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가격보다 무서운 건, 선택 이후의 후회였다

후회란 감정의 무게를 견디는 일

by 이담록


‘가격’보다 큰 감정

가격은 숫자다.
계약서에 적히는 금액, 평당 시세, 이율, 세금까지.
모두 수치로 계산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숫자에 달라붙는 감정은,
계산이 되지 않는다.

‘이 가격이면 싼 거야.’
‘더 오를 수도 있어.’
‘지금 아니면 손해지.’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지만,
그 말엔 보이지 않는 감정이 겹겹이 얹혀 있다.
불안, 기대, 그리고 남보다 뒤처질지도 모른다는 초조함.

삶의 선택은 숫자로만 결정되지 않는다.
숫자는 방향을 가리킬 뿐이고,
결정을 내리는 건 언제나 그 사람의 마음이다.
그리고 그 마음은, 흔히 후회라는 이름의 무게를 지닌다.




후회라는 그림자

계약이라는 결정은 한 순간이다.
서명, 도장, 손끝의 미세한 떨림.
그러나 그 뒤에 오는 감정은 훨씬 오래 지속된다.
사람들은 그 감정을 후회라고 부른다.

“오르긴 했지. 그런데 왜인지 모르겠어.
마음이 이상하게 가라앉아.”

집을 산 친구가 조심스레 꺼낸 말이었다.
뉴스에선 축하받을 일이라 했고,
카페에선 ‘승자’로 불렸지만,
그의 표정엔 불안이 서려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선택했기 때문에 생긴 감정,
그리고 내가 멈췄기에 피할 수 있었던 감정.

후회는 결정의 뒤에 오는 그림자다.
그림자가 길수록, 우리는 그 결정을 되돌아보게 된다.



흔들림의 정체

사람들은 내게 말한다.
“그땐 왜 안 샀어?”
“지금은 훨씬 올랐잖아.”
그 말들은 단순한 조언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질문이다.
‘너는 왜 다르게 살고 있냐’는 무언의 물음.

흔들렸던 건 단지 가격 때문이 아니었다.
그 말들, 시선, 그리고 나 스스로에 대한 의심.

‘나는 너무 소심한 걸까?’
‘혹시 겁쟁이는 아닐까?’
‘이 선택이 나중에 후회로 남진 않을까?’

그 질문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결국 나를 흔든 건 외부의 숫자가 아니라,
내면의 불안이었다.




후회를 미리 그려보다

선택을 앞두고, 나는 상상했다.
그 집 안에서의 하루,
창밖을 보는 나, 커피를 내리는 아침.

하지만 그 장면이 따뜻하지 않았다.
책상 앞에 앉은 나의 표정은 무겁고,
달력엔 낯선 납부일자만 줄지어 있었다.

계약서는 삶을 묶는 끈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끈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그 삶은 쉽게 조여 온다.

나는 그 장면이 버겁게 느껴졌고,
그래서 선택하지 않았다.
그 결정은 결과적으로 후회를 피하게 만들었다.




선택 이후의 책임

선택은 순간이지만,
그 이후를 살아가는 일은 일상이다.

집을 사는 것은 시작일 뿐,
그 이후의 대출, 유지비, 관계,
모든 것이 새로운 책임으로 따라온다.

사람들은 그 책임을 ‘가성비’나 ‘투자’라는 말로 포장하지만,
사실은 감정의 내구력을 시험받는 시간이다.

나는 아직 선택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회피가 아니라, 준비였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후회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한 시간이었다.




나를 지키는 선택

세상은 말한다.
빠르게 결정하고,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하지만 나는 알게 되었다.
속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걸.
바로 방향이다.

방향은 내 안에서부터 시작된다.
타인의 말이 아니라,
내 삶의 호흡과 리듬으로.

나는 여전히 고민하고 있다.
그러나 그 고민은 멈춤이 아니라,
나를 지키는 연습이다.

조금 느릴지언정,
그 방향이 나를 향하고 있다면,
그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keyword
이전 05화뉴스는 올랐지만, 나는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