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허망하고도 뚜렷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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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병원에서 무언가 이상증상을 발견하면
더 큰 병원, 상급병원을 가라고 권유받는다
세브란스나 중간종합병원, 대학병원
좀 더 나은 기관에서 좀 더 나은 진료를 받아
내 질병을 자세히 파악하고 치료를 받는 것.
어쩌면 이론상의 이야기일 뿐이다
모든 의사가 그런 것은 아니고
모든 간호사가 그런 것도 아니지만
환자의 입장에서 서술하자면
대부분의 의료진들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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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심장병은
산부인과 수술을 받기 위한 검사를 하다가
알게 되었다
부정확하게 뛰는 맥박 이상증세를 알고 난 후
우리 가족에겐 경고등이 켜졌다
엄마에게 있는 선근종, 용종 등
진단받고 온 것들은 온통 위험한 것들이었고
이미 충분히 긴장상태였기 때문이다
우리의 지붕이고 집이자 그늘이었던
엄마의 흔들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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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케줄 근무를 하고 있어
급작스럽게 병원 스케줄이 잡히면
엄마와 함께할 수 없다
엄마의 취침시간은 늦어도 12시이고
나의 퇴근시간은 빨라도 12시라
같은 집에 살아도 얼굴 한번
진득이 마주 보기가 힘든 상황이다
오랜만에 그런 엄마를 보고 얘기를 나눌 때면
저번에 다녀왔던 병원은 어땠는지를 묻는다
대기순번을 받아 몇 날 며칠을 기다리다
드디어 만난 의사에게
엄마가 겪은 아픔을 설명하는 자리,
모니터만 쳐다보며 손사래를 치고
시답잖은 말을 한다는 듯한 눈빛,
무언가 말을 하면
뚝 끊고선 기계처럼 말하는 태도,
결국 정확한 병명도
엄마가 처방받은 약들을 조합해
검색하고 ai에게 물어보고서야 알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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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망스럽고 화가 났다
따라가서 보호해주지 못한 내게
환자와 의사의 명목으로 마주친 그들을
적으로 바라보고 싸워야 하는 이 상황에,
그들이 과연 의료진의 역할을
다 하고 있는 게 맞는 거냐는 본질적인 의문에,
모든 것이 그저 악으로 느껴졌다
엄마가 응급상황에 놓여
급하게 연락을 취하려 해도
담당 교수에게 전달시도조차 하지 않고
그저 진료날까지 기다리라는 말,
그저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들을 적으로 돌리게 만든다
어쩌면 그 말 한마디에 생명 하나가 죽고 사는데
조금만 신경 써서 해주면 어떨까
조금만 정성 들여 처방해 주고 진료 봐주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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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응당 인과응보라-
그들이 내 소중한 사람에게 막 대하니
그들도 언젠가 아플 때 꼭 이 감정을 느껴보길,
하며 자연스레 누군가의 슬픔을 기원한다
그렇게 나는 매일 서 있는 선과 악의 경계에서
결국 악을 택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병원에서 느꼈던 수많은 악들은 분명 실존했다
내 기분 탓이거나 주관적인 게 아니라
답이 보이지 않아 어쩌면 허망하고도 뚜렷한,
그저 그런 악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