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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건 풍경일까, 나일까

우리일까

by Susie 방글이





인천공항을 나오자마자, 오랜만에 맡는 한국의 공기가 묘하게 그리우면서도 새롭게 다가왔다. 빠르게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 귀에 익은 한국어 억양, 그리고 소독약과 커피 향이 뒤섞인 공항 특유의 냄새가 나를 포근히 맞아주며, 모든 것이 새삼 반갑고도 생경하게 느껴졌다.


택시 승강장으로 향하는 길, 사람들의 소리와 공기놀이가 어쩐지 오랜 친구처럼 다정하게 다가왔다. 승강장에 도착하자 기사님들이 줄지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디 가시려고?"라며 살갑게 웃는 기사님의 구수한 말투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택시에 오르자 기사님이 짐을 트렁크에 실으며 "비행 오래 하셨나 봐요"라고 말을 건넸다. 그 짧은 인사에 낯선 땅에서의 긴장이 스르르 녹아내렸다.


차창 너머로 펼쳐진 풍경은 예전과 비슷하면서도 어딘가 새로웠다. 특히 도로 양쪽을 가득 채운 회색빛 고층 아파트들이 눈에 띄었다. 아파트 천국인 한국에 익숙한 나였지만, 끝없이 이어진 이 건물들은 내게도 생소하게 다가왔다.


‘언제 이렇게 또 지었지?’ 하며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튿날 아침, 나는 남편과 함께 예전에 학생들을 가르치던 골목으로 향했다. 골목은 완전히 탈바꿈한 듯했다. 세련된 간판,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인스타 감성 카페들, 새로 들어선 상가들이 반짝반짝 빛난다.


13년 전엔 교복 입은 학생들이 골목을 뛰어다니고, 내가 가르치던 학원의 간판 아래서 동료들과 “이 문제집 어때?”하며 깔깔대던 그 시절. 그때의 골목은 사람 냄새가 커피 향보다 진했다.


작년 겨울, 짧게 들렀을 땐 연말 분위기 덕에 북적였던 기억이 나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한산하다. 도시는 더 화려해졌는데, 사람들 발걸음은 뜸하고, 골목이 살짝 고고한 척하는 느낌이랄까.

한산한 거리
문 닫은 점포들

특히 놀라운 건 지금이 선거철이라는 거다. 한국에 오기 전남편과 “선거철 유세 구경하면 재밌겠네!” 하며 신났던 게 떠올랐다. 13년 전, 이 골목은 선거철이면 유세 차량의 확성기 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투표합시다! 희망의 미래!” 같은 구호에 현수막이 휘날리고, 주민들이 “또 시작이야” 하며 투덜거리면서도 웃던 장면이 생생하다.

소리 없는 선거철 풍경

근데 지금? 현수막 몇 개가 바람에 팔랑거릴 뿐, 골목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조용하다. 이게 무슨 반전이야? 미국의 선거철을 떠올렸다. 거긴 플래카드랑 TV 광고가 시끄럽게 떠들지만, 정작 다들 자기 일에 바빠 신경 안 쓴다. 한국도 이제 조용히 투표만 하는 분위기인가? 남편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익숙한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니, 커피 향이 반갑게 나를 끌어안았다. 늘 시키던 아메리카노, 노 크림을 주문했다. 바리스타는 빠르게 커피를 내줬지만, 미국 카페를 생각해 보니 거기선 바리스타가 “Have a great day!” 하며 미소를 던지지만, 솔직히 그건 그냥 대본 같은 인사다.
한국 카페는 예전엔 친구 집에 놀러 온 것처럼 푸근했는데, 지금은 세련된 만큼 살짝 쿨해진 느낌? 그래도 커피 한 모금에 긴장이 스르르 풀렸다.


창가에 앉아 골목을 바라봤다. 화려한 상가 사이로 드문드문 지나가는 사람들. 13년 전엔 학생들의 웃음소리와 퇴근길 직장인들의 수다로 시끌벅적했는데, 지금은 골목이 살짝 졸린 듯하지만 여전히 나를 그때로 살짝 데려간다.

익숙하지만 낯선 거리

이 조용한 골목이 내게 슬쩍 말을 걸었다.
한국은 뭐가 달라졌고, 나는 뭐가 변했을까. 미국에서 익숙해진 ‘테이크아웃’ 삶과, 이 골목에서 다시 만난 ‘머무르는’ 순간들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까.

어쩌면, 그 답을 찾으러 나는 이 골목을 다시 천천히 걸어봐야겠다.

다시, 멈춰 서 본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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