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부터가 달라져요
몇 해 전, 우리 셋이 캐나다 퀘벡으로 여행을 갔다.
로드 트립을 좋아하는 우리는 차로 캐나다 국경을 넘어갔다. 호텔에 체크인하니 딸이 두 손에 핸드폰을 들고 딱 잘라 말했다.
"엄마 아빠, 짐 빨리 풀고 바로 'Le Clocher Penche' 갈 거야. 차로 20분 거리래.
퀘벡에서 제일 유명한 프렌치 레스토랑이래. 벌써 예약해 놨어."
우리는 피곤했지만, 이미 딸이 일정을 다 짜놨으니 어쩔 수없었다.
남편은 핸들을 잡고, 나는 지갑을 챙기고, 딸은 네비를 켰다.
식당에 도착하자 딸이 "여기 시그니처 스테이크랑 양파 수프 꼭 먹어야 돼요!" 라며 주문까지 척척 대신했다.
식사를 마치고 자리를 옮겨 커피 한잔 하던 중, "이제 선셋 보러 'Promenade Samuel-De Champlain' 가자. 노을 진짜 예쁘대."
우리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따라갔다.
그날 딸 덕분에 퀘벡 시내 야경과 강변 바람을 맞으며 영화 같은 밤을 보냈다.
그 후 딸이 정해논 스케줄 대로 남편은 운전하고 나는 지갑을 열면 됐다.
"가이드가 있어 편하네."
늘 셋이 움직이던 우리였는데, 이번엔 가이드 없이 둘만 떠났다.
과연 어떻게 될까 싶었지만, 뭐… 일단 가보는 거다.
우리 가족 여행엔 정해진 역할이 있었다.
나는 '물주', 남편은 '운전기사', 그리고 딸은 '가이드'.
나는 돈만 내면 됐고,
남편은 운전만 하면 됐다.
"엄마, 여기서 이거 먹자!"
"아빠, 이쪽으로 가면 더 빨라."
딸이 옆에서 척척 정리해 주니 우린 아무 걱정이 없었다.
우리 둘 여행 떠나기 전, 딸이 이랬다.
"엄마 아빠 둘이 가서 헤매지 마라?"
그땐 웃으며 넘겼는데, 그 말이 이렇게 현실이 될 줄이야.
출발하고 호텔에 도착하기 전 남편이 말했다.
"차밭 한번 가볼까?"
나는 좋다 했다. 뭐 나야 따라가는 사람이니까.
그런데 얼마 안 가서 또 "아냐, 무슨 커피 문화 마을이 있대. 거기 가보자!"
그래서 나는 또 "오케이~"
그러고 한참을 갔다.
목적지 근처에 도착하자, 남편이 갑자기 "어? 이상하다."를 반복하며 고민에 빠진 얼굴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차밭이 안 보여. 여긴 차밭이 없는 것 같은데…?”
나는 황당한 얼굴로 말했다.
“커피 문화 마을 있다고 그쪽으로 네비 찍었잖아."
남편은 머쓱하게 네비를 다시 뒤적이며, "아, 그랬지."
이걸 딸이 봤으면 분명 "에효~" 하며 한숨을 쉬었을 거다.
커피마을을 어렵게 찾아가 차 한잔 마시고, 시간은 어중간했지만 배가 고파서 식당을 찾았다.
맛집을 찾아갔는데, 문이 닫혀 있었다.
2:30부터 4:00까지 브레이크 타임.
우린 그것도 모르고 딱 2:30에 도착한 거다.
"아… 괜히 왔다."
"다른 데 가볼까?"
주차를 하고 주변 식당을 둘러봤지만, 문 연 곳이 없다.
서로 "여긴 점심 장사 안 하나?" "이 동네 사람들은 밥도 안 먹나?" 투덜거리며 헤매다가 결국 3:30이
넘어서 들어간 곳이… 짜장면집.
여행 와서 짜장면이라니.
그날 우리 둘이 먹은 건 국민 콤보세트- 그 짜장면, 짬뽕, 탕수육.
그리고 밤늦게 호텔에서 허겁지겁 먹은 빵 두 조각이 전부였다.
배가 고파 3시 넘어서 먹은 짜장면이 너무 든든했던 나머지, 저녁이 되어도 배가 안 꺼져서 결국 저녁을 건너뛰는 웃픈 일이 벌어졌다.
딸이 있었으면 절대 없었을 일이다.
이미 맛집 리스트에 브레이크 타임까지 다 체크해 놨을 텐데.
우린 왜 이렇게 안 알아보고 왔냐며 서로를 탓하다가, 결국웃음이 터졌다.
“이래서 가이드가 필요한 거라니까."
둘이서 하는 여행은 허술하고 어설프고,
때론 계획이 어그러지지만 그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가끔은 이렇게 엉뚱하게 짜장면 한 그릇 먹으며
"옛날엔 말이야~" 하며 웃는 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여행이 완벽할 필요는 없었다.
엉뚱해도, 허술해도, 결국엔 같이 웃을 사람이 곁에 있는 게 더 소중한 거니까.
"그래도 짜장면 맛있었잖아."
남편의 한마디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그래, 우리 식구는 셋 일 때 가장 완벽하긴 하지.
하지만 가끔은 둘만의 이런 허술한 여행도 나쁘지 않다.
셋 일 때 완벽하고, 둘일 때 서툴러 더 소중한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