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갱시기죽을 아시나요?
매년 겨울만 되면 생각나는 음식이 있다. 정말 별거 아니지만 유독 겨울이 되면 먹고 싶은 음식, 바로 갱시기죽이다. 갱시기죽은 경상도의 향토 음식으로 김치와 콩나물을 넣어 끓이는 국밥 비슷한 음식이다. ‘갱’은 국을 의미하며 ‘시기’는 밥식(食) 자를 시기로 발음한 것이라고 한다. 갱시기는 국에 밥을 함께 넣고 끓인 국밥이라고 향토사학계가 추정한다. 을씨년스럽던 올 1월에도 남편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오늘 날씨도 꾸리꾸리한데 갱시기죽 끓여 먹을까?”
역시나 돌아온 대답은 NO였다. 결혼한 지 40여 년이 다 되어가는데 물어볼 때마다 고개를 젓는 통에 한 번도 먹어보질 못했다. 그래서 김치 콩나물국으로 대체해서 끓여 먹은 적은 몇 번 있다. 하지만 내가 먹고 싶은 맛은 아니었다.
3월 16일 오전, 갱시기죽을 끓여 먹었다는 @박수진 작가님의 글을 읽었다. 그 작가님도 본가가 울산이라는 것을 알고 있던 터라 묘하게 마음이 끌렸다.
“저도 경상도 사람이라 어릴 때 갱시기죽을 많이 먹어서 추억의 음식입니다. 40년 넘게 못 먹어봤는데 작가님의 글을 보니 오늘 날씨도 꿀꿀한데 함 끓여 먹어야겠습니다.”
댓글을 달고 냉장고 문을 열어보았다. 며칠 전 시장 봐둔 콩나물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요놈. 오늘 너로 찜했다’
남편은 척 봐도 입에 대지도 않을 것 같아서 나 혼자 먹을 1인분만 끓이기로 했다. 남편의 점심 메뉴는 얼큰 오징어 뭇국으로 낙점됐다. 그래서 두 가지 국을 끓이기로 했다.
아버지를 초등학교 때 여읜 남편은 겨울 방학 때마다 두 동생을 데리고 창녕 외가에 갔다고 한다. 외사촌도 네 명인 데다가 남편의 형제까지 합하면 아이만 해도 일곱이었다. 외조부모님도 살아계셨으니 밥 먹을 식구가 열한 명이었다고 한다. 먹을 것이 귀했을 때였다. 한창 크는 아이들을 배불리 먹이기 위해 양을 많이 만드는 게 외숙모님께는 관건이셨을 터이다. 그때 자주 먹은 음식이 갱시기죽이었으니 물렸을 수도 있겠다. 그래서 남편에겐 추억의 음식이 아니라 가난의 음식이었을 지도 모른다. 어쩌면 어린 동생들을 데리고 눈칫밥을 먹었던 눈물의 음식이었기에 떠올리기조차 싫은 음식이었을 것이다.
나는 시골에서 6남매의 막내로 자랐다. 우리 집 역시 식구가 많아서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일이 만만치는 않았다. 초등학교 다니던 그 시절엔 쌀밥을 먹는 집보다 정부미를 먹는 집이 많았다. 여덟 식구의 삼시 세끼를 책임져야 했던 엄마는 겨울에 갱시기죽을 자주 끓여 주셨다. 어떨 때는 밥을 넣고 어떨 때는 국수를 넣어 끓이기도 했다. 막내 오빠가 국수를 먹지 못하는 바람에 가끔 비싼 라면을 넣기도 했다. 육수를 낸 커다란 멸치를 버리지 않고 그릇에 담아주면 나는 비려서 못 먹는다고 코를 움켜쥐고 깨방정을 떨기도 했다. 그러면 엄마는 눈을 흘기며 손으로 멸치를 툭 건져냈다.
엄마가 갱시기를 끓이려면 먼저 연탄불 구멍을 3개를 열었다. 불이 활활 타올라야 육수도 잘 우려지고 단시간에 죽을 끓일 수 있었다. 엄마는 얼마나 바지런한지 반질반질 윤이 나게 닦은 하얀 양은 솥을 연탄불에 올려놓고 음식을 만드셨다. 큰 솥에 한가득 끓여도 한 끼에 바닥이 드러난다. 오빠들이 한 명씩 군대에 가도 그만큼 식구가 많았기 때문에 식구 하나 빠지는 건 별 표시도 나지 않았다.
나는 부뚜막에 올라앉아 엄마가 끓이는 갱시기죽을 바라보곤 했다. 어린 눈에 보이는 엄마는 국자로 한번 휘저으면 음식이 뚝딱 만들어내는 마법사 같았다. 집에서 만든 김장 김치와 까만 천을 덮고 키우는 콩나물, 그리고 국수나 밥만 있으면 만들어지는 갱시기죽은 나의 유년 시절의 그리운 맛이다.
남편이 오전 근무를 마치고 오는 시간에 맞춰 얼큰 오징어 뭇국을 먼저 끓였다. 갱시기죽은 끓여 놓으면 밥이 퍼져 질어져서 나중에 끓이는 것이 좋다.
<초간단 엄마표 갱시기죽 끓이는 법>
쫑쫑 썬 김치, 콩나물 두 줌, 채 썬 당근 조금, 만두 두 개, 청양고추와 파, 동전 육수를 준비한다.
먼저 냄비에 물을 붓고 동전 육수를 두 개 넣는다.(엄마는 멸치를 썼음)
물이 펄펄 끓기 시작하면 쫑쫑 썬 김치와 만두를 넣는다.
김치가 익을 무렵 밥과 콩나물을 넣고 끓인다.
간을 보고 싱거우면 참치액젓을 넣는다. (엄마는 소금이나 새우젓을 넣었음)
넓적한 그릇에 옮겨 담고 위에 청양고추와 파를 올린다.
요리가 끝남과 동시에 ‘띠띠띠띠’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남편이 식탁 위에 올려진 종류가 다른 국을 보고 한마디 건넨다.
“어? 이게 뭐야? 왜 국이 다르지?”
“자기 거는 얼큰 오징어 뭇국이고, 내 거는 갱시기죽이야.”
역시나 갱시기죽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자기 그릇에만 집중하는 남편이다.
“우와! 오징어 뭇국 얼큰하니 좋다. 머리에 땀이 줄줄 흐른다.”
나도 내 그릇에 코를 박고 눈길도 주지 않고 대답했다.
“이야, 갱시기죽 진짜 맛있다. 다음에 또 끓여 먹어야겠다.”
진작 국을 따로 끓여 먹을걸. 같이 먹길 기다린 게 40년이 다 되어가네. 이제 겨울이 되면 말없이 나 혼자 엄마의 그리움이 걸쭉하게 녹아있는 갱시기죽을 끓여야겠다.
덧붙이는 글 : 제가 요즘 바쁜 일정이 많아서 댓글창을 잠시 닫아두겠습니다. 행복한 봄날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