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의 방에서

느낌을 만지다...

by 나무를만지는


오늘 아침, 문을 열자마자 세상이 부드러운 안개 속에 잠겨 있었다.
공기 중에 무언가 녹아드는 듯한 기척, 모든 경계가 흐려지고 소리마저 눅눅하게 젖는 순간.
나는 마당 끝까지 몇 걸음 내딛었다가 멈췄다.

안개는 풍경 위에 덮인 이불처럼, 세상의 모든 날카로움을 눌러주고 있었다.
나무의 윤곽은 연필로 흐리게 그린 선처럼 번졌고,
작은 바람에도 가만히 떨리는 풀잎의 움직임이 더 또렷하게 느껴졌다.

이따금 나는 이런 날을 기다린다.
눈에 보이는 것들이 모두 사라지고, 마음에 있는 것들만 천천히 떠오르는 아침.
안개는 숨기기보다 드러내는 것 같기도 하다. 겉의 무늬가 사라지면, 안의 결이 보이니까.

나는 오늘 아침, 잠깐 안개의 방에 머물렀다.
모든 것이 흐릿한 그 방에서, 나조차 조금은 덜 선명해져도 괜찮았다.
그 안개가 걷히는 순간, 나는 또렷한 나로 돌아올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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