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뷰니까, 조용히 다시
휴게소에서 간단히 요기를 하고 다시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의 일명 '도리도리'가 시작됐다.
운전 중 졸음이 몰려오면 어김없이 머리를 좌우로 격하게 흔드는 그의 특유의 몸부림. 그 모습이 꼭 고개를 흔드는 아기 같아서, 나는 오래전부터 그걸 '도리도리'라 불렀다.
운전대 위로 살짝 기울어진 그의 머리가 좌, 우, 좌, 우로 정신없이 흔들릴 때면, 옆에서 음악을 듣거나 핸드폰을 보다가 깜짝 놀라곤 한다. 밖에서 누가 본다면, 마치 차 안에서 해드뱅잉 공연이 열린 줄 알 것이다.
"어이구, 또 도리도리 하시네?"
그럴 때마다 나는 옆자리에서 과자나 초콜릿을 건네며 그의 졸음을 달랜다. 그러면 어느새 그는 다시 말짱해진다.
여행길은 언제나 좋다. 목적지가 어딘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휴게소에서 파는 뜨끈한 핫바, 지나가다 마주친 해변가 그네, 차 안에서 흘러가는 시답잖은 이야기들이 더 기억에 남는다.
차 안, 그 좁은 공간에서 우리는 플레이리스트의 노래를 들으며 농담을 주고받는다. 하루 중 가장 편안하고 꾸밈없는 대화가 오가는 순간이다.
그날도 별다를 것 없이, 남편이 던진 농담에 내가 피식 웃었다. 그런데 그 순간, 문득 낯익은 공기가 스쳤다. 이 장면, 이 대화, 이 느낌. 처음 가는 길이고 처음 나누는 대화인데, 이상하게도 익숙했다. 머릿속 어딘가에서 오래된 필름이 느리게 돌아가는 듯했다.
'아, 데자뷔구나.'
요즘은 이런 순간이 오면 괜히 전생의 잔상이 아닐까 상상해 본다. 아주 먼 옛날, 이 사람과 마차를 타고 붉게 물든 들판을 지나며 똑같은 농담을 나누었을지도. 그때도 나는 피식 웃었을까. 물론 그 시절엔 남편의 머리숱이 더 풍성했고, 나는 지금보다 더 이뻤을(?) 거다. ㅎㅎ
과학적으로 데자뷔는 뇌의 기억 오류라지만, 나는 전생의 인연 같은 낭만적인 설명이 더 좋다. 그게 더 마음에 드니까. 누가 기억하겠는가. 내가 믿으면 그만이지.
혹시 여러분도 이런 순간이 있나요?
문득 '이거, 전에 겪어봤던 거 같은데' 싶은 느낌. 그냥 스쳐 보내시나요, 아니면 나처럼 전생의 메아리라 믿고 싶으신가요?
그 순간, 조용한 항구의 평화로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오래된 기억의 조각들이 천천히 빛을 되찾는 듯했다. 첫 여행길의 설렘, 여름밤의 소리, 겨울바람 속 마주 잡은 손. 바쁜 일상에 묻혀 있던 마음들이 제자리를 찾아갔다.
아마 인생이란 그런 거 아닐까. 몇 번의 도리도리, 몇 번의 웃음, 그리고 불쑥 찾아오는 익숙한 낯섦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오래된 기억을 닦아가며 하루를 걸어가는 것.
다음에 또 그 장면이 찾아오면, 나는 주저 없이 말할 거다.
"거봐, 내가 그때도 말했잖아. 당신이 마차 타고 지나가면서 똑같은 농담 했다고."
그러고는 웃으며, 다시 다음 길로.
안갯속 텅 빈 도로를 따라, 우리의 이야기는 조용히 이어질 거다.
#익숙한낯섦 #데자뷰같은순간 #전생의 인연#동행 #운명 #전생 #여행 #메아리 #안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