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에서 배경으로

요즘 나는

by 나무를만지는


물건을 좋아했다.
정확히 말하면 갖는 행위를 사랑했다.

신발장은 늘 포화 상태였고, 거울 앞에 서선 오늘의 스니커즈가 어떤 태도를 말해줄지 궁금해하곤 했다.

당시엔 그게 멋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고른 물건이 곧 나였고,
브랜드의 로고는 나의 정체성을 증명해 주는 일종의 졸업장 같았다.
어깨가 펴지고, 걷는 걸음에 리듬이 생기고,
길가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이 만족스러우면
그 하루는 꽤 괜찮은 날이었다.

그랬던 내가 지금,
일곱 해 전 세일하던 맨투맨을 입고,
팔꿈치가 살짝 스쳐진 구멍을 손끝으로 만지며 웃고 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게 꽤 마음에 든다.

이젠 아내가 입은 셔츠 핏이 예쁘면 기분이 좋고,
아이들의 운동화가 새것이면 괜히 뿌듯하다.

그렇게, 나는 배경이 되었다.
앞으로 나서기보다,
좋은 조명을 끌어다 가족을 더 예쁘게 비추고 싶은 조명기사처럼.
그저, 진짜 좋아하는 것이 바뀐 것뿐.
그 중심이 '나'에서 '우리'로 옮겨왔을 뿐이다.

이제 나는,
구멍 난 맨투맨을 입고
누군가의 멋진 하루를 조용히 응원하는
배경으로 남기로 한다.

조금 낡았지만 편안하고,
"아빠 그거 왜 아직도 입어?"라고 물을 때
이야기 하나쯤 꺼낼 수 있는 그런 옷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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