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지 않은 메일이 3통 있습니다.’
익숙한 알림이었지만, 그날따라 이상하게 눈에 밟혔다. 습관처럼 메일함을 터치했다. 별다른 기대는 없었다. 읽지 않은 메일 세 통, 보나 마나 뻔하지. 스팸이나 광고 메일이 틀림없다. 아니나 다를까, 하나는 알리 익스프레스로부터 온 메일, 또 다른 하나는 코스로부터. 그런데 다른 하나는… 눈이 저절로 커졌다. 설렘이라는 단어가 모자랄 정도였다.
‘안녕하세요 나미 씨, 상하이에 온 것을 축하합니다. 코스 디렉터 콜린에게 스케줄을 물어보았는데 이번 주 일요일에 시간이 괜찮다고 하네요. 혹시 그날 센터에 방문 가능하신가요?’
심장이 두 번쯤 더 크게 뛰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메일이었다.
상하이에 있는 몇몇 센터들에 메일을 보낸 지는 제법 되었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메일함을 여는 일은 어느새 습관처럼 굳어졌고, 비어 있는 화면을 볼 때마다 ‘그러면 그렇지’라는 말이 자동으로 흘러나왔다. 그렇게 갑작스레 연락한 나를 누가 받아주겠느냐는, 어쩌면 체념에 가까운 믿음이었다.
중국이라는 새로운 땅, 낯선 도시.
기회란 그렇게 쉽게 오는 게 아니라는 걸 받아들이며, 나는 스스로의 기대를 조금씩 낮춰가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 굳었던 믿음이 아주 작게,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다.
스웨덴에 처음 갔을 때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병원에서 물리치료사로 근무한 1년, 필라테스 강사로 일한 8년의 경력은 있었지만, 영어로 수업을 진행해 본 적은 없었다. 모든 걸 맨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유튜브에서 영어 수업 영상을 찾아 표현을 외우고 또 외웠다. 수업의 도입부터 시퀀스 하나하나까지 현지 회원님들에게 맞춰 새로 구성했다. 들어오는 수업은 빠짐없이 맡았고, 크리스마스와 새해 연휴에도 센터에 나가 수업을 했다. 그렇게 천천히, 회원님들과 센터 원장님들에게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지금의 나는 그때와 닮아 있다. 말은 잘 통하지 않고, 자신감은 이유 없이 꺾인다. 모든 것이 낯설고 무겁게 느껴진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정말, 다시 이 일을 해낼 수 있을까?
그리고 곧 불안의 이면에서 또 다른 감정 하나가 피어올랐다. 낯선 환경에서 일을 시작하고 사람을 상대해야 한다는 두려움보다 더 강렬하게 마음속에 끓어오르는 감정 - '그럼에도 이 일을 계속해서 하고 싶다'는 열망이었다.
몸을 함께 움직이고, 회원님의 미소를 보고, 좋은 피드백을 들으며, 누군가의 삶이 조금씩 변화하는 그 순간을 함께 하는 일. 그 안에서 나는 내가 살아있음을 느꼈다. 그 감각을, 나는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었다.
그 마음이 불안을 눌렀다. 이 정도의 두려움에 주저앉을 순 없었다.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센터의 위치를 다시 검색했다. 상하이에서도 가장 번화한 곳, 신톈디였다. 수많은 실력자들, 높을 수밖에 없는 기준. 자신감은 다시 한번 꺾였다.
‘날고 기는 강사들이 많을 텐데…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수업 루틴도 기억이 안 나는 것 같은데…’
스멀스멀 불안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언제나처럼, 내 안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넌 못 해. 애초에 그런 건 너 같은 사람이 하는 게 아니야.
괜히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착각했지?
다 들켰어.
노력하는 척, 괜찮은 척하는 네 모습이 얼마나 불안한지 다 알아.’
조용하지만 집요하게, 그 목소리는 나를 무너뜨리려 했다.
순간 눈을 질끈 감고 핸드폰을 열었다.
리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나 : 리키! 나 이전에 컨택했던 센터에서 연락이 왔어!
리키 : 와 진짜!? 축하해! 정말 잘됐어. 뭐라고 왔어?
나 : (메일 사진)
나 : 그런데 잘 모르겠어. 자신이 없어 ㅠㅠ 영어로 했던 거 다 까먹은 것 같아.
리키 : 까리뇨. 걱정하지 마. 너는 언제나처럼 잘할 거야.
불안해하는 나에게 리키는 짧고 단단한 응원을 건넸다. 순간 그의 따뜻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언제나 나보다 나를 더 믿어주는 사람이었다. 내가 나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할 때조차 그는 조용히 말했다. “너는 언제나 그 자체로 충분해.” 그 말은 마치 햇살처럼, 내 안의 그림자를 하나씩 걷어내는 주문 같았다.
리키는 언제나 나보다 먼저, 나의 가능성을 믿는 사람이었다. 내가 흔들리고, 불안과 의심이 고개를 들 때마다 그의 말은 나를 다시 제자리로 데려다 놓았다. 꼭 어둠 속에 들어온 한 줄기 빛처럼, 그는 내 안에 숨어 있던 따뜻함을 꺼내 보여주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평가하고, 내가 스스로를 의심할 때에도 그는 언제나 내 편에 있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다시 한번 모든 걸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든다.
그래, 그냥 부딪혀보자.
이 불안은 결국 내가 만들어낸 그림자일 뿐이다.
내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는, 실체 없는 환상 같은 것.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낼 수 있는 힘은, 늘 내 안에 있었다.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센터에 답장을 보냈다.
"메일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러면 일요일에 센터에서 뵙겠습니다."
손끝이 약간 떨렸다. 하지만 그 떨림마저도 생생히 느껴지는 지금이, 좋았다.
새로운 도시, 새로운 도전.
나는 또 한 번, 나로 살아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