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퇴 전, 나는 자퇴생들에 대한 사회의 시선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청소년으로 보이는 사람이 한낮에 지나가면 '왜 학교가 아니고 여기에 있지'라는 눈빛으로 쳐다볼 것 같고, 가게나 병원 등에서 나이를 밝혔을 때 이상한 눈초리를 받거나 뭔가 문제가 있는 학생임을 직감하고 불쾌해할 것 같았다. 너무 극단적이게 보이겠지만 그때 당시에만 해도 이렇게 느꼈다. 내 심리적 문제가 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한국 사회가 '자퇴생'이란 존재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았다.
현실은 어떨까. 내 경험에 의하면 사실 이 정도는 아니다. SNS 반응들을 보면 아직 대부분은 자퇴생에 대해 탐탁지 않아 한다는 분위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자퇴를 한 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눈앞의 남한테 별로 관심이 없다.
나는 소설가라는 꿈이 있었기에 평일 오전엔 늘 동네 도서관에서 책을 보는 활동을 하고 있다. 도서관에 들어가면 대부분은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들이다. 그 틈에 내가 들어가도 정말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평온히 읽고 있으시던 책이나 신문을 마저 보신다. 괜히 내가 더 신경 쓰여서 책을 덮거나 고개를 두리번거린 적이 더 많다.
길거리를 걸을 때도 학교밖청소년인 나를 향한 이상한 시선 같은 건 전혀 느끼지 못했다. 왜 그런 생각들을 했을까 찬찬히 나 자신을 돌아보니 비참하지만 이런 답이 나왔다. '내가 그들을, 나를 그렇게 보고 있었다'라는.
난 지금도 나서서 당당하게 자퇴생이라고 밝히지 않는다. 가능하면 밝히지 않는 선에서, 누가 물어보지 않는 이상 말을 꺼내지 않는 쪽으로 대화를 끝낸다. 굳이 쓸데없는 에너지를 소비하여 모르는 사람을 알기 귀찮은 것뿐이지. 사람들은 여전히 자퇴생에게 편견이 있을 거야, 이게 진짜 현실일지도 몰라, 무의식적으로, 자동적으로 그렇게 생각해 버렸다.
아직도 이 부분은 혼란스럽다. 절대다수는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마치고 졸업하는 이곳에서, 스스로 소수가 되는 일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칠까—그걸 많이 고민했고, 검색해 봤고, 찾아보기도 했다. 세상이 많이 달라져서 이제는 예전만큼 잣대가 따갑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여전히 부정적인 시선은 남아 있었다. 그래서인지 나도 여전히, 내 꼬리표를 쉽게 드러내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도 내가 발견한 해답이 있다면,
누구의 시선에도 흔들리지 말고, 나아가자는 것이다.
뻔하고 간단한 말이지만, 결코 쉬운 행동은 아니다. 우리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에 자연스럽게 주변을 의식하게 되고, 가지고 있는 ‘특별한 꼬리표’ 하나가 마음에 걸리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다른 사람의 시선보다 더 중요한 건 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느냐다.
나의 경우, 생각보다 세상은 나를 그렇게 보지 않았는데도, 나 스스로를 그 시선 속에 가두고 있었다. 나 자신을 믿지 못하고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편견 속에서 바라보고 있었던 거다. 이건 자퇴생이란 꼬리표 때문에 실제로 따가운 시선을 받은 사람에게도 전하고 싶은 말이다.
나는 나를 제일 잘 아니까,
남들이 뭐라 하든 신경 쓰지 말고,
나를 믿고, 나아가자.
이건 나에게도 여전히 진행 중인 이야기지만, 그래서 더 하고 싶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