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도와 명희의 웨딩마치
신혼여행의 시작
석준과 일도는 2학기 끝에 운 좋게도 한 학기를 더 다니게 되었다. 새로 부임한 교수는 미국 유명 신학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인물로, 유창한 영어로 원서를 강의하며 학생들을사로잡았다. 특히 석준은 그의 눈에 들어 자주 지도를 받았다. 한 학기는 숨 가쁘게 지나갔고, 어느덧 졸업이 다가왔다.
졸업 직전, 일도는 명희와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비용은 부모의 도움 없이 해결해야 했지만, 일도는 기세등등했다.
“오백만 원이면 돼. 사글세로 방 얻고, 부조금으로 예식비는 치르면 돼.”
부모는 한 푼도 내지 않았고, 처가에서도 예단의 절반을 돌려주었다. 그 돈으로 단칸방을 마련했다. 모든 것이, 일도의 계획대로 흘러가는 듯했다.
결혼식 날, 동기들이 찬송가를 개사해 축가를 불렀고, 박수 속에서 두 사람은 나란히 섰다. 사진을 찍을 무렵, 멀리 민구의 얼굴이 스쳐 갔다. 일도는 무심하게 손만 들어 인사했고, 민구는 조용히 사라졌다. 언젠가 가까웠던 사람, 그러나 이제는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이름이었다.
“사진은 두 장이면 돼. 가족이랑 친구들이랑 하나씩.”
일도는 예식비를 조금이라도 줄이려 사소한 것까지 조정했다. 명희는 아무 말 없이 따랐지만, 속은 조금씩 조여들고 있었다.
예식이 끝난 뒤, 명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버지가 서울역까지 차로 데려다주시겠대. 기사님이 운전하시고.”
일도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필요 없어. 택시 타면 돼. 신세 지고 싶지 않아.”
명희는 그 말에 속이 뜨거워졌다. 차라리 말없이 끌고 가면 좋았을 것을, 거절의 언어는 낯설고 차가웠다. 그는 왜 항상 이렇게 혼자서 버티려고만 하는 걸까.
서울역, 밤기차. 두 사람은 겨우 표를 받고 침대 열차에 올랐다. 칸마다 커튼이 드리워진 협소한 공간이었지만, 처음 마주한 둘만의 장소는 뜻밖에 아늑했다.
“여기야. 우리 자리.”
일도가 커튼을 젖히자, 좁은 침대 안으로 명희가 조심히 들어섰다. 순간만큼은 둘 다 웃을 수 있었다.
그러나 곧 커튼 바깥에서 검표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1인실인데 두 분이신가요? 표 확인 좀 할게요.”
일도는 당황해 표를 꺼냈다.
“분명 두 명이라고 말했는데요.”
검표원은 곤란한 얼굴이었다.
“예약엔 한 명만 돼 있네요. 추가로 결제하셔야 합니다.”
일도는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며 억지로 웃었다.
“그냥 여기서 같이 잘게요. 돈 더 드릴게요.”
그러나 명희는 아무 말 없이 일도를 따라 일어섰다. 마치 그 공간이 더는 둘만의 안식처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새로 배정된 객실. 침대 하나, 좁은 공간.
명희는 말없이 다시 누웠고, 일도도 조심히 옆에 몸을 붙였다. 서로의 온기가 닿았지만, 마음은 어쩐지 먼 데 있었다.
기차가 창밖의 어둠을 가르고 달리는 동안, 명희는 묻고 싶었다.
왜 아버지의 호의를 거절했는지, 왜 택시를 고집했는지, 왜 늘 그리도 자존심을 앞세우는지.
일도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는 속으로 끊임없이 되뇌었다.
‘작은 결정 하나가, 이렇게 많은 틈을 만들 수 있구나.’
기차는 쉼 없이 달리고 있었다.
좁게 누운 두 사람 사이, 커튼 너머의 어둠이 천천히 밀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