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살인자 리포트'
필자는 보통 영화의 예고편과 포스터, 소개 등을 통해 어느 정도 가이드라인(?)을 세운 뒤 영화를 관람한다. 쉽게 말해 영화의 이야기, 흐름, 캐릭터 등을 예상하고 관람을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 '살인자 리포트'는 필자의 예상과 다르게 전개되었다. 두 배우의 호흡과 연기적 앙상블로 장르적이고 극적인 서스펜스를 발생하고, 일정 부분은 신선하게 느껴질 줄거리가 영화의 긴장감을 부여한다. 역시나 인상적인 것은 '정성일' 배우의 연기였다. 과거의 영화 '양들의 침묵'에서 '한니발 렉터' 박사가 연상될 만큼의 인상적인 연기력이다. '정성일' 배우가 이를 의도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냉철함과 여유를 지닌 모습은 그와 몹시 흡사했다. 또한, '조여정' 배우는 시간이 흐를수록 연기가 무르익는 느낌이다. 점점 내공이 쌓이고, 필모그래피가 다양해지면서 연기적 스펙트럼도 상당히 넓어진 듯한 연기를 선보인다. 그리고 이 두 배우를 한정된 공간으로 몰아넣은 '조영준' 감독은 '태양의 노래'에 이어 스릴러 장르에서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입증하듯 신선하고 참신한 연출력을 내세운다. 밀폐되고 한정된 공간에서 두 배우의 열연을 통해 극한의 서스펜스를 선사할 영화, '살인자 리포트'를 두 배우, 그리고 '조영준' 감독의 연출력을 통해 살펴본다.
좌천당할 수 있는 위기에 놓인 기자 '백선주'를 통해 '조여정' 배우는 그동안의 필모그래피로 쌓인 다양한 연기적 내공과 경험을 이번 영화 '살인자 리포트'에서 마음껏 펼친다. 인상적인 부분은 '백선주'의 감정 곡선을 극의 상황에 맞춰 매우 적절하게, 그리고 효과적으로 표현한다는 점이다. 한정된 공간에서, 액션과 리액션을 오고 가며 펼치는 연기와 호흡이 서사와 함께 자연스럽다. 또한, 상대역인 '정성일' 배우와 펼치는 연기의 앙상블이 상당하다. 보통 이런 스릴러 장르에서는 배우들이 강렬한 연기에 집중하곤 한다. 스릴러 장르가 연기적으로 가장 돋보일 수 있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여정' 배우는 강렬한 연기보다 배역과 서사에 적절히 스며들어 녹아든 연기를 펼친다. 기자와 엄마의 역할에서 공감할 수 있는 욕망과 모성애가 '백선주'에게 공존하며 영화의 전반부와 후반부가 구분되어 관객에게 감정적으로 작용한다. 전반부에서는 기자에 충실한 '백선주'를 통해 장르적인 재미를, 후반부에는 엄마의 역할에 집중해서 영화가 드라마틱 하게 전개된다. 물론, 이런 분위기의 구분이 영화에 전체적으로 긍정적인 영향만을 끼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조여정' 배우의 연기력이 영화의 이런 구조를 관객에게 설득하며 극의 몰입을 돕는다.
연쇄 살인마이자 정신과 의사인 '이영훈'을 맡아 배우로써 새로운 모습을 선보인다. 평소의 이미지인 신사적인 모습이 인물에 적절히 녹아있으면서, 반전으로 사이코패스적인 모습까지 함께하니 인물에 대한 장르적 쾌감이 상당하다. 영화의 주요 흐름이 두 배우 간의 심리전인 만큼 상대역인 '정성일 '배우의 연기 또한 매우 중요하다. 감정적인 면모를 보이는 '조여정' 배우와 대조적으로 여유 넘치는 태도가 가득한 '이영훈' 캐릭터는 무척이나 흥미롭다. 이런 두 인물의 대조적인 뉘앙스가 서로 맞물려 영화가 보다 극적으로 흘러간다. 한편, '정성일' 배우의 의도였는지는 모르지만 영화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렉터' 박사가 떠오르는 이유는 인물 '이영훈'이 기시감과 신선함 그 사이의 지점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자에게 신선함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정성일' 배우의 연기력이 기본적으로 탄탄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캐릭터에 맞춰서 목소리의 톤, 미소의 분위기, 신체적인 자세, 구사하는 어휘 등 모든 것을 치밀하게 준비한 것처럼 보인다. 인물의 애매모호한 지점을 개인의 연기력으로 말끔히 지운다. 이는 그의 새로운 가능성을 증명하는 부분이며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이유 중 하나다.
한정된 공간, 스릴러 장르와 소재, 그리고 두 인물의 호흡만으로 극을 전개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거기에 반전으로 인한 장르적인 재미까지 부여해야 한다. '조영준' 감독은 극의 시퀀스를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게 구분하고, 그것을 시각적으로 은밀하게 표현한다. 이는 한정된 공간에서 감독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미장센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그 공간에서 극의 서스펜스를 적절히 조정한다. 두 배우 간의 이뤄지는 대화는 꽤나 맛있게 느껴지고, 극의 매끄러운 전개를 돕는다. 한정된 공간, 적은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지루함은 없다. 다만, 아쉬운 부분은 영화에서 중요하게 느껴질 선악의 구분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이영훈'을 통해 드러나는 그의 의뢰인들이 가진 악함과 연약함이 공존하는 양면성도 모호한 성향이 있다. 그리고 후반부에서 보게 되는 마치 악역이 선역으로 보이는 듯한 착각으로 영화의 주제의식은 불분명하게 다가온다. 두 배우의 훌륭한 연기와 장르에 걸맞은 연출은 긍정적이지만 영화의 모호한 주제의식은 다소 아쉽다. 그럼에도 한정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로 인해 장르적인 긴장감이 넘치는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 평점 : 3.5 (추천)
* 한 줄 평 : 한정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매력적인 서스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