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가 말하는 시간 속에서, 나만의 속도로 걷다
숫자는 뛴다, 나는 멈춘다
뉴스는 매일같이 말했다.
“집값 반등세 본격화.”
“거래량 3개월 연속 증가.”
기사를 열면 빨간색 화살표가 반짝였고,
앵커는 ‘지금이 기회’라는 단어를
자막보다 먼저 목소리에 담았다.
그래프는 우상향하고,
해설자는 숫자 사이에서
우리의 선택을 예측하듯 설명했다.
그 모든 신호는 명확했다.
움직여야 한다고,
지금 아니면 늦는다고.
모두가 돌아서는 타이밍에
혼자 서 있으면,
영영 기회를 놓친다고 했다.
뉴스에 등장하는 수치는
하루가 다르게 반등했고,
누군가는 벌써 웃으며
계약서를 들고 인증샷을 올렸다.
마치 '움직인 사람만이 미래를 쥘 수 있다'는
공식처럼 작동하는 분위기.
하지만 나는 달라지지 않았다.
뉴스는 뛰었고,
세상은 달아올랐지만
내 아침은 여전히
어제와 똑같은 커피 향으로 시작됐다.
커피를 내리는 손은 여전히 같은 리듬을 탔고,
익숙한 창밖 풍경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무표정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달라진 건 오히려
뉴스를 읽는 내 표정이었다.
괜찮은 척하면서도
어쩐지 조금은 주눅 들고,
놓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 속에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곤 했다.
창밖은 평온했지만,
내 안은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다.
지금이 반등의 순간이라는 외침 속에서
나는 내 삶의 움직임이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을
조용히, 또렷이 느끼고 있었다.
그 어색한 간극 속에서
나는 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뉴스는 올랐다고 했지만,
내 삶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그 사실이 어쩐지,
나를 조금 외롭게 만들었다.
아무 일도 없는데, 불안은 시작되었다
지표는 확실히 올랐다.
뉴스는 반등이라 했고,
전문가들은 근거를 제시하며 말했다.
"이제 바닥은 지났다. 올라갈 일만 남았다."
카페에는 인증글이 쏟아졌다.
“오늘 드디어 계약했습니다.”
“이제 진짜 시작이네요.”
남들이 전진할 때,
나는 같은 자리에 그대로였다.
걷는 거리, 마시는 커피,
창밖으로 스치는 바람의 냄새까지
그 모든 감각은 달라진 게 없었다.
내 하루는 여전히 규칙적으로 흘렀고,
뉴스만이 그 속도를 혼자 앞질러 갔다.
그런데도 말이었다.
나는 불안했다.
움직이지 않는 내가
틀린 것처럼 느껴졌다.
화면 속 숫자는 올라가고,
은행은 조건을 완화하고,
지인은 연락해 말했다.
"지금 아니면 또 기회 놓쳐."
그 말은 조언이 아니라
내 결정을 흔드는 마법처럼 작용했다.
간단한 말 몇 마디였지만,
그 안에는 판단을 재촉하는
강한 에너지가 담겨 있었다.
불안은 외부에서 시작돼
내 안에서 증폭됐다.
나는 조용히 한숨을 쉬었고,
그 한숨조차도
이상하게 무겁게 느껴졌다.
밤에는 뒤척였다.
머릿속은 숫자로 가득 찼고,
지표 하나, 뉴스 한 줄이
내 하루의 감정을 좌우했다.
창을 닫고 불을 껐지만,
생각은 꺼지지 않았다.
움직이지 않았다는 죄책감과
결정하지 않았다는 불안이
뒤섞인 채, 조용히 나를 잠식해갔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몸은 마치 경고를 받은 듯
깊은 긴장감에 갇혀 있었다.
그리고 문득 생각했다.
이 무게는 계산서에 나오지 않는다.
나는 지금,
숫자가 말하지 않는 세계에 있었다.
그 세계는 조용했고,
그 조용함이 나를 두렵게 만들었다.
그 집에서의 나를 상상할 수 없었다
뉴스는 말한다.
그래프는 오르고 있다고.
유튜브는 알려준다.
언제 사야 하는지,
지금이 왜 기회인지.
숫자는 정확했다.
데이터는 차갑고 깔끔했다.
수치들은 방향을 가리켰고,
그 방향은 마치 정답처럼 보였다.
하지만 나는 다른 질문을 하고 있었다.
이 집에서 아침을 맞는 나는
어떤 기분일까?
창문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줄까?
햇살은 어떤 각도로 들어올까,
주방은 따뜻할까,
밤에 불을 끄면 집 안의 공기는 차가울까.
비 오는 날엔 어떤 소리가 들릴까.
벽지는 어떤 색이고,
욕실은 좁지 않을까.
이불을 덮고 누웠을 때,
바닥은 고요할까, 낯설게 울릴까.
그 집에서 혼자 앉아 있는 나를
나는 상상해보려 했다.
하지만 어쩐지,
그 장면은 흐릿했고,
그 흐릿함은 내 결정을 가로막았다.
혹시 그 공간이 너무 낯설어서였을까.
아니면 상상 속의 내가
그 집에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일까.
생각하면 할수록,
그 집은 더 멀어졌다.
몸이 아닌 마음이 먼저
그 집에 들어가길 거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장면을 계속 붙잡으려 했지만
그럴수록 더 멀어졌다.
삶은 그렇게,
수치로는 닿을 수 없는 거리 속에서
조용히 방향을 정하고 있었다.
감각이 말하지 않는 집은
결국 내 삶이 들어설 자리가 아니었다.
작은 직감 하나가 나를 지켰다
누군가는 말했다.
“데이터는 거짓말하지 않아.”
맞는 말이었다.
지표는 조작되지 않고,
수치는 흔들림 없이 그려진다.
그 정확함에 위안을 느끼기도 했다.
누군가는 그 숫자를 보며
용기 있게 움직였고,
실제로 좋은 결과를 얻기도 했다.
나는 흔들렸다.
나도 그렇게 움직여야 하나?
이제는 진짜 결정해야 할 때가 온 건 아닐까?
혼란은 조용히 마음 안으로 스며들었다.
사람들은 판단이 빠를수록 이득이라고 했고,
나는 점점 더 느려지는 내 자신이
답답하기도,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 용기를 따르지 못했다.
아니, 따르지 않기로 했다.
나는 화면 속 수치보다
내 안의 낯선 감정을 더 오래 바라봤다.
움직이지 못하는 이유는
계산의 오류가 아니라
감정의 진동 때문이었다.
확신보다 주저함이,
정보보다 직감이
그날의 나를 이끌었다.
그리고 그 직감은
아주 작은 목소리였지만
명확하고 단단했다.
“지금이 아닐 수도 있다.”
그 한마디가 나를 지켰다.
그 말은 마치
이름 없는 감정이 만든 신호 같았고,
나는 그것을 해석하지 않아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멈췄다.
두려워서가 아니라,
그 기준이 내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뉴스는 참고였다.
숫자는 방향일 뿐이었다.
기준은, 결국
내가 선택하고 감당하는 것이었다.
그 선택에 책임질 사람은,
나 자신뿐이었다.
빠르지 않아도 괜찮다고, 나는 나를 기다렸다
지금도 세상은 속삭인다.
‘지금 아니면 늦는다.’
‘모두가 움직이고 있다.’
‘놓치면 다시는 못 온다.’
그 속삭임은
귓가에 맴도는 소문처럼
내 생각을 지배하려 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 말들에 대답하지 않기로 했다.
이 삶은 내 것이다.
내 리듬, 내 박자,
내가 정한 기준으로 살아가는 삶.
천천히 가도 괜찮다.
뒤처져도 괜찮다.
잠시 멈추어도,
머뭇거려도 괜찮다.
조급한 선택은
언제나 뒤늦은 후회로 돌아왔고,
나는 그 기억을
내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한 번의 결정은
평생의 생활을 바꿀 수도 있다.
그렇다면 조금 더 오래 생각하는 건
늦음이 아니라, 준비일지도 모른다.
나는 늦은 걸 탓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를 기다려주는 나 자신이
고맙게 느껴질 때가 있다.
삶은 기다려줄 줄 아는 사람에게
또 다른 리듬을 허락해준다.
그 리듬은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했고,
나는 그것을 믿기로 했다.
뉴스는 날마다 바뀌지만
내 마음은 매일 나를 향해 묻는다.
“너는 정말 괜찮은가?”
그 물음에 대답할 수 있다면,
나는 지금도
잘 가고 있는 것이다.
흔들려도,
내 리듬 안에서
나는 멈추지 않고
조용히,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