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놓친 우리 부부가 간 곳
지난 11월, 우리 부부는 예년보다 훨씬 바쁜 시간을 보냈다. 남편은 회사 업무로 바빠 하루도 쉬는 날이 없었고, 나는 공모전 출품 준비와 사이버대 공부와 과제를 하느라 바빴다. 학기가 끝나지 않아 기말고사준비로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다. 하루하루가 ‘오늘만 넘기자’라는 마음으로 흘러가던 시기였다.
가을이 무르익어갈 때 잠깐 여유가 생기면 고령 다산 은행나무숲 축제를 다녀오자고 약속했었다. 샛노란 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그 풍경을 함께 보며 마음을 쉬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시간을 내지 못한 채 가을은 떠나가고 어느새 12월이 찾아왔다. 그런 우리에게 오랜만에 여유로운 하루가 찾아온 날이 12월 3일이었다.
“오늘 어디 가고 싶은지 생각해 봤어?”
“단풍나무도 은행나무도 잎이 다 떨어져서 어디 갈 곳이 있을까? 김천 직지사에 가서 산채비빔밥이나 먹고 올까?”
“거긴 너무 멀고 청도 찜질방 어때?”
남편이 의견을 내었다. 찜질방에 안 간 지 오래인데 그 말을 듣고 보니 이상할 정도로 마음이 흔들렸다. 바쁜 일상 속에서 수분이 빠져나간 듯 뻣뻣해진 몸과 마음이 ‘이제 좀 쉬어가라’고 말하는 듯했다. 요즘 폐업하는 찜질방이 많은 것 같아 먼저 인터넷으로 ‘알미뜸 찜질방’을 검색해 보았다. 다행히 10시 30분부터 영업을 시작한다고 되어 있었다. 눈곱만 살짝 떼어내고 채비를 하였다.
청도 알미뜸 찜질방으로 가기 위해 대구에서 차를 몰고 가창을 지나 팔조령을 넘어야 한다. 아침을 먹지 않은 남편의 제안으로 가창 대표 음식인 만두와 꽈배기를 차에서 간단하게 요기했다.
구불구불한 팔조령을 지나 찜질방에 도착했다. 평일인데도 주차장에는 차가 제법 많았다. 알미뜸은 건물 자체는 깔끔한 현대식 구조이지만 주변 조경이나 색감이 전통적인 한옥 이미지이다. 넓은 마당과 주차장이 나란히 펼쳐져 있어 탁 트인 느낌이다. 지대가 살짝 높고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어 시야가 시원하고 자연 풍경 그대로를 즐길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입구를 지키듯 서 있는 키 큰 소나무들은 몇 년 만에 온 우리를 반겨주는 것 같았다.
입장료는 성인 1만 5천 원으로 예전보다 조금 오른 듯했다. 찜질복으로 갈아입고 점심을 먹으러 대나무 오솔길을 따라 식당으로 향했다. 예전에는 오리구이를 먹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한식당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찜질방 내부 식당으로 발길을 돌렸다. 남편은 뜨끈뜨끈한 소고기 국밥을 시키고 나는 잔치국수를 주문했다. 국물에서 올라오는 열기와 함께 피곤이 스르르 녹아내렸다.
식사를 마친 뒤, 저온 찜질방에 가서 몸을 이완시키다가 곧 한증막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증막은 몇 년이 지나도 변함없었다. 들어서자마자 열기가 얼굴을 감쌌고, 바닥에 눕자마자 마치 몸속 깊이 잠들어 있던 피로가 열에 녹아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주말에는 사람들이 많아서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던 공간이지만 평일은 한적했다. 똑바로 누워 허리를 쭉 펼 수 있는 것만으로도 큰 호사처럼 느껴졌다. 땀은 금세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아, 이 맛에 찜질방 오지.”
남편의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땀을 쏟아낸 뒤 야외산책로로 나갔다. 바람이 많이 부는 영하의 날씨였기에 오래 머물 수는 없었다. 잠시 마주한 겨울바람은 마치 뜨거운 한증막과 대조되는 또 하나의 치유였다. 봄과 가을에는 흔들리는 대나무 숲이 바람결을 따라 부드럽게 춤추는 모습을 잘 볼 수 있었는데, 이날은 바람이 너무 매서워 오래 감상할 수 없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는 찜질방은 사실상 ‘국민 여가 공간’이었다. 1997년 외환 금융위기 이후 저렴하고 부담 없는 가족 단위 여가 공간으로 인기몰이를 했다. 대형찜질방이 24시간 운영하면서 연인들의 데이트코스나 가족들의 모임 공간으로 사랑을 많이 받았다.
특히 친정엄마가 살아계실 때, 대구 근교의 참 숯가마 찜질방은 거의 빠짐없이 다녔다.
“무릎이 시릴 때는 찜질이 최고다.”
엄마도 늘 그렇게 말씀하시며 기꺼이 따라나섰다. 우리는 가끔 찜질방 투어하듯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지금은 그 수많던 참 숯가마 찜질방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인구 감소도 이유지만 코로나 19시기의 충격이 결정적이었다. 목욕탕이나 찜질방 집합 제한이라는 조치 때문에 이용자가 줄고 30년 넘게 운영한 전통 목욕탕이 문을 닫았다는 뉴스가 속속 등장했다. 그 시절의 풍경은 이제는 기록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이 되어가고 있다.
알미뜸 찜질방에서 하루를 보내며 참 많은 사람을 보았다. 우리처럼 부부가 온 사람들, 친구와 온 사람들, 엄마를 모시고 온 딸들, 연인들까지. 형태는 달라도 모두 잠시 쉬어가고 싶은 사람들이라는 점은 같아 보였다.
자주 가지는 못하지만 가까운 곳에 이렇게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데울 공간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 부부에겐 큰 위안이었다. 바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잠깐의 쉼이 얼마나 소중한지, 이 하루가 다시 한번 느끼게 해 주었다.
알미뜸에서의 겨울 나들이는 단순한 찜질방 방문이 아니라 우리 부부에게 허락한 작은 안식이자 잊고 지내던 온기를 되찾는 여행이었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엄지척 부탁드려요^^
작가님들께 드리는 글
오늘로 '그냥, 마음가는 대로 쓴다' 브런치북을 30화로 완결 짓습니다.
그동안 소소한 제 일상을 읽어주시고 공감해 주신 많은 작가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다른 브런치북으로 찾아뵐 때까지 따뜻한 겨울 보내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