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한 조각에도, 80년의 시간이 스민다
대전 인근에 근무하는 친한 후배가 톡을 보내왔습니다.
“선배, 광복절빵 보내기에는 애매하니 사진이라도 보세요”라며 빵 사진을 첨부했습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보낸 그 사진 속 태극기와 무궁화가 새겨진 상자를 보는 순간, 묘하게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올해 광복절은 조금 특별합니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거리에는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이고, 길가에는 무궁화가 화사하게 피었습니다. SNS에는 ‘광복절빵’을 인증하는 사진이 잇따르고, 편의점 진열대에는 태극 문양 도시락이 나란히 놓였습니다.
어쩌면 무거운 역사 담론보다, 일상 속 작은 실천에서 의미를 찾고 공유하려는 것이 요즘 세대의 방식일지도 모릅니다.
성심당의 ‘광복절빵’은 네 개의 마들렌이 고운 상자에 담겨 있습니다. 상자를 열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데니 태극기의 브로슈어가 들어 있습니다.
그저 간식이 아니라, 광복 80주년을 기념하는 작은 ‘기억품’입니다. 수익금 일부가 지역 경제와 일자리 창출에 쓰인다는 점도 뜻깊습니다.
광복절을 맞은 기업들의 움직임은 빵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편의점 도시락에는 윤봉길 의사의 문구가 적혀 있고, 태극 문양의 키보드 키캡이 랜덤으로 들어 있습니다. 네 개를 모두 모으려는 사람들도 많다고 합니다.
은행은 8.15% 금리의 특별 적금을 내놓고, 한 기업은 국가보훈부와 함께 광복 당시의 만세 함성을 AI로 재현한 영상을 공개했습니다.
이 모든 시도가 비록 마케팅의 옷을 입고 있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광복의 이야기가 빵, 도시락, 키보드, 영상 속에 담겨 우리의 일상으로 스며드는 것만은 반가운 일입니다.
빵을 고르다 태극기를 보고, 도시락을 먹다 윤봉길 의사의 문장을 읽고, 키보드 자판을 누르다 무심코 무궁화를 떠올립니다.
평생을 군인으로 살며 수없이 보아온 태극기였지만, 빵 상자에 담긴 그 모습은 또 다른 무게로 다가왔습니다.
그 순간, 80년 전의 함성이 내 일상 속으로 성큼 걸어 들어온 듯했습니다.
광복절은 1년에 하루입니다. 그러나 그 하루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조금 더 오래 독립의 의미를 생각하게 됩니다.
또한 그런 순간들이 모여, 80년 전의 뜨거운 숨결과 오늘의 우리가 이어집니다.
어쩌면 기억은 이렇게 사소한 물건 속에 스며드는 것 아닐까요.
후배가 보내준 사진 속 빵을 보며, 저는 오늘 하루를 조금 더 곱게, 조금 더 깊게 기억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조용히 외쳐봅니다.
“대한독립 만세.”
*데니 태극기: 대한제국 말기, 고종 황제의 외교고문으로 활동했던 미국인 오웬 니커슨 데니(Owen N. Denny, 1838~1900)가 소장했던 것으로, 그의 이름을 따서 "데니 태극기"라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