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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결국 말하는 일

천천히, 서툴게, 그래도 계속

by 나미


우리 부부가 처음 마주한 갈등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참는 게 습관이었고, 갈등을 피하는 것이 예의라고 배워온 사람이었다. 누군가에게 불편을 주지 않는 것, 침묵으로 상황을 넘기는 것, 감정은 속으로 삼키는 것이 미덕이라 믿고 자라왔다. 반면 리키는 달랐다. 그는 불편한 점이 생기면 바로 이야기하고, 상대의 마음을 묻고 대화로 풀어가려는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그 과정에서도 따뜻함을 잃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 차이는 우리가 처음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스웨덴에서의 일이다. 어느 날 빨래를 개다 보니 리키의 양말이 늘 뒤집어져 있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엔 별말 없이 다시 뒤집어서 정리했다. 하지만 그게 한 번, 두 번, 열 번 쌓이자 은근한 짜증이 올라왔다.


"리키, 이렇게 양말 뒤집어서 벗는 게 더 불편하지 않아? 발가락 쪽을 잡고 쓱 당기면 그냥 벗겨지는데 왜 항상 뒤집어놔? 그럼 나는 빨래할 때 다시 뒤집어서 개야 해."


리키는 미안한 듯 멈칫하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헉, 여태까지 다시 뒤집어서 갰던 거야? 몰랐어. 이야기를 해주지. 근데 나는 발에 땀이 많아서 양말이 잘 안 벗겨져. 앞으로는 그냥 뒤집힌 채로 개도 돼. 내가 신을 때 다시 뒤집어서 신을게. 괜히 불편하게 했네, 미안해."



그 말투에는 변명보다는 진심 어린 미안함과 나를 배려하려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순간 머리가 띵했다. 나에겐 당연했던 일이, 그에겐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그 작은 에피소드를 통해 나는 문득 깨달았다. 우리가 얼마나 다른 배경과 방식으로 살아왔는지를.


이처럼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나는 내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것 자체가 익숙하지 않았다. 나조차 내 마음을 잘 몰랐다.




한 번은 자기 전 작은 다툼이 다음 날 아침 식사 때까지 이어진 적이 있다. 무거운 공기 속에서 침묵을 무기로 삼고 있던 나에게 리키가 조용히 말했다.


"나는 이런 분위기에서 밥 먹고 싶지 않아.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아까워. 우리 결국에는 화해할 거잖아. 그럴 거면 더 빨리 이야기하자. 지금 무엇 때문에 화가 난 건지 이야기해 줄 수 있어?"


그 질문에 나는 쉽게 답할 수 없었다. 그때 처음 깨달았다.

나는 나의 감정을 알지도 못했고, 표현해 본 적도 없었구나.




그 이후로 리키는 자주 내게 물었다. "지금 어떤 감정이야?"

그 물음 앞에 나는 자주 멈춰 서야 했다. 처음에는 내 감정을 알아차리는 데 1시간, 2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매일 연습했다. 감정일기를 쓰고, 머릿속으로 내 마음을 하나하나 짚어보며.


그 결과 30분, 10분, 5분으로 점점 줄어들었고, 지금은 순간적으로도 내 의견을 표현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리고 내가 내 마음을 솔직하게 말했을 때, 리키가 그것을 조용히 들어주고 인정해 줬을 때 내 안에서는 변화가 일어났다.


가슴 깊숙이 뭉쳐 있던 무언가가 스르르 녹아내리는 기분. 오랜 시간 긴장으로 굳어 있던 근육이 서서히 이완되는 것처럼, 심장 안에 따뜻한 물이 퍼지듯 번져가는 감각.


그 순간 깨달았다.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나 자신을 억누르고 살아왔는지를. 그리고 그런 나를 말없이 기다려준 사람이 곁에 있다는 사실에 얼마나 감사했는지를.




지금도 나와 리키 사이에는 갈등이 존재한다. 다만 이제는 안다. 내 마음과 감정을 말하는 일은 부끄럽거나 불편한 일이 아니라는 것. 오히려 나 자신을 가장 솔직하게 마주하고, 타인과 더 깊게 연결되는 시작이라는 걸.


말하기 어려웠던 내가 지금은 자연스럽게 감정을 나눌 수 있게 된 것처럼, 관계도 그렇게 서서히 변화해가고 있다. 스웨덴에서, 부엌 식탁 앞에서, 혹은 평범한 침대 맡에서 우리가 배운 가장 소중한 수업은 그런 것들이었다.


사랑은 서로의 마음을 묻고, 듣고, 말하는 일. 나는 이제, 그걸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타인과의 관계 이전에, 나와의 관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바쁜 하루 중에도 내 마음을 우선하고 다독여줄 수 있는 여유가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나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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