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

한 조각의 치킨, 우리 사이를 채우다

by 나미

그날은 아주 맑은 5월의 봄날이었다. 리키가 한국에 도착한 첫날밤. 우리는 짐을 대충 풀고, 금세 찾아온 허기를 부여잡은 채 서로를 바라봤다.


나누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지만, 배고픔 앞에서는 말보다 치킨이 먼저였다. “일단 먹고 얘기하자!”는 마음으로 가장 무난하면서도 내 최애 메뉴인 할라피뇨 마요네즈 치킨을 배달시켰다.


배달이 오기까지의 시간은 길게 느껴졌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 알림이 뜨자, 우리는 빛보다 빠른 속도로 현관 앞으로 달려 나갔다.


치킨을 받아오는 그 짧은 순간이 어쩌면 하루 중 가장 설레는 시간이었다. 박스를 열자마자 퍼지는 고소하고 바삭한 치킨 냄새. 리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치킨은 언제나 설렌다.



“오 마이 갓... 진짜 예술이야.”


그는 연신 사진을 찍으며 감탄사를 쏟아냈다.

가족들에게 보여주겠다며 핸드폰을 들고 부산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귀엽기만 했다.


“먼저 먹어봐,”

내가 말했다.
“정말 괜찮아?”

몇 번을 되묻던 리키는 머뭇거리다 결국 가장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조각을 집어 들었다.


조각은 꽤 컸고, 리키는 입이 작은 데다 수염도 있어 소스가 많은 음식을 보통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머뭇거리지 않고 치킨을 한입 베어 물었다. 조용히 눈을 감고, 깊게 음미하듯 씹어 넘기던 그 순간.


미간이 살짝 찡그려졌고,

곧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건 내가 먹어본 치킨 중에 제일 맛있어. 진심이야.”




나는 그저 흐뭇했다. 그 치킨은 나에게 위로의 음식이었다. 한국에서 혼자 지친 날, 무언가 잘 풀리지 않을 때, 금요일 밤 내 힐링 루틴 속에 빠지지 않았던 메뉴였다. 그 위로의 맛을 누군가와 나눌 수 있다는 것이, 그리고 그 사람이 그 맛을 진심으로 좋아해 주는 것이 왠지 모르게 뿌듯하고 따뜻했다.


그 순간 문득, 내가 처음 치킨을 먹은 때가 언제였는지 떠올려보려 했다. 아마도 너무 어렸을 때라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니 당연하고 익숙한 음식이었는데, 리키가 감탄하는 모습을 보니 새삼스레 “그래, 이거 참 맛있는 음식이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익숙해서 잊고 살았던 감탄을 다시 떠올리게 해 준 사람이 바로 그였다.




치킨의 맛은 그날따라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바삭한 튀김옷의 식감, 꾸덕하고 진한 마요네즈 소스, 그리고 그 위를 톡 쏘듯 감도는 할라피뇨의 매콤함과 새콤함. 이 조합은 단순한 치킨이 아닌 입 안에서 벌어지는 작은 축제 같았다. 거기에 시원한 맥주 한 모금을 더하니, 그날의 공기, 분위기, 감정까지도 한데 어우러져 더없이 완벽한 조화를 이뤘다.


리키는 한입 한입 먹을 때마다 “오 마이 갓!”을 연발했고, 수염에 소스를 잔뜩 묻혀가며 행복하게 치킨을 해치웠다. 보는 것만으로도 귀엽고, 기분 좋은 장면이었다. 치킨을 먹으며 리키는 대뜸 레시피를 아냐고 물었다. 좋은 재료를 준비해서 직접 요리해 먹는 스페인 문화가 익숙한 그였기에, 집에서도 이 맛을 재현해보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미안하게도 “한 번도 만들어본 적이 없어”라고 답했다. 리키는 잠깐 실망한 듯했지만, 이내,


“그럼 한국에 더 자주 오면 되겠네!” 라며,

다시 치킨을 한입 베어 물고는 금세 미소를 되찾았다.


치킨 한 마리를 순식간에 비워냈다. 리키는 마지막 남은 소스와 할라피뇨까지 싹싹 긁어먹으며 “한 점도 남기고 싶지 않아”라고 말했고, 우리는 그저 웃었다. 배가 든든해진 뒤, 소파에 나란히 앉아 조용히 쉬는 그 시간이 유독 편안하게 느껴졌다. 음식을 함께 먹고, 같은 맛을 느끼고, 같은 표정을 짓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거리가 성큼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나만의 힐링 루틴 속에, 이제는 리키가 함께였다. 익숙한 음식에 새로운 감정이 덧입혀지고, 바삭한 한 조각의 치킨이 우리 사이의 마음을 바삭하게 데워주었다. 그날 밤은 그렇게, 평범하지만 잊지 못할 하루로 남았다.


그날 밤, 우리는 한 마리의 치킨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마음을 천천히, 따뜻하게 배워갔다.


말없이 건네는 조각, 입가에 묻은 소스를 닦아주던 순간,
웃음이 새어 나오던 그 장면들 속에서
나는 문득, 이 사람이 나의 하루에 스며들고 있다는 걸 느꼈다.


치킨 한 조각이 다 닿기도 전에,
우리는 어느새 조금 더 가까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밤의 기분은, 시간이 흘러도
언제든 마음을 꺼내 데워볼 수 있는
작은 행복의 조각처럼 남아 있다.

keyword
이전 02화한강 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