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의미가 있다
아침 8시, 익숙한 사무실 문을 밀고 들어선다. 커피 내리는 소리, 키보드 두드리는 리듬, 동료들의 낮은 대화 소리가 뒤섞인다. 창밖으로 보이는 빌딩과 나무들은 같은 풍경이다.
책상에 앉아 모니터를 켜고, 쏟아지는 이메일과 끝없는 회의 일정을 마주한다. 익숙한 하루, 하지만 마음 한구석엔 설명할 수 없는 무게가 쌓여간다.
'이게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일까?' 문득 떠오르는 질문은, 바쁜 일정 속에 다시 묻힌다.
그날, 퇴근길 운전대에 앉아 생각했다. 이제는 변해야 할 때다.
아주 오랫동안 몸담았던 회사를 떠났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내게 꼭 필요한 선택이었다. 지금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미처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이 하나둘 밀려온다.
함께했던 동료들, 소중했던 인연들, 그리고 지나온 시간들. 이제야 그 의미를 곱씹는다.
떠난다는 것, 변한다는 것, 시간이 흐르며 관계가 멀어지는 것.
씁쓸하지만, 결국 자연스러운 일임을 조금씩 받아들인다.
문득, 내 팀에서 함께 일했던 A가 떠오른다. A는 회사의 불공정한 처우에 힘들어하다 결국 사직서를 냈다.
그날, 나는 '남아 있는 사람'으로서 회사의 중요한 이벤트를 준비해야 했다. A는 나를 보며 말했다.
"너무 열심히 일하시는 모습을 보니, 저랑 같은 마음인 줄 알았는데 아니셨네요."
그 말은 내게 큰 상처였다. 나는 솔직히 답했다.
"A는 떠나지만, 나는 남아야 해. 이해해 줬으면 좋겠어."
회사의 불공정한 처사, 부당한 대우 등, 함께 분노했던 시간들이 주마등 같이 스쳐갔다.
그러나 회사의 인사과 담당자로서 나는 현실을 딛고 살아야 했다. 인사과는 회사와 직원 사이의 경계를 지키면서도, 때로는 회사의 입장을 대변해야 하는 역할이었다.
나 역시 속으로는 분노했지만, 겉으로는 냉정하고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해야만 했다. 아마 A는 그런 나를 '회사 사람'으로만 보고 실망했을 것이다.
이제 내가 회사를 떠난 뒤, 남아 있는 동료들을 보며 A의 마음을 조금 알 것 같다. 그들은 나를 잊은 게 아니라,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살아가는 중이다. 나도 그때 A에게 미안했지만 현실을 택했던 것처럼.
나는 최선을 다해왔다. 그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음을 안다. 이제 미련과 아쉬움을 내려놓고, 새로운 길을 걸어가려 한다. 이 과정도 나를 성장시키는 한 조각일 것이다.
지나온 시간은 나를 여기까지 이끈 소중한 기억이고, 앞으로 나아갈 힘이 되어줄 것이다.
지금 나는 여행하며 이 글을 적는다. 이 시간이 새로운 출발점임을 믿는다. 모든 관계가 평생 이어질 필요는 없다.
그 시기에 서로 필요했기에 가까웠고, 변화에 따라 멀어지는 것도 자연스럽다. 억지로 붙잡거나 잊으려 애쓰기보다, 흐름에 맡기는 게 낫다.
너무 애쓰지 말자.
억지로 잊으려 애쓰지도 말자.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의미가 있다.
그리고,
이 경험은 앞으로 새로운 관계를 맺을 때 더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지금 그 의미를 안고 천천히 다음 걸음을 내딛는다.
다시 걷는다. 멈춘 적 없었던 것처럼. 길이 없어 보여도, 한걸음 떼면 또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