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명희의 갈등
‘이제부터는 내가 지켜야 한다.’
명희가 세 살 되던 해, 서울에서 친척이 사업 제안을 해왔다. 아버지는 망설임 없이 기회를 붙잡았다.
“이 기회 놓치면 안 돼.”
“그럼… 나도 떡집 안 나가도 돼?”
“그럼. 이제 그 고생 안 해도 돼.”
그 말에 어머니의 눈빛이 처음으로 풀렸다.
그러나 명희는 함께 가지 못했다.
“이 아이는 데려갈 수 없어요, 어머니.”
“걱정 마라. 내가 키우마.”
애비야
“남의 눈치 볼 거 없어야. 길은 자기가 뚫는 거야.”
언니와 갓난 동생은 부모를 따라갔고, 명희는 할머니 곁에 남겨졌다. 부모가 떠난 날, 마당 한구석에 웅크려 앉아 소리 없이 울었다. 아무도 달래주지 않았다.
밤이면 더 외로웠다.
“엄마… 가지 마…”
하지만 울음을 삼키는 법을 배웠고, 들판을 혼자 달리며 세상을 배우기 시작했다. 풀잎을 만지고, 나비를 쫓고, 개울에 발을 담그며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었다.
몇 달 뒤, 서울로 가는 날. 기차 안에서 명희는 창밖을 멍하니바라봤다. 시골은 멀어졌고, 낯선 도시가 다가왔다.
서울의 생활은 낯설고 버거웠다. 명희는 엄마 치맛자락을 놓지 않았다.
“같이 있어 줘.”
“다 컸는데 그러면 어떡하니.”
학교에 가서도 그랬다. 교문 앞에서 손을 놓는 순간, 다시 엄마를 따라 집으로 달려갔다.
“또 도망갔어?”
“혼자 있으면 무서워…”
그러다 아버지의 사업이 번창하기 시작했다. 작은 루핑 공장이 빠르게 성장했고, 그는 서울 변두리에서 이름을 알렸다. 공장을 키우고 친척들을 불러들였다. 어느새 아버지가 책임져야 할 식구는 서른 명에 가까워졌다.
그 무게는 어머니에게도 고스란히 얹혔다. 빨래, 밥, 제사… 일 년 열두 번 제삿날마다 부엌은 전쟁터가 되었다.
아버지는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다.
“이거 치워. 다시 해.”
어머니는 묵묵히 다시 음식을 준비했다. 명희는 숨을 죽였다. 그리고 기억했다. 무섭고, 조용하고, 억눌린 시간들.
그러나 명희는 늘 순종했다. 아버지가 원하는 말, 행동, 성적을 보여주었다.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 하면 허락이 떨어졌고, 선생님께 노란 봉투를 전달하는 일도 했다. 합창부에서 엘토를 하라는 선생님 말에 따르며, 아버지가 실망하지 않도록애썼다.
그러나 아버지는 진로에까지 개입했다.
“법대 간다더니 간호대학이 웬 말이냐? 교회가 다 망쳐놨어!”
속으로는 외쳤다.
“실질적인 도움은 한 번도 주지 않으셨잖아요.”
하지만 입을 열 수 없었다. 간호대학을 졸업하고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지만, 아버지의 만족은 없었다.
결정적인 사건은, 아버지가 명희의 성경책을 발견하면서였다.
“얼어 죽을 예수 믿는다고? 교회? 예수? 목사? 이게 뭔 소리냐!”
성경책은 바닥에 흩어져 있었고, 문장마다 난폭한 글씨가 덧씌워져 있었다.
그 순간, 명희는 얼어붙었다.
“명희야!”
거친 목소리가 집안을 울렸다.
“이 집에서 교회를 다니는 건 있을 수 없어!”
“공자를 섬겨야지, 어디 미국 잡신을 믿느냐!”
엄마는 어찌할 바를 몰라 떨며 말했다.
“이것아, 아버지 더 화나기 전에 말을 들어…”
그러나 명희는 더는 움츠러들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 저도 이제 공무원이고, 직장 다니는 성인이에요.”
명희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지만 단단했다.
“나가라면… 나가겠어요.”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아버지의 분노가 터졌다.
“냅둬! 집 나가면 다시 받아주지 마라!”
명희는 눈을 질끈 감고 방으로 들어가 짐을 챙겼다. 눈물이 차올랐지만 울고 싶지 않았다. 문을 나서며 마지막으로 집을돌아보았다. 모든 것이 여전했지만, 그녀는 이제 그곳에 다시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