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생-영원한 재생
나는 웃었다. 아들이란 말은 지금은 개념조차 사라진 말이었지만 강과 오래 알아 온 터라 어렵잖게 의미를 파악할 수 있었다. 재생이 거듭되다 보니 자식, 부모, 가족의 개념이 희미해졌다. 개인은 개인으로서만 완전했다. 굳이 가족을 얽자면 누구의 부모의 몇 번째 재생체와 그 자식의 몇 번째 재생체인데, 대게 직접적인 관계를 가졌던 개체에서 두세 번씩 재생한 상태라서 연관성은 이미 사라졌고,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사는 터라 일부러 교류를 갖지 않는 한 얼굴 한 번 제대로 마주칠 일이 없었다. 게다가 아무리 이동수단이 발달해도 사람들은 서로를 방문하기엔 너무나 바빴다. 재생에 재생을 걸쳐 이렇게 지독히 긴 시간을 가지게 됐는데도 오히려 필요한 일들을 뒷전으로 미뤄두는 지루한 여유만 늘었을 뿐, 정말로 중요한 일들을 하기에 시간은 지나치게 길었다. 더운 여름날, 도저히 어찌할 수 없이 늘어진 엿가락처럼.
“또, 또, 엄한 소리 한다. 요즘 좀 여유가 생겼나 보지?”
강은 질색했다.
“다른 건 몰라도 생식에 관해선 강이 살던 세기의 도덕관념은 적용되지 않습니다.”
나는 등 뒤의 등걸나무에 느슨하게 몸을 기대며 최대한 뻔뻔한 표정을 지었다.
“<돔>에서는 건강한 오리지널만 얻을 수 있다면 어떤 짝과 교미하던 상관치 않죠. 어차피 퍼스트도 아니고 대부분 재생체의 재생체니까, 같은 사람인 동시에 다른 사람이잖습니까. 설사 강이 저를 만들었대도 상관없죠. 직접 자궁에서 키워낸 것도 아니니까요. 게다가 워낙에 낮은 수정 성공률에 또 건강하게 성장시키기도 힘드니까, 건강하게 성장했다는 건 다음 대도 그럴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고 그런 짝들이 만난다면 확률은 두 배로 높아진다는 소리니 적극 권장할 만하겠죠.”
두 배라는 건 과장이다. 유전적 돌연변이가 나올 ‘만약’을 배재할 수 없으니까.
아내가 있고 남편이 있는 혼인제도는-그게 일부일처제든 일부다처체든 일처다부제든 간에- 벌써 10세기 전에 사라져 버렸다. 20세기 이후로 현저하게 떨어지기 시작한 생식력이 불완전한 혼인제도 안에서 더욱 희박해졌기 때문이다.
결국 지구 연합정부인 <돔>은 ‘혼인제도’를 폐지하고 ‘짝짓기 정책’을 폈다. 남녀 한 쌍이 오직 다음 세대를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만나는 것이다. 정해진 기간 내에 서로에게서 다음 세대를 얻지 못하면 교미 짝이 바뀌었다. 같은 행위는 ‘번식의무(각각 오리지널을 최소한 넷 이상 만들 의무)’가 완료될 때까지 전 재생체에 걸쳐 계속됐다.
“그거 참 편리하네. 마치 어제의 죄를 지은 나와 오늘 회개한 나는 전혀 다르다는 과거 모 종교의 회유책 같잖아? 피 묻은 옷을 갈아입었으니 저지른 살인 자체도 없던 게 된다? 말도 안 되지. 아무리 새 옷을 갈아입어도 그 속의 때 투성이 자신은 별로 달라지지 않아. 난 그럴 수 없어.”
나는 이럴 때 새삼 강이 구시대 사람이란 걸 깨닫는다.
“강은 너무 많은 걸 기억하는군요. 설마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전부 기억하는 건 아니겠지요?”
“왜 아니야?”
강은 눈을 똥그랗게 떴다. 나는 ‘역시’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그래요, 설마 강이 기억을 지우거나 했을 리 없죠. 보통들은 해마다 기념처럼 기억 사출소에 가서 쓸데없는 기억을 처리하거나 재생 때마다 자동 기억 삭제를 옵션으로 선택하는데, 강만큼은 절대 그럴 리가 없는 사람이었죠. 제가 잠시 착각했나 봅니다.”
자동 기억 삭제는 한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눈을 뜨면 당신 앞에 새로운 세상이 펼쳐집니다. 당신은 순백의 어린애처럼 깨끗하고 세상은 흥미와 호기심으로 넘칠 것입니다”라는 게 광고 카피였다. 고착된 일상에 물려버린 사람들에게 그야말로 획기적인 상품이었고, 만약의 경우에는 기억저장소에서 이전 기억을 다시 다운 받으면 되니까 안정성도 있었다. 그러나 고착 상태는 개인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였으므로 대부분이 이 옵션을 반품했다. 아무리 자기가 변하려 해도 그간 자기를 보아왔던 주변의 눈들이 바뀌지 않는 이상 절대로 완전히 변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지금은 좀 더 세밀화된 부분 선택 기억 삭제로 보편화되었다. 언젠가는 ‘완전한 기억력, 치매도 실수도 없다. 생체컴퓨터(생체 에너지로 작동하는 진화형 개인보조 탑재 컴퓨터) 없이 당신의 일과를 좀 더 손쉽게!’라는 기억 강화 옵션이 유행하기도 했지만 신경증과 강박증 수치가 네 배로 늘어난 바람에 결국 <돔>에서 제재했다.
“나는 그냥 자연스러운 게 좋아.”
이미 조금도 자연스럽지 않은 세상인데 새삼 뭐가 더 자연스럽고 덜 자연스럽다는 걸까.
“이번 재생휴가 때 뭐 계획해 두신 거 있습니까?”
나는 화제를 바꿨다.
“글세, 별로.”
강의 목소리는 평이했지만 나는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다. 그녀는 뭔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나는 강이 재생 휴가를 꽤 오래 미뤄왔다는 걸 상기했다. 그녀는 어쩌면 다시는 재생하지 않을 생각인지도 모른다.
“강?”
강이 갑자기 꺼져가는 촛불처럼 위태해 보여서 난 몸을 내밀어 그녀를 잡았다. 갑자기 오리지널 때의 두근거림이, 아니 그때의 향수가 아주 잠깐 내 심장을 두드렸으나 금방 사그라졌다. 강은 웃으면서 몸을 뺐다.
“왜 그래 갑자기? 잠 덜 깬 사람처럼.”
나는 멋쩍게 손을 놓았다. 강은 물뿌리개를 치웠다. 플랜은 아쉬운 듯 눈을 감고 하늘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낮잠에라도 든 거 같은 모습이었다. 물론 단순한 의태 반응이지만.
“흠. 강, 저 플랜 말입니다. 돔의 연구실에 있던 거죠? 어쩌다 떠맡게 된 겁니까?”
나는 플랜의 난(亂)반사되는 눈이 감긴 것에 안도했다. 놈의 눈은 지나치게 매혹적이어서 영혼에 치명적인 상처를 남겼다. 아무리 단련되어 있더라도 보호경 없이 계속 보다 보면 홀리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히 녀석은 나를 잡아먹으려는 의도가 없었기 때문에 시선은 미미한 호기심에서 그쳤지만 아니라면 아무리 나라도 그냥 넘어가기 어려웠을 것이다.
돔의 연구실에 사는 플랜은 산채로 사로잡힌 최초의 플랜으로 유명하고 연구자들을 족족 잡아먹은 걸로도 유명했다. 한 달 이상 놈과 지내고도 잡아먹히지 않은 유일한 인간은 강뿐이었다. 그래서 강에게로 오게 된 것이다.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놈이 강에게 손대지 않는 건 가장 처음 조우한 것이 강이기 때문에 알에서 깬 오리처럼 따르는 것이고-말도 안 된다. 플랜의 번식법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으나 확실한 식물체이므로 그럴 리가 없다-, 또 다른 소문에는 놈이 강의 첫 교미 짝을 잡아먹었기 때문에 강과 막역한-대체 어떤?-관계에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강은 어떤 풍문에도 진지하게 응수하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도 어이없는 헛소리일 뿐이다. 놈들의 첫 출현 시기가 강이 퍼스트로 살았던 시기와 미묘하게 겹치기 때문에 그런 소문이 생긴 모양이었다.
“운석에서 나왔다던대…… 어디서 온 건지 알아냈습니까?”
이렇게 안심하고 가까이에서 살아 있는 플랜을 관찰할 기회는 많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놈의 하늘거리는 은빛 이파리나 끈적이는 가시가 촘촘히 박힌 촉수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마취 독을 듬뿍 품은 보라색 가시 촉수는 아주 얌전히 큰 이파리 밑에 말려 있었다. 플랜을 사냥하고 여러 가지 훈련을 받기는 했지만, 플랜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은 거의 없었다. 내가 공부를 하지 않은 게 아니라 제대로 알려진 게 없었다. 간신히 손에 넣은 자료도 대개 전설이나 풍문에 빗댄 쓸모없는 가십뿐이었다.
“그건 그냥 학계의 추론 발표일뿐이야.”
“그럼 강의 생각은 다르단 겁니까?”
“그거 알아? 식물도 지성과 감정을 가지고 있어. 소리도 지르지. 다만 우리가 인지할 수 없을 뿐이야. 플랜은 그것의 극명한 형태가 아닐까? 식물이 드디어 어리석은 인간들을 위해 직접 커뮤니케이션에 나서준 거지.”
강은 순간 현실 밖에 있었다.
“또 그 상상병 도졌군요? 그래서, 잡아먹는 게 대체 얼마나 커뮤니케이션이 된다는 겁니까? 어차피 위장에 들어갈 거라면 그쪽에 커뮤니케이터를 설치해 주는 편이 나을 텐데요?”
내 비꼼에 강은 콧방귀도 안 뀌고 말을 이었다.
“좋아. 상상이 많이 가미되었다는 건 인정하지. 하지만 플랜은 우리가 지금껏 발견하지 못한 지상의 생물일 가능성이 충분해. 유성우와 함께 갑작스레 출현한, 아니 그때 출현하리라고 예정되어 있던 생물. 우리 인류가 그랬듯이. 외 우주에서 왔다고 하기에는 녀석들은 우리를 지나치게 의태했어. 이건 카멜레온이 색깔을 바꾸는 것처럼 단순한 문제가 아니야. 놈들은 우리를 잡아먹기 위해 불현듯 둔갑한 게 아니라 이 모습이 되도록 오랜 시간에 걸쳐 진화해 왔다고.”
나는 순간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는데요.”
“간단히 말하면, 인간에게 드디어 절대적인 포식자가 출현했다는 말이지. 사실 그렇잖아. 게다가 한 끼로 사람 하나를 삼키는 대단한 탐식가지.”
갑자기 머리가 아파졌다. 순식간에 눈앞에 떠오른 먹이 피라미드 꼭대기에 조그만 씨앗이 떨어지더니 하늘거리며 꽃을 피웠다. 플랜이었다. 파급효과를 계산하지 않은 단순한 상상에 불과한데도 나는 그 씨앗이 너무나 불길하다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그건 먹이에 관한 문제가 아니었다.
“기껏 인간 하나 먹자고 지나치게 복잡한 진화를 감수했군요. 환경 호르몬이나 유전조작이나 그런 상황은 다 고려된 겁니까?”
내가 투덜대자 강은 웃었다.
“물론이지. 일시적 변화라면 지역적으로 한정적이고 불규칙적이어야 하는데 플랜은 돔 외곽의 전 구역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출현했어. 형태도 일정했고. 게다가 유혹만큼 간편하고 에너지 효율이 높은 사냥법은 별로 없지. 나름 현명한 판단이라고 생각하는데? 어쩌면 꼭 그것만이 목적은 아닐 수도 있고.”
“그럼 뭐가 또 있단 겁니까?”
강은 신중하게 고개 저었다.
“나도 몰라. 자네 말처럼 인간을 잡아먹기 위한 목적만으로는 지나치게 복잡한 진화였다고 생각 중일뿐이야. 그나저나 자네 짝짓기 때가 되지 않았나? 선은 봤어?”
강은 분위기를 환기시키려는 듯 손부채질을 했다.
“율가(家)의 여자라고 들었습니다. 그 유명한 가수 집안요. 아직 못 만나봤습니다.”
나는 가끔 이런 강의 질문이 불편할 때가 있다. 아직도 강은 내게 ‘그런’ 느낌인 것이다.
“율가의 처녀라면 연희(聯喜)겠군. 착하고 순한 처녀지. 그 집안 여자들이 대게 다 그래. 짝짓기 상대로도 더할 나위 없이 건강하고. 근데 아쉽게도 한 번도 제대로 성공 못했어. 아직 제짝을 못 만난 탓이겠지. 성공하길 빌어. 자네의 첫 오리지널이라면 과연 어떨지 무척 기대되는걸.”
나는 강이 어떻게 내 짝짓기 상대에 대해 그렇게 자세히 알고 있는지 의아했지만 미처 묻지 못했다. 그때 내 머리엔 열대의 환락 같은 기묘한 열기와 땀과 쏘는 듯이 매스꺼운 생식기 냄새가 뒤범벅되어 떠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짝짓기는 대단히 불쾌한 경험이었다. 그럼에도 그 행위를 멈출 수 없는, 순간의 본능적 욕구라는 것은 소름이 끼쳤다. 마치 내가 나 자신의 의지가 아닌 외부의, 인간이라는 종의 씨를 뿌리기 위한 단말기 역할을 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창(窓)? 왜 그래? 창백해?”
강이 일깨운 순간, 나는 짝짓기 때와 비슷한 냄새를 맡았다. 플랜의 향기였다. 속이 꿀럭 뒤집히는 것 같았다.
“아…… 음…… 강, 거기 계세요?”
그때 미적지근한 온실에 신선한 바람이 섞여 들었다. 강의 네 번째 번식체인 미완이 강을 찾고 있었다. 나는 아직 성장기를 채 끝내지 못한 낭랑하고 불안정한 목소리에 기묘한 이질감을 느끼며 외부의 건물들에서 밀려들어온 메마른 향을 깊게 심호흡했다. 아직 해는 밝았고 온실 밖에는 열락의 어지러운 기억 따윈 단박에 날려버릴 날카롭고 빡빡한 현실이 악어처럼 어슬렁대고 있었다.
“여기 있다, 미완(未完). 창이 왔어. 전에 인사했지?”
“에…… 아, 안녕하세요, 창. 유명세는 여전하시던데요.”
강이 혼자 있을 것이라 예상했는지 나를 대하는 그의 낯빛이 불편해 보였다. 아니 지금 잠깐 스친 눈엔 증오까지 떠올라 있었다. 내가 그에게 그렇게 밉보일 짓을 했던가? 어리둥절해하는데 강이 먼저 말했다.
“뜸 들이지 말고 용건이나 말해.”
“아, 저…… 그게…… 손님 앞인데요. 나중에…… 음…… 다시 하죠.”
“언제는 창이 손님이었나 뭐. 그냥 해.”
강은 미완이 입을 열기도 전에 그의 용건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도 알았다. 강이 부르지 않는 한 미완이 이렇게 급하게 강을 찾는 용건은 하나다.
“저…… 그럼, 음…… 돈이 좀 필요해서요.”
역시.
“월급은 열흘 전에 이미 가져간 걸로 아는데? 보너스도 어김없이 지급되었고. 내가 더 이상 네게 돈을 지불해야 할 의무는 없어.”
번식체라고는 하지만 엄연한 성인이고, 서로 재생을 거친 이상 유전적 공유점 외엔 다른 연관성을 강조하기란 어려웠다. 그러나 미완은 몇 번을 재생해도 강의 곁을 떠나지 않고 그 밑에서 자잘한 일을 도왔다. 그건 그가 강에게 애정이 많아서라기보다는 사회적 구조상 오리지널이 자리 잡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에 덧붙여, 그가 무능력하다는 이유도 있었다.
미완은 피터 팬이었다. 재생 시 원하는 나이에서 멈추는 옵션을 달면 다음 재생 전까지는 쭉 그 나이대의 외모를 유지할 수 있는데-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직 외모만이다. 연령대를 지날수록 체력 저하와 신체 손상이 극심했다-, 보통 20~40대를 선호하지만 미완은 언제나 너무 크지도, 너무 작지도 않은 열네 살이었다.
“다음 달 월급과 이번 연구실 관리비용을 미리 지급해 주지. 그쯤이면 돼?”
“에……그게…… 음…… 석 달치 정도, 어떻게 안 될까요?”
장난감 매대의 값비싼 로봇이 갖고 싶어 죽겠는 걸까?
“알았어.”
강은 이동식 테이블 컴퓨터로 계좌를 불러내 성문으로 지급했다. 그녀는 생체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았다. 과거에 손목시계도 귀찮아서 걸지 않았다던 사람이기에 그런 건 이상하지도 않았다.
“고마워요, 강.”
진행 내내 옆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던 미완은 손등에 달린 얇은 금속판 같은 생체컴퓨터에 입금액이 확인되자 희희낙락하며 잽싸게 온실을 떠났다. 모든 게 너무 잠깐 사이에 일어나서 내 쪽이 어리둥절할 정도였다.
“아무리 그래도 석 달 치는 심하지 않습니까? 어디다 쓴다는 말도 없는데.”
“외모만 그렇지 그도 성인이니까. 게다가 나름 성실해.”
“성실이 사고랑 동의어란 건 지금 처음 알았습니다.”
내가 알기만도 미완은 이번 생에서만 벌써 세 번이나 사고를 쳤다. 한 번은 유전자 돔에 끌려가는 걸 직전에 빼냈고-재생증명칩만 제대로 끼고 다녀도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 한 번은 항성계에서 발견된 신물질 다단계 유통에서 끌어냈으며-다단계는 과거나 지금이나 골치 아프기 마찬가지다. 인간의 발전도에 따라 다단계 시스템도 교묘하게 변형 발전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다단계는 다단계다.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접근하지 않는 편이 이득이란 걸 모르지 않건만 매번 걸리는 인간이 있고, 덕분에 인간은 어떻게 발전하건 간에 과오를 되풀이하는 어리석은 생물이라는 걸 영원히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또 한 번은 짝짓기 상대를 죽게 해서 3년간 구금된 적도 있었다. 어찌 된 사정인지 모르지만 그 상대는 재생조차 하지 않았다.
“미완이 좀 순진하잖아. 그리고 돈으로 수습할 수 있는 사고는 별거 아냐.”
그 정도면 순진함을 넘어서 모자란 수준이다. 문득 강이 미완을 두둔하는 게 마지막 번식체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오랫동안 곁에서 함께 지낸 때문인지 궁금해져 물어보려는 찰나, 내 생체컴퓨터의 스케줄러가 빨간 경고등을 깜박였다. 아무리 미뤄도 오늘까지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내키지 않는 얼굴로 강에게 인사했다.
“아쉽지만 가봐야겠습니다.”
“그래. 바쁜 사람 오래 붙잡은 거 같아 미안하네, 종종 놀러 와.”
그녀가 내 뺨에 키스해 주었다. 그것만으로 오늘 해야 할 일의 우울함이 좀 덜어지는 기분이 든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