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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을 놓아버리기

by 삶은계란 Mar 26. 2025

토사구팽.

잠깐이지만 그 단어가 어렴풋이 생각났다. 


평소 같았으면, '조금만 더 노력해서 회사에 보탬이 돼야지'까지 갔을 거다.

하지만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언젠가는 내가 더 이상 이 회사에 필요 없는 사람일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었다.


결국 '나의 열심'과 '노력'은 '징징거림'일수도 있겠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이상의 노력을 하지 않으면 버려질 수도 있겠다.


버려질 수도 있겠다. 

그 단어 자체가 참 웃겼다. 왜 그렇게 나는 그것에 목을 매고 있지?

.

.

.

어제 읽은 책 글귀가 갑자기 생각이 났다.

언젠간 써먹겠지 싶어 머리에 저장되어 있던 한 줄, 그리고 지금이 응급상황 같아 적용해 보기로 했다.


'걱정해 봐야 아무짝에도 소용없다' 



실천해 보기 위한 내 상황 분석해 보았다.


1단계. 대담하고 솔직하게 분석하고 실패의 결과와 최악의 경우 생각하기


1. 대담하고 솔직하게 분석하기

1) 회사에 대한 억울함과 분노.

이 억울함과 분노는 뭘까? 그래. 이 감정은 그저 개인적인 감정이다. 

마땅히 회사는 더 많은 걸 창출하기 위해, 그에 준하는 노동력을 

한 사람에게서 최대한 많이 얻어야 하는 입장일 거다. 

원래 스타트업이 다 그렇지 않은가? 

그걸 선택한 건 나. 그리고 나는 그에는 미치지 못하는 인간이다.


2) 현실적인 커리어 방향성

사실 이미 두 달 전부터 고민을 하고 있었다. 내 커리어와 현실적인 방향성에 대해서.

안정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나에게 또 다시 직업의 노선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은 굉장한 압박감이였다.

그리고 현재는 내 인생에서 가장 안정적인 시기였다.


개발의 '개'자도 모르던 30살 여자가 3개월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개발자가 되었다니? 말도 안되지 않은가.

그러나 나는 그걸 해냈고, 

주변에서 들려오는 '역시 넌 대단해'에 단단히 자기도취에 걸렸던 모양이였다.


그 이후 나는 내가 '대단한' 사람임을 증명하기 위해, 즉 커리어 성장을 위해 미친 듯이 헤엄쳤다.

보이지 않는 오리의 밑바닥처럼.

하지만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개발에 특출 난 사람들이 노력해야 하는 양의 10배를 노력해야 나의 1이 될 수 있었다.


더 성장하기 위해 풀스택이라는 멀티플레이어 영역에 진입하려고 했다.

이것저것 배워보고, 과외도 구해보고 인강에 쓴 돈만 몇백인지 모르겠다.

나는 내 '몸값'을 늘려야만 했다. 내 자존감 그리고 주변의 시선에 자유롭기 위해서. 나는 나임을 증명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에는 한계가 있었고, 이를 받아들이는데까지 1~2년이 걸렸다.

차선책으로, 나는 프런트엔드 개발 경력을 살리고 싶어 한동안 구직사이트를 뒤졌다. 

하지만 IT버블이 꺼지고 난 후 경쟁률은 이전의 공무원 경쟁률보다 심해보였다. 

보는 것만으로도 구역질이 났다.


어중이 떠중이. 미친듯한 오리 발길질로 열심히 주워듣고 배워가며 목숨 부지한 개발 4년차.

현실적으로 나는 이 일을 과연 언제까지 할 수 있으며, 이직은 가능하기나 할까?


사실 이 루트에서 실패라고 해봤자 일을 그만두는 것이다. 

단지 이 실패가 두려운 것은, 그동안 쌓아왔던 커리어에 대한 아쉬움과 주변 사람들의 시선.

나를 믿고 자랑스러워 하는 어머니의 실망스러운 눈동자.


2단계. 최악의 경우를 생각 후 필요하다면 그것을 감수하기


1) 이직을 하게 된다면? 

자. 현실적으로 생각해보자.

- 이직을 하게 된다면 동일한 스펙, 혹은 풀스택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나는 그것이 가능한 사람이고 현재 가능한 상태인가?


# 결론은 불가능하다. 나중은 모르겠지만 현재의 나는 개발에 대한 에너지가 모두 고갈된 상태다.


- 주변 멘토에게 이직을 부탁한다? 


# 이 전에 몇 번 이직 제안을 받은 적이 있다. 본인이 필요할 때만 연락하는 건 참 염치없는 일이다. 그리고 가능하다 하더라도 열정의 불씨가 꺼진 마당에 참 추접스럽다.


2) 다른 직업을 찾아보기

- 뭘 하든 먹고살 수는 있을까? 

# 먹고살 수는 있을 것 같다.

- 그래서 다음은. 뭘 할 수 있지? 

# 코딩강사? 미술 관련? 취미로 배우고 있던 미용이나 사진? 이참에 영어를 죽도록 배워볼까?

# 아니 그보다 중요한 건 당장 '벌어먹을 것'이었다.


3단계. 최악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차분히 시간과 힘을 쏟기


1) 최악의 상황을 개선하기 - 이직

아무리 생각해도, 이 상황을 개선할 수는 없었다.

죽을 것 같은데 뭘 개선해야 하지? 이직..이직이 답인가?


2) 최악의 상황을 개선하기 - 다른 직업을 찾아보기

가만히 내면을 들여다보니, 결국 이 직업, 이 회사에 있는 이유는 

내가 이만한 돈을 벌 수 있나에 초점이 맞춰지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이 회사에 원하는 게 오직 돈 뿐이구나 와 직결되었다.


그래서 계산기를 두드려봤다. 

시급으로 치면 꽤 많이 세긴 하지만, 불가능할 것도 없었다.

어차피 제일 일찍 가고 제일 늦게 퇴근하는 인생. 조금 덜 벌 더라도 내 시간을 벌 순 없을까?

그놈의 협업. 누구를 위한 협업인가? 일단 나 혼자서도 먹고살 수 있는 건 없나?

.

.

.

아 머리가 복잡하다. 

다 모르겠고..그냥... 이왕 마음먹은 거 나를 이 상황에 던져보는 건 어떨까? 

무모했던 서른의 나 처럼.


뭐가 그리 결연했는지 모르겠다. 하하.


"이제 그만두고 싶습니다."


첫 인턴에서 정직원 채용이 안되었을 때 그렇게 서럽게 울었던 것 같은데, 왜 그때와 같이 눈물이 뜨거울까?

울지 말아야지 골백번 연습하고 다짐했는데 말이다.

아쉽고 슬퍼서라기보다는 죽도록 노력해 온 내 서러움과 고생했다는 안도감에 흘린 눈물 같았다.


그리고 나는 어쩌면 의지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회사는 나를 책임져주지 않을까. 이번에는 해피엔딩이지 않을까. 

그렇지만 차가운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는 나에겐 하루면 충분했다.


완전한 놓아버림. 

다 모르겠고.

일단은 걱정을 모두 놓아버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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