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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라리의 그녀, 김나나

1장. 고졸 경리의 작은 반란 - 월급봉투가 말해주지 않는 것들.

by 친절한기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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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거울 앞에서 나는 매일 같은 얼굴을 마주했다.

나는 23살, 고졸, 경리.

"김나나씨, 이번 달 급여명세서예요."


월급봉투를 받을 때마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180만원. 세금 떼고 나면 150만원도 채 안 되는 돈.

이 돈으로 서울에서 살아가기엔 너무 빠듯했다.


나는 원래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다.

회사에서도 조용히 구석 자리에 앉아 숫자만 들여다보는 게 일상이었다.

점심시간에도 혼자 도시락을 먹고, 회식 자리에서도 끝자리에서 조용히 술잔만 기울였다.

"나나야, 너는 항상 말이 없어서 뭔 생각하는지 모르겠어."


동료들이 가끔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그냥 미소만 지었다.

굳이 내 속마음을 털어놓을 필요도, 그럴 용기도 없었다.

하지만 월급날만 되면 달랐다. 그 작은 숫자들이 나에게 속삭였다.

'너는 이게 전부야. 평생 이렇게 살 거야.'


통장을 확인할 때마다 막막함이 밀려왔다.

월세, 생활비, 부모님께 드릴 용돈까지 계산하면 남는 건 없었다.

저축? 그런 건 꿈도 꿀 수 없었다.


어느 날, 회사 보험 담당 FC가 찾아왔다.


"안녕하세요, 김나나씨. 저 이정훈이라고 해요."

그는 나와 비슷한 또래였지만 뭔가 달랐다.

말투도 자신감 넘쳤고, 입고 있는 정장도 내 것과는 차원이 달라 보였다.


"보험 상품 설명드리러 왔어요. 시간 괜찮으시면..."

"네, 좋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보험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그냥 예의상 들어보기로 했다.


"저 작년에 FC 시작한 지 2년 차인데, 벌써 연봉이 5천만원 정도 돼요."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화들짝 놀랐다.


5천만원? 내 연봉의 거의 두 배가 아닌가.

"정말요?"

"네, 물론 처음에는 힘들었죠. 근데 고객들이 생기고 나니까 완전히 달라지더라고요.

실력만 있으면 돈은 따라와요."


그의 말을 들으며, 나는 처음으로 다른 세계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정해진 월급으로 사는 세계가 아닌, 내 능력만큼 벌 수 있는 세계.


"혹시... 어떻게 하면 FC가 될 수 있나요?"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이 나왔다. 평소 같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질문이었다.

"아, 관심 있으세요?

근데 이 일이 쉽지는 않아요.

사람들과 계속 만나야 하고, 설명도 많이 해야 하고..."


그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김나나씨는... 좀 조용하신 것 같은데, 이 일 하실 수 있을까요?"

그 말이 나에게는 도전장처럼 들렸다.

집에 돌아와서, 나는 거울 앞에 다시 섰다. 그런데 이상했다.

오늘의 나는 어제와 달라 보였다. 뭔가 다른 빛이 눈에서 나고 있는 것 같았다.


'변해야 한다. 이대로는 안 된다.'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인터넷으로 FC에 대해 찾아봤다.

성과급, 인센티브, 고액 연봉자들의 후기. 모든 게 새로웠다.


'나도 할 수 있을까?'


거울 속의 조용한 김나나에게 물어봤다.

하지만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나는 변하기로 했다.

23살, 고졸 경리 김나나의 작은 반란이 시작된 것이다.


다음 날, 나는 사직서를 쓰기 시작했다.

월급봉투가 더 이상 나의 한계를 규정하지 않기를 바라며.



※ 이 글은 실제 사건을 참고하여 각색한 허구의 이야기입니다.

등장인물과 사건은 일부 허구로 재구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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