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김치찌개와 비키니 사이

서로의 입맛을 닮아가는 어느 신혼의 기록

by 나미

보글보글 김치찌개가 끓는 날이면, 한국인으로서의 감각이 유독 또렷해진다. 양파와 마늘, 김치와 고기를 넉넉히 넣고 달달 볶다가 국물이 꾸덕해질 때쯤 육수를 붓는다. 그 과정을 스스로 만족스러워하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은, 나보다도 리키가 더 행복해한다.


"맛있어요!" 낯설게 들리는 한국어로 감탄사를 연발하며 그는 흰 밥을 수북하게 푸고, 김치찌개를 소중하게 떠 담는다. 한 입, 또 한 입. 멈추지 않는 숟가락. 그릇이 비어갈수록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그 모습은 이상할 만큼 익숙하다. 어릴 적 아빠가 김치찌개를 먹던 모습과 닮아 있다.


나는 장난스레 말했다. "리키, 너 이제 우리 중 한 사람이야. (You are one of us now.)" 그러자 그는 더 크게 웃었다. 그 웃음 속에 묘한 따뜻함이 퍼졌다. 아, 가족이 되어간다는 건 이런 순간들이 쌓이는 일이구나 싶었다.


리키는 삼겹살도 정말 좋아한다. 처음 익힌 한국어가 "삼겹살 먹고 싶어요."일 정도로. 파채, 마늘, 쌈장까지 곁들여 쌈을 싸 먹을 때면, 그는 더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음식을 대한다. 스웨덴에서 살 때, 런던에 여행을 갔다가 한인타운을 찾아 삼겹살집에 들른 적이 있다. 거의 1년만에 삼겹살을 먹게 된 리키는 소중하게 고기를 구우며 한 입 가득 쌈을 싸 입에 넣었다. 오랜만에 삼겹살을 먹고 눈물이 날 것 같다고 했다. 정작 나는 그리움을 느낄 겨를도 없었는데, 내 나라의 음식을 나보다 더 그리워하는 그를 보며 괜히 웃음이 나왔다.




반대로 나는 원래 치즈를 좋아하지 않았다. 유제품을 잘 소화하지 못하고, 향도 낯설게만 느껴졌는데 어느 날, 리키가 만들어준 스페인식 샌드위치 '비키니'를 먹고 놀랐다. 간단한 재료 속에서도 치즈의 풍미가 깊게 퍼져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천천히 치즈에 익숙해졌고, 그의 세계에 조금씩 발을 들이기 시작했다.



5e9977ae36946.jpeg 비키니 샌드위치



또 하루는 스페인에서 시어머니와 함께 정육점에 들렀던 날이 있었다. 그분은 여러 엠부띠도(스페인식 소시지)를 설명해 주시며, 부티파라 블랑카라는 소시지를 건네주셨다. 바르셀로나 지역에서 많이 먹는 소시지라고 덧붙이며. 입에 넣는 순간, 감칠맛과 풍미가 입안 가득 퍼졌고, 어쩐지 마음까지 따뜻해졌다. 그날 이후, 나는 그분과 더 가까워졌고 스페인의 한 조각이 내 안에 스며든 것 같았다.




요즘은 리키가 몸이 지칠 때 "김치찌개 먹고 싶어요."라고 말하곤 한다. 나는 때때로 하몽이 생각나고, 그의 어머니가 만들어주시던 케이크가 그리워진다. 그럴 때마다, 우리 진짜 가족이 되었구나 싶다.


사실 입맛이 닮아간다는 건 단순한 취향의 변화만은 아니다. 그건 매일 밥을 짓고, 먹고, 웃고 그 속에서 서로를 존중하는 일이기도 하니까.


김치찌개와 비키니 사이. 그 중간 어딘가에서 우리는 매일 조금씩, 서로의 세계를 배워가고 있다.


함께 밥을 먹으며, 우리는 가족이 되어간다.



함께 밥을 먹는 일은 어느새 마음까지 닮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당신의 식탁 위에 사랑과 이해가 가득 깃들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나미 드림



이미지 출처 - https://www.lavanguardia.com/comer/tendencias/20170411/421605515959/historia-nombre-bikini-sandwich-jamon-y-queso.html


keyword
이전 06화생산성은 모르겠고, 만두는 맛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