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나간 총알-2

저격병

by 송유준

걸음이 더뎌졌다. 발목 높이까지 올라오는 눈덩이에 자꾸만 발이 챘고, 군장은 한 걸음 나아가는 발걸음마저 붙잡는 듯하다. 살얼음으로 가득한 추위는 두꺼운 군화를 뚫고 발가락 사이사이 파고들었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머릿속엔 아찔하리만치 강렬하며 형언할 수 없는 감각이 피어올랐다. 머릿속에 폭죽이 터지는 것만 같았다. 그 폭죽은 온몸으로 퍼지며 손마디, 발가락 사이에서도 터지는 듯했다. 더 이상 추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아궁이 속에서 피가 끓는듯한 기분이었다.

차갑게 불어오는 바람 저편엔 어딘가 사람 사는 마을의 향기가 희미하게나마 걸쳐 있지 않을까. 혹은 모닥불의 따사한 열기가 열풍이 되어 불어와 맞닿지 않을까.

다시 한번 무거운 발걸음을 눈길 너머로 내디딘다. 멈춰 서 있던 자리에서 벗어나 앞으로, 저편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한다. 고개를 들어보자, 넓게 펼쳐진 지평선 너머로 보이던 소나무가 이젠 금방이라도 손으로 만질 수 있을 듯 가까이 다가왔다. 나무는 마치 포격으로 초토화된 격전지처럼 갈가리 찢어지고 갈라진 형색으로 묵묵히 자리 잡고 있었다. 시선을 옮겨 나뭇가지를 들여다보았다. 새들은 보이지 않았다. 앙상하게 빼 마른나무의 손 틈 사이로 툭 삐져나온 둥지가 눈에 들어왔다. 어깨에 둘러멘 총을 집어 안전쇠를 풀었다. 묵직한 소총은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다. 가까스로 개머리판을 어깨에 기대 얹어 머리 위 새 둥지를 향해 가늠쇠를 맞추었다. 방아쇠에 얹은 손가락에 냉기가 퍼졌다.

정적을 가르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총구에선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오르며 그 주위로 열기가 퍼졌다. 총신에 손가락을 올려 그 자그만 열기라도 느껴보려 했으나, 금방 바람에 의해 식어버렸다. 둥지는 중심을 잃고 비틀대다 이내 쓰러져 눈바닥으로 엎어졌다. 아직 총신에 손을 문댄 채 엎어진 둥지로 다가갔다. 둥지를 뒤집으려 내민 손이 떨리고 있었다. 곧이어 드러난 둥지에는 자그만 비둘기알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하나는 총알에 정통으로 뚫린 것인지 조각조각 깨져 흐르고 있었다. 그것마저 아까워 손으로 만져보려 했으나 이미 얼어붙어 가고 있었다. 알 속에 갇혀 있던 일말의 열기마저 옅어져, 차가워진 손과 맞닿자 더욱 깊숙이 얼어갔다. 서둘 리 손을 떼곤 입김을 불어 넣었으나, 소용없는 일이었다. 잠깐이나마 열기를 느낄 순 있겠지만 금세 손은 차갑게 얼어붙어 버리곤 했다.

둥지를 손에 들어 올려 들여다보며 그나마 상태가 괜찮은 알 하나를 손으로 집었다. 떨리는 손으로 구멍을 내어 급히 내용물을 털어 넣었다. 끔찍이 비렸으나, 위장으로 무언가 먹을 수 있는 게 들어오자 오묘한 만족감이 퍼졌다.

그 순간, 그게 빗겨나갔다. 적어도 지금만은 그것이 빗겨나갈 것이다.

마치 벌이 비행하며 귓가를 스치는 소리 같았다. 높게 날아올라 잽싸게 쏘아대며 귓가를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익숙한 소리이다. 먼저 총알이 튀고 그다음 바람을 가르는 총성이 울린다. 소리가 들리자, 둔덕 아래로 몸을 날렸다. 뛰어들며 눈가루가 튀어 엄폐 위치를 들켰을 테지만, 가만있다간 이번엔 영점을 제대로 맞춘 두 번째 총알이 날아올 것이다. 너무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총알이 튀는 소리와 곧바로 몸을 날릴 때까지 마치 주위 모든 게 한순간 빨라지는 것만 같았다. 심장 소리가 귀에 들릴 만큼 크게 울리고 있었다.

심장이 떨려댔지만 지체할 시간이 없다. 저격수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철모를 벗어 소총에 얹은 다음 둔덕 위로 올렸다. 그러나 두 번째 총성은 울리지 않았다. 소총을 들어 올린 채 한동안 가만있었는데도 철모엔 구멍 하나 뚫리지 않았다. 영겁의 시간이 흘렀다. 저격수를 자극하기 위해 철모를 내렸다가 들어 올리곤 이리저리 위치를 바꿨다. 또다시 영겁의 시간이 흘렀다. 1초가 흐를 때마다 1시간이 지났으며, 2초가 흐를 때는 1년이 지나고 있었다. 결국 포기한 채 철모를 내리는 수밖에 없었다. 철모가 조준경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모습을 드러낼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분명 저 둔덕 너머 지평선 어딘가에서 저격수가 총구를 내민 채 가만 기다리고 있을 테지만, 그것이 어느 방향인지 어느 각도인지 알지 못한다. 언제까지 여기 앉아 있을 수는 없는 법이다. 언젠가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여야 할 것이다.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어디로 가야 할지 파악할 수 없으니 미칠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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