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도의 고난
12면체 天地否천지비
“天地不交而萬物不通也천지불교이만물불통야”라 하여, 천지가 소통하지 못해 만물이 통하지 않고 소통의 부재이다.
명희가 공무원으로 일한 지도 어느덧 10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일도는 늘 사모의 부재를 아쉽게 느꼈다.
그는 아직 젊었기에, 언젠가는 도시로 나가 교회를 개척해야한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했다.
머릿속에서는 계획이 빠르게 정리되어 갔다.
‘이번에 서울에 올라가면 본 교회에 말해보자.
인근 소도시에 교회를 개척하겠다고 하고, 선교 헌금도 요청해 보는 거야.
시골 교회는 주일 오전 일찍 예배드리면 되고,
정시인 11시에는 시내 교회로 가서 예배를 드리면 문제없겠지.
그리고 명희에게는… 이번 기회에 공무원을 그만두고, 전적으로 교회 사역을 함께 하자고 말해보자.’
일도의 결심과 고난의 시작
일도는 서울 본당의 원로목사를 찾아갔다.
목사님은 은퇴를 앞둔 연배였고, 염색하지 않은 백발이 단정히 빗어 넘겨져 반짝이는 이마를 드러내고 있었다. 뚜렷한 이목구비, 두터운 인상은 세월의 관록과 믿음의 단단함을 동시에 품고 있었다.
“일도 전도사님, 예전 전도사님은요, 때 되면 그 동네 포도 보내오곤 했지요.”
스쳐 지나가는 듯한 말이었다. 그러나 일도는 그 안에 감춰진 냉기를 느꼈다.
그는 사람 사이의 관계를 믿음과 진심으로만 엮으려 해왔고,물질을 매개로 한 암묵적 거래에는 늘 거리감을 두어 왔다.
잠시 침묵하던 목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전도사님도 아시겠지만 이제 저는 물러나고, 제 아들이 담임목사로 부임할 겁니다. 전도사님의 개척 문제는 그에게 이야기해 두었어요. 한 번 찾아가 보시죠.”
며칠 뒤, 일도는 다시 서울을 올랐다.
약속한 날, 그는 그 아들을 만났다. 미국에서 목회신학을 공부하고 귀국한 젊은 목사는 키가 크고 단정했으며, 얼굴에는밝은 기운이 어려 있었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미묘한 거리감이 느껴졌다.
“곧 담임 목사로 부임하신다면서요. 축하드립니다.”
일도는 정중히 인사했다.
젊은 목사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전도사님의 개척 건은 여러 방향으로 검토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아직 제가 교회 내에서 자리를 다잡은 게 아니라, 솔직히 지금은 좀 어렵습니다.”
짧은 만남이었다.
일도는 조용히 사무실 문을 나섰다.
뒤통수가 싸늘했다. 그 싸늘함은 곧 씁쓸함으로, 이내 모욕감으로 번져갔다.
그의 말투, 눈빛, 어딘가 부드럽고 친절했던 태도까지—전부가 형식적인 평가처럼 느껴졌다.
‘전화 한 통이면 될 일이었다. 굳이 만나러까지 왔어야 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