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 앞에선 누구나 무너져 내린다
_
대한민국 의료체계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말해왔지만
사실 대부분의 사람이 알다시피
가장 중요한 대학병원과 응급대응시스템에서
한참 전부터 무너져있는 실상이다
아픔이라는 건 참 광범위해서,
언제 어디서나 겪을 수 있는 일이지만
막상 당사자가 되기 전엔 체감이 되질 않는다
_
내가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누군가의 아픔을 옆에서 목격하는 것 또한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30여 년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머리를
꾸미고 다듬어주며 가정을 이끌었던
어느 두 아이의 엄마가 있었다
화학약품을 수도 없이 마시고 눈에 담으며
몇십 년을 보내다 보니
눈은 멀고 심장은 굳었다
돋보기를 껴도 희미한 글자
비정상적인 박자로 뛰는 심장에
무너져내리는 몸
그녀가 몸 바쳐 30년을 일한 대가였다
_
심방쇄동을 동반한 심부전증
그녀의 병명이었다
자다가 뇌가 흔들릴 정도의 큰 충격에
새벽에 몸을 감싸고 응급실을 찾았지만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받을 수 있는 치료가 없었다
대학병원서 확실한 병명을 듣고
치료 방법을 모색해 보기 위해
찍어야 하는 심장초음파를 위해서는
최소 3개월 이상 기다려야 한다는
매정한 답만 돌아왔다
하루라도 빨리, 더 빨리
치료를 시작해야 하는데 조급한 마음에
옆에서 타들어가는 그녀의 속만큼이나
내가 같이 물들어 물들어 젖어갔다
_
아픈 사람 치료해 주는 게 병원이라고 배우는데
막상 아픔을 당장 치료받을 수 없다는 현실이
지겹도록 미웠으나
병원만이 이 해답을 쥐고 있다는 사실 앞에
또 무너져 내렸다
아픈 딸을 두게 된 엄마의 심정은 어떨까
짐작해 왔던 바가 있었으나
막상 아픈 엄마를 두게 된 딸이 되고 나니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모든 게 죄스럽고 그저 슬펐다
엄마 곁에 존재하기만 하는 내가 하고 있는 게
과연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지
아니면 곁에 존재하는 게 맞는지 조차
헷갈려서 슬프다
_
엄마가 아프다
그 사실만큼 나를 무너지게 하는 건 없다
하지만 그건 현실이고
사실 그걸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 별일 없냐고 물어보면
나는 웃으며 별일 없다고 말해야만 하고
잠시동안 그 사실을 잊은 채 일을 하다가
삶을 보내다가 흘러 흘러
다시 홀로인 시간이 찾아오면
그 순간 덮쳐오는 감정에 그저 쓰러져있다
그렇게 그저 쓰러져있는 것이다
엄마를 위해 무언가 방안을 모색해 본다던가
병에 대해 깊게 찾아본다던가
그런 사랑을 하지 못하는 내가 많이 미웠다
못하는 걸까 안 하는 걸까
이런 나는 엄마에게 악인이지 않을까
답을 할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 나도,
그런 질문을 하게 만드는 사람이었을까
답을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