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시작, 다시 멈춘 도시에서

by 이음

잠시 주춤했던

확진자 수가 다시 급증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주 빠르게.


하루에 거의 4천 명의 확진자가 나오자,

비상이 걸린 영국 정부는 다시 규제를 발표했다.

내일부터는 6명 이상 모이지 말 것,

외출 시 마스크 착용은 필수라는 지침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영국 사람들은 여전히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마치 마스크를 쓰는 것이

자신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처럼,

맨얼굴로 거리를 활보했다.


가끔 마스크를 쓴 사람들을 보면,

십중팔구 동양인이었다.

지하철을 타도, 슈퍼에 가도,

그 익숙한 흰색 마스크 위로 보이는 눈매는

낯익은 동양인의 것이었다.


괜히 마스크를 쓰고 나가다가

누군가에게 봉변을 당하는 건 아닐까,

괜한 걱정도 들었다.

실제로 적지 않은 아시안들이

거리에서 폭행을 당하고

욕을 먹고 있었다.


그런 시기에 연수원이 시작되었다.

나는 연수원 근처 기숙사에 들어갔는데

내 앞방과 건너편 방 문에는

‘cleaned and sealed’라는 스티커가

그대로 붙어 있었다.

입주일이 한참 지난 시점인데도,

방이 비어 있다는 뜻이었다.


복도를 걸을 때마다

그렇게 텅빈 방문들 사이를 지나며 생각했다.

그 방을 예약했던 학생들은 오지 않기로 한 걸까?

아니면, 집에서 원격으로 수업을 듣기로 한 걸까?

예년 같았으면 신입생들로

기숙사 복도가 북적거렸을 텐데,

놀라울 정도로 조용했다.


뉴스에서는 다시 응급실이 포화 상태라고 했다.

20대부터 70대까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사람들의 모습이

매일같이 화면을 채웠다.

그 모습이 너무 공포스러워서,

뉴스조차 끝까지 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결국, 모든 수업이 온라인으로

진행된다는 공지가 내려왔다.

학교에서는 교재를 집으로 보내줄 테니,

배송 받을 주소를 적으라고 했다.


메일을 읽으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고,

도서관에서 함께 공부하고,

카페에서 조별 과제를 하고,

수업 끝나고 차 한 잔 마실 동기들이

생기리라 기대했는데...

코로나는 그 모든 기대를 와르르 무너뜨렸다.


그래도, 나는 계속 믿고 있었다.

이러다 곧 끝나겠지.
곧 오프라인 수업도 다시 시작되겠지.
곧 친구도 사귀고, 런던을 다시 즐길 수 있게 되겠지.


그렇게, 또 하루를 버텼다.

조용하고 낯선 도시의 한복판에서,

조용하고 낯선 연수원의 첫날을 맞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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