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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니엘에서 내려다보는 서울

by 친절한기훈씨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눈앞에 펼쳐진 서울의 전경이 한 폭의 그림처럼 들어왔다.

63층. 시그니엘 라운지에서 내려다본 도시는 작은 빛점들이 모여 거대한 별자리 같았다.

“와… 여기서 사는 사람도 있구나.”

나는 혼잣말을 내뱉었다.

오늘 상담 예약이 잡힌 고객은 소프트웨어 회사의 대표였다.

고액 자산가를 만나는 게 처음은 아니었지만, 이곳 주소를 확인했을 때부터 왠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문이 열리고 나온 순간, 나는 숨이 멎을 뻔했다.

“...나나야?”

낯익은 얼굴.

기억 저편에 묻어둔 이름이 떠올랐다.

오미나.

고등학교 시절, 나를 가장 괴롭히던 아이.

급식 줄에서 내 도시락을 빼앗고, 조용히 있던 나를 이유 없이 놀리던 아이.

그녀가 눈앞에 있었다.

“설마… 네가 여기 주인?”

내 목소리가 떨렸다.

오미나는 천천히 웃으며 말했다.

“그래. 반갑다. 세상 좁네. 내가 너한테 보험 상담을 받게 될 줄은 몰랐네.”

순간, 과거의 상처들이 불쑥 떠올랐다.

하지만 눈앞의 그녀는 더 이상 교복을 입은 학생이 아니었다.

검은 드레스를 입고, 손에는 고급 와인이 들려 있었다.

성공한 기업가, 이곳의 주인.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명함을 내밀었다.

“저… 김나나라고 합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네요.”

그녀는 명함을 잠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하지. 근데 넌 많이 달라졌네. 예전엔 말도 못 하던 애였잖아.”

나는 차분히 대답했다.

“네, 많이 변했죠. 이제는… 제 목소리로 사는 사람이니까요.”

순간,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서울의 야경이 발밑에 깔려 있었다.

가슴이 묘하게 벅차올랐다.

과거의 나를 짓눌렀던 이름, 오미나.

하지만 이제는 같은 테이블에 앉아 비즈니스를 이야기하는 상대가 되어 있었다.

그날 상담은 오래 이어졌다.

상품 설명이 끝날 즈음, 오미나는 와인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나나야, 내가 옛날에 너한테 했던 일… 미안했어.

나는 잠시 침묵하다가 미소 지었다.

“괜찮아. 그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거니까.”

창밖에 반짝이는 서울 불빛이 우리 대화를 비추었다.

그날, 시그니엘에서 내려다본 서울은 내게 다른 의미였다.

더 이상 과거의 상처에 묶인 소녀가 아니었다.

나도 그녀도 지금은 당당히 각자의 길을 걷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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