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의 문을 두드리며

by 이음

영국에 온 지 벌써 3년이 넘었다.

늦깎이 유학생 신분은 끝났고,

마침 변경된 이민법 덕분에

당분간 일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외국인이 되었다.


비록 꿈꾸던 로펌은 아니었지만,

운 좋게도 한 곳에서 오퍼를 받았고,

다행히 비자도 지원해 준다는 답을 들었다.

그래서, 다시 출근하기로 했다.


이 길이 내가 원했던 길은 아니다.

로펌의 문을 두드린 지 3년.

비자와 관심분야를 고려하면

소위 빅로펌 밖에 선택지가 없었고,

전 세계에서 몰려오는 경쟁자들을 이겨내기엔

내 현실은 여러모로 부족했다.


적지 않은 나이에,

그것도 외국인의 신분으로 진로를 바꾼다는 건

생각보다 많이, 정말 아주 많이 어려웠다.

쉬울 거라 기대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노력하면 이룰 수 있을 거라 믿었고,

그 소수에 내가 들어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진짜 노력했다.

문제는, 그 문이 3년째 굳게 닫혀 있다는 것.


시험에 쫓길 땐 보이지 않던 것들이

취업 시장에 나서고 나니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노력한 만큼 결과가 주어지지 않고,

내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요소들이

결정적인 장애물이 되어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이방인이라는 현실을

또렷이 자각하게 되었다.

로펌 입장에서는 비자와 나이,
긴 커리어 경력이 오히려 부담스러울 수 있어요.

멘토의 말은 아직도 내 머릿속을 맴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될 수 있을 만큼

뛰어난 사람이 못되었다는 점이

자꾸만 스스로를 탓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20대에 겪었어야 했을 거절의 경험들을

이제야 겪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부서졌다고 믿었던 멘탈과 자존감은

사실 그리 큰 상처도 아니었더라.

진짜 바닥은 지금이었다.

길을 완전히 잃은 기분.

정말 최선을 다했기에 미련은 없다.

모든 걸 내려놓고 싶었던 새벽도 있었지만

일단은 지금 주어진 기회를 잡기로 했다.

지금의 나는 살아남아야 했고,

이 도시에 머무르기 위해서는 버텨야 했다.

코로나는 내 모든 계획을 바꿨고,

취업 시장은 내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차가웠다.


그럼에도 다행인 건

나는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거.

사람의 가치는 소속이나 직업으로

결정되지 않는다고 믿는다.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 방식이 사람을 만든다고.

모든 일에는 적당한 때가 있다고 믿는다.

아직은 포기하기엔 이르다 말하고 싶다.


적어도 지난 3년간 내가 쏟아부은 노력만큼은

내가 가장 잘 알기에.

적어도 나 자신에게는 부끄럽지 않기에.

외로운 이방인의 삶이라도

나는 계속해서 문을 두드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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