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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리 그대로

변한 건 우리뿐

by Susie 방글이





남편은 다큐멘터리 PD로 일하던 시절, 해외와 전국을 누볐다.


산골 마을, 바닷가 어촌, 심지어 해외 작은 시장까지. 촬영지마다 지역 음식이 빠지지 않았다.


깊은 산속에서 먹은 청국장, 갓 잡은 우럭으로 끓인 매운탕, 이름 모를 외국 스튜까지.


남편은 늘 “음식은 그곳의 이야기야”라며 늘 말했다.


그중 하동의 재첩국이 기억에 깊이 남았다. 십여 년 전, 섬진강변에서 재첩 잡던 아저씨가 끓여준 진한 국물 한 사발. 촬영 중 잠깐 쉬며 먹었던 그 맛은 남달랐다.


“강물에서 방금 건진 재첩이라 그런가, 맛이 다르지.”


남편은 그렇게 말하며 그 식당을 두 번의 방송에 소개했다. 그때의 기억은 단순한 촬영이 아니라, 남편에게 오래 남은 것이 있었다.


“재첩국~ 재첩국~”


아침부터 남편이 흥얼거린다. 하동에 오면 재첩국을 꼭 먹어야 한다며 신난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솔직히 좀 귀찮기도 했다.

아침부터 노래하던 재첩국 식사

나는 속으로 ‘빵이나 먹으러 가면 좋겠네’ 생각했지만, 분위기 깨기 싫어서 그냥 웃어넘겼다.


그러더니 남편이 핸드폰을 꺼내더니 옛날 이메일을 뒤적인다.


“여기 재첩국집 사장님, 내가 예전에 촬영했었어. 방송 두 번 나갔지. 아직 계실까?

"참 멋진 분이셨는데.”


사진, 연락처, 인터넷까지 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에이, 한국은 워낙 빨리 변하잖아. 13년 전인데 뭐, 다 없어졌나 봐. 도로도 싹 바뀌었네.”


남편은 새 도로 탓까지 하며 씁쓸해했다. 나는 ‘그럴 줄 알았지. 카페나 갈걸’ 속으로 투덜대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은 뭐든 금세 바뀌니까. 가게도, 골목도, 분위기도. 늘 그런가 보다 했다.


결국 근처 다른 재첩국집에 들어가 밥을 시켰다. 남편은 미련이 남았는지 그곳 사장님께 물었다.


“그분요? 아직 거기서 해요.”


뜻밖의 대답에 남편이 멈칫했다.


“진짜요? 아직도요?”

“네, 그 동네 가게들 그대로예요.”


우리는 서로 쳐다보며 픽 웃었다. 세상이 하도 빨리 변하다 보니, 있는 것도 없는 줄 알았던 거다.


도로 탓, 세월 탓 했지만, 결국 변한 건 우리뿐이었다.


그래도 왔으니 인사라도 드리자 싶어 저녁에 그 식당을 찾아갔다.


“아, 재첩국을 또 먹는구나.”


놀랍게도, 간판도, 문틀도, 사장님도 그대로였다.


“어, 여전하시네요! 반갑습니다!”

남편이 호들갑 떨자, 사장님도 웃으며 맞아주셨다.


남편은 그날 재첩국이 특별히 맛있었다고 한다.

재첩 한 알 씹을 때마다 남편은 그때 그 시절이 떠올랐던 것 같다.

잡은 재첩을 씻는 작업 중
고된 하루의 마무리는 가족과 함께
재첩으로 차린 상
재첩 껍질 쌓아놓은 마당

바쁘게 카메라 들고 다니던 때,

그리고 좋았던 곳을 나와 딸을 다시 데리고 갔던 그때.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남편이 말했다.

“식당도, 사람도 그대로인데, 변한 건 우리네뿐이야.”


"그러게"


세상 탓, 시간 탓 하며 바쁘게 살아온 건 우리였다. 한국이 아무리 빨리 변해도,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곳은 또 그렇게 남아 있었다.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들의 소중함을 깨닫고,

그 안에서 우리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게 삶의 맛이 아닐까.


그래도 다음엔 내가 좋아하는 빵집부터 갈 거다. 남편은 또 재첩국 타령 하겠지만..

빵은 저에게 양보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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