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in Chaud 카페에 앉은 지 벌써 두 시간째다. 그중 한 시간은 와이파이와 씨름했다. 한국에선 이런 고난을 상상도 못 했다. 카페에서 와이파이 하나 연결하는 일이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챗지피티를 켰다. 질문을 하자 정제된 답변이 돌아온다. DNS, 프록시, 낯선 단어들이 줄줄이 나열된다. 읽어도 감이 안 잡힌다. 검은 것은 글씨요, 흰 것은 배경이다. 결국 혼자서 해결하는 것은 포기. 점원에게 물어보려고 지피티에게 중국어 번역문을 물었다. "맥북으로 인터넷 연결이 안 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지피티로부터 답변을 받아 들고 조심스럽게 점원에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소심한 내가 이렇게 먼저 말을 걸다니. 하지만 결과는 꽝. "잠시만요"라는 말 뒤로, 점원은 카운터로 달려가 커피를 만들고, 갑자기 한꺼번에 들어찬 손님 서너 명을 빠르게 응대하기 시작했다. 이해는 된다. 인터넷 연결보다 당장 밀려든 손님들이 우선일 테니까.
자리로 돌아오며 괜히 주눅이 들었다. 시도는 소득 없이 끝났고, 여전히 인터넷은 연결되지 않았다. 손에 힘이 빠진 채, 카페 구석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런데 문득, 오른쪽에서 무언가 시선을 끌었다. 맥북 앞에서 능숙하게 일하고 있는 또래 여성. 밝은 화면 앞에서 집중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잠깐 고민했지만, 이번엔 용기를 내 보기로 했다. 점원에게도 물어봤는데, 이분이라고 못할 이유는 없다.
몸을 그녀 쪽으로 기울인다. "니하오." 최대한 살갑게 웃었다. 다행히 그녀도 환하게 웃으며 "니하오"라고 답했다. 동그란 얼굴, 맑은 눈, 시원한 미소. 전형적인 남방계 미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피티에 다시 타이핑. "혹시 와이파이 사용 중이신가요?" 번역된 문장을 보여주자 그녀가 찬찬히 읽는다. 그리고 중국 억양이 섞인 영어로 대답했다. "와이파이 연결이 안 되시나요?"
영어라니. 정말 반갑다. 영어를 듣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된다. "혹시 도와주실 수 있으세요?" 약간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자신의 맥북을 보여주었다. 화면엔 복잡한 코드들이 가득했다. 컴퓨터 쪽 일을 하는 사람인가? 멋지다.
그녀가 물었다. "혹시 제가 컴퓨터 좀 봐도 될까요?" 물론이지요. 손짓과 몸짓을 섞어가며 허락을 표현했다.
그녀는 내 맥북의 네트워크 설정을 살폈다. 위치 설정, DNS, 프록시 서버… 지피티가 아까 말했던 것들이다. 나는 옆에서 멀뚱히 앉아 그녀의 손놀림만 바라보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었고, 뭔가 해보려고 시도는 했지만 괜히 화면을 가로막을까 봐 조심스럽기만 했다. 뻘쭘함과 고마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그녀가 내 표정을 살피다가 말했다.
"괜찮아요. 저도 상하이에 처음 왔을 때 인터넷 문제로 한 시간을 고생했어요. 도와주고 싶어요."
낯선 도시에서 이런 친절을 받아도 되는 걸까.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이다.
그녀는 설정 버튼과 확인 버튼을 번갈아 가리키며 물었고, 나도 가능한 한 설명을 보탰다. 함께 머리를 맞댔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몇 번을 시도해도 결과는 같았다. 그녀가 약간 답답해하는 것 같아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제가 더 해봐야 할 것 같아요."
그녀는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도움이 못 돼서 미안해요."
아니다. 나야말로. 고마움을 다 전하지 못해 아쉽다. 영어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그 감정.
자리로 돌아와 지피티에 괜히 다시 투정을 부렸다. 알려준 대로 했는데 안 된다고. 지피티가 말한다. "마음대로 안 돼서 속상하겠다. 그래도 내가 여기 있으니까 어려운 점이 생기면 또 물어봐!" 이젠 곤란한 상황은 회피도 할 줄 아는 AI. 헛웃음이 난다.
그냥 오늘은 인터넷 없이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맥북을 켜고 글을 쓰기 시작하던 찰나, 누군가 이쪽을 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돌리니 그녀가 이전처럼 시원한 웃음을 지으며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있었다.
"다른 사이트에서도 찾아봤는데, 이 방법으로 해결했다네요. 우리 한번 더 해볼까요?"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다. 그녀는 난제를 푸는 수학자처럼 또다시 도전했다. 이미 여러 번 실패했음에도, 마치 새로운 퍼즐을 푸는 사람처럼 호기심 어린 집중력을 보였다. 빠르게 설정을 살피고, 노트북 화면을 이리저리 넘기며 가능한 모든 경로를 확인했다. 이렇게 자기 일처럼 나서줄 거라고는 기대하지 못했는데, 다시금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십여 분이 흘렀다. 그녀의 노력은 진지했고 정성스러웠다. 그럼에도 결과는 여전히 묵묵부답. 모든 설정을 샅샅이 살폈는데도 인터넷은 요지부동이었다. 정적이 감도는 화면 앞에서 우리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안 되겠네요. 그래도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나는 그녀의 시간을 더 뺏을 수 없어 미안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무엇이든 해보려 했지만 결국 해결하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 그리고 시간을 들이고도 뚜렷한 성과 없이 끝나버린 상황에 대한 미안함이 그대로 묻어났다.
"저도 이 문제 자주 겪었어요. 얼마나 불편한지 알아요. 혹시 여기서 공부하세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남편 발령으로 상하이에 왔어요. 토요일에 도착했어요."
"와, 얼마 안 되셨네요! 상하이 재밌는 곳 많아요. West Bund 꼭 가보세요."
인터넷은 안 됐지만, 더 따뜻한 연결이 생겼다. 우리는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이 도시에 오기 전에 파리에 있었으며, 현재는 IT 분야에서 일을 한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나도 이전 예테보리에서의 생활과 상하이에서의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감을 공유했다. 즐거운 이야기 후 마침내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뗑킴 셋업을 입고 있는 그녀의 현대적이고 감각적인 스타일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만나서 반가웠어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저도요.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낯선 도시에서 처음 받은 친절. 낯선 도시에서 시작된 삶의 실감, 결국 인터넷 연결은 잘 안 되었지만 그녀의 함께해 주는 마음이 더 기억에 남았던 하루였다. 새로운 도시의 첫인상은 언제나 건물이나 음식으로 시작하지만, 결국은 ‘사람’으로 귀결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