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나간 총알-1

하나

by 송유준

더럽게 어지럽혀진 좁다란 반지하방 내부론, 커튼 사이서 미약한 빛이 쏟아져 들어오며 눈을 헤친다. 침대에는 진득하게도 먼지가 달라붙어 그리 편한 자리만은 아니다. 인제 그만 자리에서 일어나야 할 것이지만 온몸이 쑤셔 손가락 하나 까딱이는 것조차 고초다.

힘겹게 다리를 움직여 걸터앉으니 머릿속에 안개가 낀 듯 어지러이 두통이 몰려들었다. 복잡한 관념과 감정들이 얽히고 충돌하며 실타래와 같이 엮이는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날 때면 으레 겪는 어지럼증이지만, 도무지 익숙해지질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나자 여느 때와 같이 왼쪽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한 발짝,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위아래로 고개가 흔들리며 끊임없이 까딱이곤 그저 앞으로만 나아간다. 무거운 짐짝이라도 어깨에 얹어 등에인 듯이, 고통스럽게 짓눌리는 피로와 두통이 앞으로 한번 나아갈 때마다 더해진다.

방 내부는 좁다랐다. 작은 포복으로 하나, 둘, 셋, 넷, 다섯을 재어보면 이미 방 끝에 다다라 있다. 코앞으로 현관문이 보이자, 곧장 뒤돌아 방 전체를 살핀다. 천장 높이까지 솟아오른 창문은 커튼으로 막혀 있어 방은 까마득하게 어두웠고, 이젠 낡아버린 책상이 침상 곁에 놓여 있다. 책상 위론 펜과 종이가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자그맣게 모여 개미 떼처럼 수 놓인 문자가 괜스레 두통을 자극하는 듯했다.

그만 눈을 돌려 곧장 화장실로 향하였다. 거울 속에는 남루한 행색에 피로한 눈을 지닌 사내가 있다. 오래간 집 밖을 나서지 않은 탓인지 주름진 피부는 새하얗고, 새치가 여기저기 난 탓에 순백색처럼 보이는 뻗친 머리가 눈에 밟힌다. 턱 밑 덥수룩하게 자라난 수염을 더듬는다. 면도를 언제 마지막으로 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몇 개월간 제대로 밖을 나서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별달리 몸을 움직이지도, 잘 가꾸지도 않은 탓에 한없이 늙어 보였다. 히터를 켜놓지 않은 탓에 뼛속 깊이 파고드는 추위가 오래된 기억을 상기시키도록 내몬다. 그때에도 이렇게 수염이 났던 게 기억난다. 물가에 비쳤던 그 모습이 겹쳐 보인다.

고향과 멀리 떨어진 이북의 땅에서 전선 후방으로 낙오되었을 때, 허기짐과 피로와 괴로움에 지쳐 좌절하고 절망감에 허덕이던 그 몰골이 지금 거울 속에 있다. 보풀 오른 남루한 카디건이 빛바랜 군복으로 변한다. 주름진 얼굴은 어느새 새파랗게 어린 소년처럼 선명해진다. 어느새 앳된 아이가 거울 속에 자리하고 있다. 등엔 개런드 소총이 둘러메어져 있다. 피로하여 보이는 눈매는 짙게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오랫동안 제대로 씻지 않아 마구 헝클어진 머리털, 금방이라도 지쳐 쓰러질 것만 같이 떨리는 몸, 추위와 허기로 창백하게 질린 얼굴, 공허하게 텅 빈 채 조용히 소용돌이치는 눈동자가 마치 이미 죽어 있는 사람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거울에 비친 화장실 벽은 군데군데 이슬 맺혀 바람에 움직이며 빛을 반사해 내는 모습이 마치, 잔잔히 출렁이는 물가와 같았다.

개울가에 숙이고 있던 머리를 죽 빼내었다. 세상 모든 것이 고요했다. 주위를 둘러싼 공기는 침묵하고 있었다. 오로지 휘몰아치는 바람 소리와 눈보라만이 가득했을 뿐이었다. 사그락사그락 말라비틀어진 나뭇가지가 바람에 치여 서로 맞부딪치는 소리가 이따금 들려왔다. 그편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눈 숲 사이로 보이는 자그만 소나무에서 새 떼가 날아들고 있었다.

비둘기 떼였다.

비둘기들은 마치 나무에서 도망치는 듯한 몸부림으로, 급히 몸을 비트는 듯한 모양새로 사방을 향해 날아들었다. 소나무는 유독 지독했던 겨울의 풍파 탓에, 부분 부분 남은 푸른 잎새 외엔 죽은 나뭇잎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수통 뚜껑을 닫곤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어깨를 물고 늘어져 잡아당기는 듯한 무거운 군장, 허리춤에 대롱대롱 매달려 걸리적거리는 혁대, 자꾸만 허벅지와 부딪치는 자동소총의 개머리판이 움직임을 방해해 댔다. 사소한 움직임마다 몸에서는 사슬이 맞부딪치듯 절걱절걱 이는 소리가 났다. 마치 방울이 달린 광대 모자를 쓰고 있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