 싶었다.

살짝 원망이 섞인 말이었지만 앞으로 나를 계속 만나고 싶다는 제안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왠지 어제의 그 첫 만남에 평생 책임을 져야 할  같이 무게가 느껴졌다. 그 짧은 찰나에, 일단 나는 모든 것을 결정해야 했다. 오늘의 만남을 없던 일로 하고 그냥 계획대로 싱가포르에서 일상을 계속 이어갈지, 아니면 이 사람과의 결혼을 계획하고 한국으로 돌아올 것인지를...


갑자기 머릿속에서 결혼 기회를 놓쳤다며 울면서 후회하던 인도친구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나와 신앙관이 같은 남자가 나타나서 내게 먼저 손을 내밀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결혼에 응하겠다고 생각했던 내가 아니었던가... 하늘이 내게 보내준 인연이 어쩌면 바로 이 사람이 아닐까도 생각했다.


 "음... 그럼 알겠습니다. 저 일단 싱가포르 가서 회사랑 집이랑 모두 정리하고 두 달 후쯤 한국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이렇게 답을 하기까지는 불과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돌아오겠다는 결정은 100프로 당신과 결혼을 하겠다는 번복할 수 없는 나의 굳은 약속이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나는 평생 살아갈 인생의 짝을 불과 이틀 만에 정해 버렸다.


그리고 다음 날 우리는 교회에서 결혼 날짜까지 확정했다. 모든 게 속전속결로 진행되었다. 결혼 날짜를 정했던 삼일째 되던 날도, 우리의 관계는 아직 너무 서먹했고 어색하기만 했다.  서로에 대해 아는 것도 거의 없었다. 그저 서로 간의 삶의 가치관과 신앙관이 좀 비슷하다는 것 그리고 그쪽은 2남 5녀 중 막내, 나는 2남 1녀 중 막내라는 것 정도가 전부였다. 이렇게 해서 우린 서로를 잘 모르는 채로 얼떨결에 운명처럼 결혼하기로 약속한 사이가 되어버렸다.


싱가포르에 가자마자 나는 직장 매니저들에게 한국에 결혼할 사람이 방금 생겨서 퇴사하고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그들은 나에게 만나자마자 바로 결혼하는 한국의 조선시대 전통문화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었냐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나는 싱가포르의 모든 생활을 두 달 만에 청산하고 그 해 6월 초 한국으로 돌아왔다. 사실, 너무나 성급하게 결정된 나의 소식에 우리 가족들의 반응은 냉냉했고, 나를 시험하듯 내가 만난 남자에 대해서 다양한 질문들을 쏟아냈다. 그런데 솔직히 나는 아는 게 거의 없어서 대답 한마디 제대로 하고 있었다.


"근데 그 사람 학교는 어디라니? 집안은? 재산은 얼마나 된대? 집은 있다니? 무슨 일을 한다는데?"

"........"


결국 우리 아빠는 내게 남자의 호적등본, 건강기록부, 회사 재직증명서, 대학졸업증명서와 심지어는 학교 성적표까지 서류들을 전부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이 정도면 거의 공무원 서류 심사 수준이었을 듯싶다. 아빠가 요구하시는 이 민감한 서류들을 상대편에 요청하기에는 너무나 조심스러운 관계였기에 나는 일주일간을 혼자서 말도 못 하고 끙끙거려야 했다. 나중에 내 고민을 전해 듣고는 흔쾌히 모든 서류들을 다 보내주었고 아빠는 그것들을 꼼꼼히 확인한 후에야 뒤늦은 결혼승낙을 해주셨다.


 우린 남들처럼 서로를 충분히 알아 볼만한 시간 없었고, 결혼을 전제로 한다면 마땅히 궁금해했어야 할 서로의 경제력, 직업, 학벌 등에 대해서도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다 지극히 평범했나와 비슷한 사람이라고 느꼈을 뿐이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신앙관이 같아서 하늘이 정해준 인연이겠다는 이성적인 확신이 섰을 뿐이었다. 콩깍지라도 씌었어야 했을 법한 그런 감정은 일체 없었다.


그 당시 남편은 내게 말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게 아니라 앞으로 영원히 사랑할 사람과 결혼하는 거라고.... 그랬다. 우리는 결혼 전 충분히 사랑해 본 적이 없었기에  결혼을 한 후 본격적으로 감정을 느끼고 좋아했다. 남편은 약속대로 내게 한결같은 사람이었다. 하늘이 정해준 인연일 거라는 확신대로 우리 부부는 신기하리 만큼 취향도, 성격도, 모든 면에서 잘 맞았다. 심지어는 몸무게까지 ㅠㅠ


 조선시대처럼 만나 결혼을 했다. 결혼을 해서야 그동안 못한 둘만의 데이트를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우리는 매일매일을 콩콩 설레는 감정으로 바라보았다. 출산과 육아도 함께 즐기는 색다른 이벤트였고 충만한 행복감은 늘 계속되었다. 사랑은 자연스레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것으로 표현되었고 다행히 지금까지 그렇게 이어져온 것 같기도 하다.  이제 우리의 결혼 생활은 어느새 벌써 18년째가 되어간다.


누군가는 나에게 정신 나간 무모한 결정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영화 같은 낭만이라 했다. 하지만 살면서  깊이 느끼게 된다. 결혼의 비밀은 눈에 보이는 데 있는 게 아닌 것임을. 오랜 연애의 기간으로 상대에 대해 너무 잘 알 필요도 없다는 것을. 그저 서로에게 받을 것을 기대하기보다 내가 상대를 얼마나 더 아껴주고  사랑해 줄지 나의 마음을 준비하는 게 결혼 아니었을지..


사랑은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는 감정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기로 마음먹은 두 사람이 매일의 일상 속에서 천천히, 단단하게 빚어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날, 2007년 4월 이맘때, 커피 한 잔 앞에서 내린 결정은 지금까지도 내 인생 최고의 선택으로 남아 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고, 갖추지 못한 것을 함께 채워가며, 우리 부부는 오늘도 이렇게 사랑을 이어가고 있다.


#결혼, #에세이 #사랑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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