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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에.올 |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불교적 관점에서 본 멀티버스

by 아닛짜

극도로 느리고 지루한 영화 <토리노의 말>을 보고 나서 에너지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인지 극한의 속도감을 느낄 수 있는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가 떠올랐다. 예전에 봤었지만 한 번 더 보기로 했다.


'물극즉반(物極則反)'이라더니, 분명 ADHD 같은 영화인데도 나는 주인공 에블린처럼 오히려 편안함에 이르렀다. 에블린은 멀티버스의 '모든 곳'에서 '모든 것'을 '동시에' 경험하며 의식의 물그릇이 거의 쏟아질 뻔하였으나, 다시 현실 우주에 안착할 수 있었다. 실제로 다니엘 콴 감독 본인도 성인 ADHD를 겪고 있다고 한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2022)(이하 '에에올')는 다니엘 콴과 다니엘 쉐이너트가 각본을 쓰고 연출한 두 번째 작품인데, 신인 감독으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초대박을 터뜨렸다. 이들은 함께 작품 활동을 해왔기 때문에 업계에서는 '다니엘스(The Daniels)'로 통한다.


나는 <에에올>에 만족해서 다니엘스의 첫 번째 영화도 궁금해졌다. 이들의 첫 장편 영화인 <스위스 아미 맨(Swiss Army Man)>을 보고 나서 다니엘스도 코엔 형제처럼 처음부터 '완성형'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위스 아미 맨>에는 이미 <에에올>의 주제의식과 코믹 스타일의 원형이 담겨 있다. <스위스 아미 맨>은 방귀라는 생리현상을 통해 개인적, 사회적 억압의 민도로 느리고 지루한 영화 <토리노의 말>을 보고 나서 에너지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인지 극한의 속도감을 느낄 수 있는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가 떠올랐다. 예전에 봤었지만 한 번 더 보기로 했다.


기발한 상상력으로 버무린 코미디 속에 감춰진 주제의식은 어느새 관객에게 스며든다. <에에올>은 식상한 홍보 문구인 '감동과 재미'를 진짜로 실현해 버린 영화다.


관객은 가벼운 기분으로 영화의 유희에 몰입하다가, 어느 순간 문득 멈춰서 스스로 깊은 통찰을 해낸 것처럼 느끼게 된다. "잠깐. 이게 웃고 넘길 문제가 아니군. 내가 느껴왔던 혼란과 압박 속에는 더 깊은 뿌리가 있었어."라고 하면서.


목차는 다음과 같다.

1. 1번 유형의 고단한 우주
1-1> 삶의 낙제점을 맞은 에블린
1-2> 1번 독재자의 희생양들
2. 수많은 조이와 수많은 에블린의 중첩
2-1> 멀티버스와 육도윤회
2-2> 숙명통, 수많은 에블린을 기억하다.
2-3>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3. '베이글 블랙홀'을 통과하여 돌아온 통합된 에블린
3-1> 에블린은 베이글 맛을 한번 보고 폭주하기 시작한다.
3-2> 무상유정천의 돌멩이 모녀




1. 1번 유형의 고단한 우주


1-1> 삶의 낙제점을 맞은 에블린


중국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에블린(양자경)은 꿈이 많은 사람이었으나, 현재는 코인 세탁소를 운영하며 삶에 지칠 대로 지쳐있다.


가뜩이나 고단한 이민 생활에 설상가상으로 이번에 국세청 탈세 조사에 걸렸다. 게다가 결혼에 반대하고 절연했던 아버지가 딸이 어떻게 사는지를 보러 와 계신다. 혼자 동동거리며 바쁜 에블린에게 낙천적인 남편과 반항적인 딸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에블린은 왜 힘든가? 그녀는 도움이 되지 않는 가족을 탓하고, 아시아인을 무시하는 국세청 직원을 탓하고,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아버지를 원망한다. 그러나 이 모든 현실은 에블린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에블린은 에니어그램 1번 유형이다. 그녀는 1번의 '완벽주의자 우주' 속에서 '원칙주의적 가치관'에 갇혀있다. '그것만이 내 세상'일 뿐, 다른 대안을 검토해 본 적이 없다.


에블린은 무례한 고객을 처리하라고 했더니 같이 춤추고 노는 남편 웨이먼드(키 호이 콴)에게 "나 없으면 밥이나 먹었겠냐."라고 말한다. 딸 조이(스테파니 수)에게 다정하게 말하고 싶지만 정작 나오는 말은 "건강하게 좀 먹어. 살쪘다."라는 소리다.


1번의 인간관계 패턴에는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을 어린아이로 보는 특징이 있다. 이들은 자신이 생각 없고 충동적인 어린아이들에게 둘러싸인 유일한 책임 있는 어른이라고 무의식적으로 느낀다. 그래서 1번의 이미지는 주로 교사, 판사, 모범생, 도덕가, 청교도 등으로 그려진다.


이 집의 실질적 가장은 에블린이다. 그녀에게 남편과 딸은 철없는 어린애이며, 자신이 보살피고 계도해야 할 대상이다. 그녀에게 가족은 사랑하지만 동시에 책임져야 할 짐이다.


1번은 과도한 책임감에 시달린다. 모든 것에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다 보니 어깨는 굳고 표정은 경직된다. 에블린의 표정은 내내 신경질적이고 찌부러져 있다. 종국에 모든 일을 겪고 나서 이마에 장난감 눈알을 붙일 때 그녀의 얼굴은 비로소 환하게 펴진다.


영화는 3부로 구성된다. 각 장은 모두 영수증이 한가득 놓여 있는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에블린으로 시작한다.

영수증.png 정리되지 않은 영수증, 어지러운 방은 에블린의 고단한 삶을 상징한다.


대다수의 1번은 정리왕이다. 깔끔한 청소는 기본이며, 미납된 세금도 용납하지 않고 바로 처리한다. 정리되지 않은 영수증과 지저분한 집은 1번이 심각하게 불건강한 상태라는 것을 암시한다.


1번은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감정형 4번의 에너지가 발현되어 우울과 방종에 빠지게 된다. 현재 에블린은 책임감 때문에 머리끝까지 차오른 우울과 분노를 억누르고 있을 뿐이다.


영수증 더미는 자신이 그동안 지출한 내역을 보여준다. 지출 내역은 바로 자신이 살아오면서 활동한 내용이다. 코인 세탁소 인수 영수증 뒤에는 수년간 세탁소에서 노동한 시간이 숨어있고, 노래방 기기 영수증은 노래를 즐겨 부른 취미 생활을 알려준다.


수십 년간 국세청에서 잔뼈가 굵은 디어드리(제이미 리 커티스)는 말한다.


"다른 사람에게는 의미 없는 숫자이지만, 나는 영수증 더미만 봐도 인생의 굴곡이 보여요."


영수증은 항상 정리하고 정산할 필요가 있다. 비용에는 상응하는 소득이 뒤따라야 하며, 적어도 적자는 면해야 한다. 문제는 에블린이 자신의 인생 전체를 영수증 처리와 동일하게 바라본다는 것이다.


비용처리가 제대로 되었는가? 디어드리는 빨래방을 하면서 상관없는 노래방 기계를 비용처리한 것을 문제 삼는다. 에블린은 자신의 삶에서 어떤 것을 비용으로 처리했는가?


삶에서 어떤 것이 비용이고, 어떤 것이 소득인가? 우리는 삶의 회계사가 되기 위해 사는 것인가?


1번들은 수많은 좋은 것들 중에서 흠집 나고 불완전한 것을 골라내는 매의 눈을 가지고 있다. 이들에게 체크리스트를 만들고 채점하는 것은 오락이다. 자신의 삶도 채점 대상이다.


그런데 지금 에블린은 영수증 더미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고 있으니 최악이다. 아버지는 한마디 한다. 여태껏 가만히 있다가 딸이 가장 안 좋은 시기에 가장 상처받을 말을 골라서.


"넌 늘 도망만 쳐. 벌여놓고 끝을 못 내."


아버지의 평가는 진실일까? 에블린이 굳게 믿고 있는 우주에서는 그렇다. 에블린 우주의 많은 부분은 아버지로부터 상속받은 것이다.


이 우주에서 에블린은 낙제점을 받았다. 에블린은 정말 열심히 했는데 응당한 결과를 받지 못했으므로 어딘가에 항의하고 싶다. 그러려면 평가자가 누구인지부터 알아야 한다. 아버지인가? 국세청 직원인가? 아니면 우주 전체인가?



1-2> 1번 독재자의 희생양들


불건강한 1번 가장이나 보스 아래 있는 가족이나 사원들은 그 부작용을 고스란히 겪게 된다. 에블린의 남편과 딸은 자신이 늘 평가받고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느낀다.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잖아.~'


남편 웨이먼드는 이혼 서류를 작성해서 지니고 있다. 실제로 이혼을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에블린에게 경각심을 주려는 의도이다. 웨이먼드는 길에서 늙은 노부부의 다정한 모습을 보면 너무 부럽다. 에블린과 여행도 가고 장난도 치며 같이 늙어가고 싶다. 그러나 그의 바람은 여유가 전혀 없는 에블린에게 가닿지 못한다.


딸 조이는 엄마와 거의 단절된 상태다. 원래 엄마와 딸 사이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처럼 복잡 미묘하다. 엄마는 딸에게 자신의 꿈과 희망을 주입하며 동시에 자신의 결점을 투사한다. 에블린은 딸이 자신처럼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자신의 바람이 크면 클수록 딸의 결점은 크게 느껴진다.


1번 엄마가 노력하면 할수록 가족들은 작아지고 무능해진다. 웨이먼드의 여유 있고 다정한 성품은 소심하고 뭐 하나 제대로 못 하는 무능으로 변하고, 조이의 특별한 개성은 이유 없는 반항으로 치부된다.




2. 수많은 조이와 수많은 에블린의 중첩


2-1> 멀티버스와 육도윤회


에블린은 알파우주에서 온 낯선 웨이먼드를 만나고, 멀티버스(다중우주)의 세계와 접촉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알파우주의 웨이먼드는 그야말로 카리스마 알파남이다. 현재 우주의 웨이먼드와는 눈빛부터 다르다. 목표의식이 있고, 결단력과 실행력을 겸비했으며, 전투능력도 뛰어나다. 다른 우주의 에블린들도 현재의 에블린과 딴판이다. 최소 아홉 가지 에니어그램 유형의 에블린들이 다른 우주에서 자신의 꿈과 희망을 실현하고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이들과 접속한 현재의 에블린은 경악한다.


멀티버스 속 같은 사람의 모습이 천지 차이로 다른 것은 삶의 사소한 결정들이 엄청난 차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결정의 갈림길마다 우주가 분열된다. 각 우주는 한 점으로 표시되어 여러 우주와 연결돼 있다. 무한한 거품 속을 떠다니는 기포 하나가 하나의 우주다. 기포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거리가 먼 우주일수록 차이점이 커진다.


멀티버스 세계관은 불교의 윤회적 세계관과 닮았다. 불교는 모든 존재가 윤회하는 세상을 삼계육도(三界六道)라고 상정한다. 이 삼계육도의 스케일은 어떤 SF 세계관보다도 크고 압도적이다.


삼계(三界)는 욕계, 색계, 무색계의 세 가지 세상이다. 삼계는 다시 세분된다. 인간이 속한 욕계(欲界)는 지옥, 축생, 아귀, 아수라, 인간, 천상의 여섯 개의 세상으로 구분된다.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는 모두 신들의 세상이다. 욕계 천상은 6천, 색계는 16천(대승불교에서는 18천), 무색계는 4천이 있다. 욕계 천상 이상을 묶어서 천상계라고 하면 총 여섯 개의 세상으로 정리할 수 있다.


중생은 이 육도(六道)를 끊임없이 오고 가며 윤회한다. 인간은 불교 31(혹은 33) 멀티버스에서 레벨 5 우주에 속하는 셈이다.

육도윤회.jpg <육도윤회도>에서 죽음의 신 야마가 손발로 윤회의 수레바퀴를 잡고 있다.


시간적 개념의 육도윤회를 동시적으로 펼치면 멀티버스와 유사한 개념이 된다. 수많은 전생이 멀티버스에 동시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멀티버스는 선택을 기점으로 갈라지고, 육도윤회는 업(業)을 기점으로 갈라진다. 멀티버스의 에블린들은 수많은 선택을 한 결과이고, 수많은 선업과 불선업이 실현된 과보이다.


<에에올>에는 이러한 멀티버스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상상초월의 아이디어와 코믹의 향연이 한바탕 펼쳐진다. 그러나 원심적으로 한없이 펼쳐지던 멀티버스는 강한 구심력을 가지고 어느새 지금 이 순간으로 모인다.



2-2> 숙명통, 수많은 에블린을 기억하다.


알파 레이먼드가 온 알파버스는 다른 우주와 교신한 최초의 우주다. 알파버스의 에블린은 뛰어난 과학자였는데, 다른 곳의 또 다른 자신과 일시적으로 연결해서 기억, 기술, 감정까지 교류하는 법을 개발했다. 그 방법을 버스 점프라고 부른다.


버스 점프는 통계적으로 개연성이 없는 사건들을 통해 이루어진다. 생뚱맞은 행동을 취하면 목표 우주로 발사된다. 영화에는 양쪽 신발 바꿔 신기, 책상 밑에 붙은 껌을 떼서 씹기, 막춤 추기 등과 같은 사소하게 어이없는 행동에서부터 적에게 진심으로 사랑 고백하기, 항문 플러그까지 온갖 심각하게 어이없는 버스 점프 기술들이 난무한다.


노력, 연마를 통한 기술 습득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노력에 의한 성취는 통계적으로 매우 개연성이 높은 일이기 때문이다.


버스점프하는 것은 일종의 선(禪) 수행의 코믹버전 같다. 감독이 선불교 수행의 화두(話頭) 원리를 응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화두는 '똥 묻은 막대기', '뜰 앞의 잣나무', '이 뭣고?' 등과 같은 원 질문에 전혀 맞지 않는 답변일 수도 있고, 머리를 후려치거나 코를 비틀거나 손가락을 베어버리는 등의 충격적 행위가 되기도 한다. 상식에 어긋나는 자극이 기존의 가치관을 깨고 견성(見性)을 위한 촉매제가 되기 때문이다.


불교의 선정 수행이 깊어지면 여러 가지 초능력과 신통(神通)이 생긴다. 그중 숙명통(宿命通)은 전생을 기억하는 능력이다. 수행의 깊이에 따라 단지 한 생만 기억할 수도 있고, 열 생, 마흔 생, ... 수십만 생을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 <에에올>에서 버스점프를 통해 멀티버스의 모든 자신을 경험하는 것은 숙명통의 체험과 비슷해 보인다.


에블린은 멀티버스에서 자신이 깊이 묻어 두었던 모든 것 - 지난 과거의 선택들, 선택하지 않은 것들, 가족, 직업, 돈, 친구, 행복, 불행 - 과 마주한다. 에블린은 다른 차원에서 성공한 월드스타 에블린을 보며 그곳에 안주하고 싶어 한다.



2-3>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에블린의 딸 조이는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는 딸이면서 동시에 우주를 소멸시키려 하는 악당 조부 투바키이기도 하다.

딸 조이.jpeg
조부투파키_베이글.jpg
사랑을 갈구하는 조이와 파괴 본능을 가진 조부 투바키는 같은 사람이다.


조부 투바키의 탄생은 알파버스에서 시작되었다. 알파버스의 에블린은 학생들에게 버스점프를 가르쳤다. 그중 뛰어난 자질을 보였던 조이는 한계에 부딪히도록 연습을 강요받다가, 영혼의 그릇이 깨져 모든 멀티버스를 떠돌게 되었다. 그리고 조이는 '모든 우주(everywhere)'에서 '모든 가능성(everything)'을 '동시에(all at once)' 경험하고 전능한 신적 존재인 조부 투바키가 되었다.


모든 우주의 모든 것을 경험한 부작용으로 조부 투바키는 모든 것이 부질없게 느껴지고 인간의 모든 것을 하찮게 여기게 되었다. 세상 모든 것은 진동하며 중첩하고 있는 미립자의 무작위 배열에 불과하다는 것을 경험한 것이다.


조부 투바키는 다중우주의 무한한 힘과 지식을 자유자재로 쓰면서 악행을 하고 다닌다. 에블린에게 앙심을 품고 있는 조부는 알파버스의 에블린은 물론이고 수많은 우주의 에블린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매번 죽였다.


그러나 조부 투바키의 이런 행적은 오히려 엄마의 인정을 갈구하는 딸일 뿐임을 증명한다. 모든 것이 부질없음을 느꼈다면 수고스럽게 온갖 악을 행하고, 온 우주로 에블린을 찾아다닐 필요는 없다. '무의미해서 악을 행한다.'는 것은 별로 논리적이지 않다. 선과 악은 지극히 '의미'와 관련된 것이다.


에블린은 조이를 제대로 봐주지 않은 것처럼 조부 투바키도 제대로 보지 않는다. 단지 조이가 조부 투바키에 씌었다고 생각한다.


"너 때문이구나. 너 때문에 내 딸이 전화도 안 하고 대학 자퇴하고 문신했던 거였어. 너 때문에 자기가 게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모든 엄마는 나쁜 친구들 때문이지 우리 아이는 착하다고 믿는다. '내 딸 안에 있는 괴물'은 전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레퍼토리다.


조부 투바키는 이 우주의 에블린을 죽이러 온 것이 아니다. 조부는 에블린이 자신이 경험한 것을 알아봐 주기를 바랐다. 에블린에게 자기가 얻는 깨달음과 좌절을 나눠주고, 자신을 구원해 주기를 바랐다. 에블린은 조부 투바키로부터 진짜 딸을 구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조부와 똑같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의 목적은 달랐으나 결과적으로 행동 방향은 일치했다. 에블린의 이 견고한 우주는 파괴되어야 한다는 것. 조부 투바키는 에블린의 우주를 망치러 온 구원자이다.




3. '베이글 블랙홀'을 통과하여 돌아온 통합된 에블린


3-1> 에블린은 베이글 맛을 한번 보고 폭주하기 시작한다.


에블린은 아버지의 영향으로 현재의 에블린이 되었고, 조이는 엄마의 영향으로 현재의 조이가 되었다. 현재의 에블린에게는 아버지의 유산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고, 현재의 조이에게도 엄마의 유산이 스며들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는 많은 복잡한 문제를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으로 환원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 문제의 원인을 찾은 것 같아서 속이 시원하겠지만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수많은 업으로 이루어진 윤회(멀티버스)는 자기 자신의 책임이다. 불교 경전에는 "중생들은 업이 바로 그들의 주인이고, 업의 상속자이고, 업에서 태어났고, 업이 그들의 의지처이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업의 상속자다.


현재 우주에서는 엄마가 딸을 핍박하지만, 수많은 윤회 속에서 에블린은 딸이었고 조이는 엄마였을 것이다. 현재 앙숙인 디어드리와 에블린이 핫도그 손가락 우주에서는 연인이었듯이. 핫도그 우주에서 에블린의 사랑을 갈구했던 디어드리는 현재 우주에서 에블린을 달달 볶는다.


수많은 업의 중첩이 있을 뿐, 단 하나의 알기 쉬운 원인은 없다. 조이와 에블린은 다르지 않다. 모두 자신의 업의 상속자라는 면에서.


조부 투바키는 모든 것을 겪고 나서 모든 것이 부질없음을 느끼고 베이글 블랙홀을 만들었다.


"어느 날 심심해서 어느 베이글 위에 모든 것을 올렸지. 모든 걸. 내 모든 꿈과 희망, 옛날 성적표. 모든 품종의 개. 인터넷의 구애 광고. 참깨, 양귀비.. 그랬더니 알아서 붕괴하더라고. 세상 모든 걸 베이글 위에 올리면 진실이 드러나. 전부 다 부질없다는 것(nothing matters). 기분 좋지 않아. 모든 게 부질없으면 아무것도 이뤄낸 것이 없는 괴로움과 죄책감이 사라지잖아."


베이글 맛의 위력은 어마어마하다. 모든 식욕과 욕망을 남김없이 제거하고 그 자리에 거대한 공(空)만 남긴다.


에블린은 조부가 만든 베이글을 체험하고 조부가 느낀 허무함과 부질없음을 똑같이 느낀다. 에블린은 자신이 그동안 그렇게 노심초사하며 동동거렸던 시간이 다 쓸데없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며 분노가 치민다. 쓸고 닦고 애지중지했던 빨래방, 몇 주년 기념 파티에 모인 빨래방 진상 손님들, 국세청의 세금 쪼가리 등에 놀아난 자신이 참을 수 없어서 다 때려 부수기 시작한다. 에블린의 폭주에 가족은 물론 압류하러 온 디어드리마저도 놀란다.


이제 에블린과 조부 투바키는 동등해졌다. 엄마도 아니고 딸도 아니고, 희망도 절망도 아니다. 그냥 '있는 것', 공(空)이 되었다.



3-2> 무상유정천의 돌멩이 모녀


에블린의 폭주는 버스점프의 기폭제가 된다. 왜냐하면 에니어그램 1번이 마치 8번처럼 자신의 분노를 정직하게 표출하는 것은 통계적으로 개연성이 희박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분노라는 것은 감정적인 불이다. 불은 이성적이지 않다. 그러나 완벽주의자 1번은 항상 자신의 분노를 이성적, 논리적으로 포장한다. 내면에 쌓인 분노는 1번을 스팀이 가득한 압력밥솥 같은 상태로 만든다.


에블린은 난생처음으로 자신의 분노를 변명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터뜨렸다. 잘했어, 에블린! You go girl!


그리고 에블린이 '폭주 버스점프'를 통해 도달한 우주는 지극히 고요한 곳이었는데, 불교식으로 말하면 '무상유정천'이다.

돌맹이.jpg 모든 우주를 동시에 경험하고 나서 생명체가 살 수 없는 우주에 도달한 돌멩이 에블린과 돌멩이 조이


무상유정천(無想有情天)은 불교 유니버스에서 색계 천상 중 하나다. '무상유정'이란 인식이 없는 중생이다. 돌이나 식물처럼 마음이 아예 일어나지 않는다.


이들은 전생에 감각기관에 대상이 닿는 것을 극도로 혐오하여 이곳에 태어난 존재들이다. 이들은 돌멩이 같은 상태로 500 대겁이라는 긴 수명을 살지만, 수명이 끝나는 순간 의식이 생긴다. 우리의 상식과 달리 삶과 죽음이 거꾸로 뒤바뀐 존재들이다.


돌멩이 에블린과 돌멩이 조이가 화면에 딱 등장한 순간은 <에에올>의 화룡점정이다. 이 한 장면을 위해 그동안 이렇게 쉼 없이 달렸구나. 여기서 영화가 끝나도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희망과 좌절, 욕망과 허무, 억압과 분노를 모두 선택해 봤던 에블린에게 남은 선택은 통합뿐이기 때문이다. 이제 통합된 에블린이 무림의 고수가 되어 음양의 대립을 감싸 안고, 모두를 치유해 주리라는 것이 예상된다. 뒷부분은 없어도 좋을 사족이지만 그래도 끝까지 재미있게 보기는 했다.

제3의 눈.jpg 장난감 눈알을 아즈나 차끄라에 붙인 에블린은 진정한 태극권의 고수로 거듭난다. 온화한 얼굴에서는 1번의 경직된 표정이 사라졌다.





에블린의 호쾌한 잔불 정리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에블린의 깨달음은 '어떤 선택에도 완벽한 만족은 없으니 현재 자신이 선택한 것에 만족해야 한다'는 교훈을 넘어선다. 선택 자체가 없다. 모든 것이 똑같기 때문에 어떤 것을 선택해도 똑같은 것이다. 그러나 조부 투바키처럼 값싼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는다. 허무주의도 하나의 선택이다. 아니, 최악의 선택이다.


태극권은 조화의 무술이다. 상대방을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힘을 흡수하여 되돌려준다. 에니어그램의 진정한 통합은 태극권을 닮았다. 에니어그램의 궁극적 목표는 자신의 번호에 고착되는 것이 아니라, 1번부터 9번까지 내 안의 모든 에너지를 조화롭게 사용하는 것이다.


에블린은 늘 무시했던 레이먼드의 9번 에너지를 받아들인다.


무능하고 다정한 남편 레이먼드는 말한다.


"우리 그만 싸우면 안 될까요? 다들 무섭고 혼란스러워서 싸우려는 거 알아요. 나도 혼란스러워요. ... 나는 잘 모르겠어요. 내가 아는 거라곤 친절해야 한다는 거예요."


유능하고 외로운 CEO 레이먼드는 말한다.


"내가 세상을 밝게만 보는 것은 순진해서 그런 건 아냐. 전략적으로도 필요하기 때문이지. 이게 내가 싸우는 방식이야."


장난감 눈알(Googly Eye)은 레이먼드가 가진 에너지의 상징이다. 조화의 에너지는 언제나 연약하고 위태롭다. 잘 사용하면 태극의 조화를 이룰 수도 있고, 삐끗하면 파괴적 베이글이 될 수도 있다.


초기의 에블린은 레이먼드가 사방에 붙여 놓는 장난감 눈알에 진저리를 쳤다. 그러나 각성한 에블린은 기꺼이 장난감 눈알을 자신의 제3의 눈(아즈나 차끄라)에 붙인다. 이제 에블린은 태극권의 고수가 되어 평화주의자 9번처럼 싸우는 방법을 터득한다.


에블린은 지금 조부 투바키화된 위협적인 에블린을 제압하기 위해 총출동한 알파버스의 전사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이 전사들도 각자의 문제를 숨기고 있는 가련한 중생들이다.


에블린은 마치 <매트릭스>의 네오처럼 자신의 몸에 박힌 무수한 총알을 장난감 눈알로 바꿔서 상대에게 튕겨 보낸다. 마치 예수가 기적을 행하듯 에블린의 손길이 닿으면 사람들의 실현되지 못한 소망이 실현되고 고질적 질병이 치유된다.


서로 사랑하지만 감추고 있던 전사 커플을 맺어주고, 신경계에 충돌 증후군으로 고생하는 전사에게 어느새 카이로프랙틱 치료를 해주어서 목을 가볍게 해 준다. 마조히스트 아저씨는 엉덩이를 때려서 천국에 보내준다. 자신이 사랑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디어드리에게는 그렇지 않음을 알려준다.


에블린은 모두의 엄마가 되어서 그들을 치유하고 살게 한다. 그녀는 조이에게 말한다.


"날 에블린이라고 그만 불러. 나는. 너의. 엄마야.(I. am. your. mother.)"


<에에올>에는 정말 많은 패러디가 녹아 있지만, 이 다스베이더 패러디는 최고 중의 최고다. 아버지의 강력한 힘이 아니라, 어머니의 부드러운 힘이 우주를 구원한다. 성룡이 아닌 양자경을 캐스팅한 것이 결과적으로 신의 한 수였다.


"상식이 통하는 이 한 줌의 시간을 소중히 할 거야.
우린 원하는 건 뭐든지 할 수 있어.
다 부질없는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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