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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덤 정치 : 정치가 아닌, 인기 척도에 따른 정치

by 최재혁

“정당이 아니라 ‘팬클럽 회장’을 뽑는 나라”

한국 정치의 또 다른 문제를 꼽으라면, 단연 ‘팬덤 정치’다. 자생력 넘치는 정당 정치는 실종되고, 정치인의 팬클럽이 국정을 좌우하는 시대. 정책은 사라지고 정치는 혐오와 증오, 맹목적 추종의 감정 싸움으로 변질됐다. 정치가 본래 가져야 할 토론과 설득, 견제의 기능은 약화됐고, 그 자리를 팬덤의 목소리가 채워버렸다. 정당과 정치인은 지지층만 바라보며 편 가르기에 골몰하고, 국민 전체의 삶을 논하는 정치 대신, '우리 편'의 환호만 받으면 그만인 정치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 정치에서 팬덤 정치는 이제 하나의 체제가 되어버렸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양대 정당은 각각 고정 지지층을 바탕으로 움직이며, 그들의 열광과 분노를 먹고 자란다. 정책보다는 구호, 논리보다는 감정, 성찰보다는 적개심이 앞선다.


더 큰 문제는 팬덤의 대상이 정당 자체보다 ‘특정 정치인’이라는 점이다. 특정 정치인의 언행 하나에 따라 정당의 기조가 좌우되고, 그 정치인의 뜻을 거스르면 당내에서조차 ‘배신자’로 몰린다. 정당은 정치를 위한 조직이 아니라, 정치인의 사적 권력을 유지·확대하기 위한 도구가 되어가고 있다. 팬덤이 정치인을 그릇되게 움직이게 만들고, 정치인은 팬덤의 비위를 맞춘다. 소위 ‘왝 더 독(wag the dog)’ 현상이 정치 전반에서 반복되고 있다.


팬덤 정치로 강력한 힘을 얻은 정치인의 등장은, 당연히 정치적 다양성과 토론의 실종으로 이어졌다. 정치인의 실책이나 도덕적 문제조차 팬덤 속에서는 ‘공격받는 우리 편’이라는 프레임으로 재해석된다. 비판은 곧 배신이며, 이탈은 배척의 대상이 된다. 정책을 잘해서가 아니라 ‘우리 편이니까’ 지지하고, 같은 당이라도 미운 사람이 잘해면 ‘우리 편이 아니니까’라며 반대하는 기이한 구조가 고착화됐다.


팬덤 정치의 뿌리는 지역주의와 거대 양당제에 있다. 국민의힘은 경상북도, 더불어민주당은 전라도를 기반으로 정치적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고착화된 지역 기반은 양당이 전국 정당으로 나아가는 데 걸림돌이 됐다. 정당은 지역구만 확실히 챙기면 된다는 계산을 하고, ‘확장성’이나 ‘정책 경쟁’보다는 ‘우리 편 결집’에 집중한다. 여기에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 캐스팅보트를 잡기 위해 대중의 감정을 자극하는 구호와 공격에 몰두하게 된다.


팬덤 정치의 지역주의를 향한 구애는 정당을 ‘포괄 정당’이 아니라 ‘배타적 정치 클럽’으로 만든다. 이념보다는 정체성 정치가 중심이 되고, 지지층의 환호를 위한 정쟁이 반복된다. 무작정 여당은 야당을 비난하고, 야당은 여당을 공격하기만 하는 식이다. 정치적 성과보다는 정치적 퍼포먼스가 강조되고, 언론에 자주 나오는 인물일수록 지지층의 결집을 유도하는 데 성공한다. 팬덤 정치와 혐오 정치가 결합하는 과정에서 정치의 본질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또한 정치의 개인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정당 중심의 민주주의가 아닌 ‘정치 스타 시스템’이 자리 잡았다. 특정 정치인은 마치 연예인처럼 열광적인 팬덤을 만들고, 팬덤은 해당 정치인의 발언 하나하나에 과민하게 반응한다. SNS와 유튜브 등 미디어 생태계는 혐오 정치의 흐름을 가속화시킨다. 정보보다 선동이 빠르고, 설명보다 자극이 통한다. 정치는 그렇게 점점 더 감정의 전쟁터가 되어간다.

팬덤 정치의 가장 큰 문제는 ‘자생력의 결핍’이다. 정당은 내부에서 건강한 비판과 대안을 만들어야 하지만, 팬덤 정치 속에서 비판은 곧 분열로 여겨진다. 당 내부의 다양한 목소리는 억압되고, 하나의 목소리만 남는다. 결국 정책은 다수 팬덤의 기호에 따라 변형되거나 사라지고, 의사 결정의 무게는 팬덤의 ‘기분’에 달리게 된다.


또한, 팬덤 정치 속에서 국정 운영의 안정성은 크게 흔들린다. 상대 진영을 설득해야 할 협치의 순간에도, 팬덤은 ‘타협은 배신’이라며 등을 돌린다. 이념이나 논리보다 팬심이 앞서기 때문에, 다당제에 기반한 합의 정치나 유연한 연정 구조도 뿌리내리기 어렵다. 선거 이후에도 ‘이겼으니 무조건 밀어붙이자’ 식의 독주가 반복되고, 사회는 극심한 피로감과 분열을 겪게 된다.


팬덤 정치의 활약으로 인해 소수 의견이 설 자리는 사라지고, 집단 이기주의가 팽배해진다. 팬덤 내부의 결속력은 강하나, 그 결속은 외부를 향한 배타성을 전제로 한다. 사회 전체의 복잡한 문제를 다양한 관점에서 고민하고 해결하기보다는, 우리 편의 이익과 감정에만 집중하는 정치가 이어진다. 정치적 포퓰리즘이 번성하고, 극단주의가 뿌리내리며, 국민 통합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팬덤 정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국민의 투표 방향이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한다. 정당과 정치인을 감정의 대상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평가와 견제의 대상으로 바라봐야 한다. 정당은 ‘정책’으로, 정치인은 ‘성과’로 지지받아야 한다. 오늘 잘못된 말을 했으면 오늘 비판받고, 내일 좋은 정책을 냈다면 내일 지지받는 정치문화가 자리 잡아야 한다.


또한 정치인은 팬덤이 아니라 대다수의 시민을 두려워해야 한다. 국민의 눈치를 보며 움직 정치, 팬덤이 아닌 유권자를 중심에 두는 정치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당도 정치 스타 개인 중심이 아니라, 다양한 목소리를 품는 구조로 거듭나야 한다. 공천은 지지율보다 정책 역량과 당 기여도로 평가받아야 하고, 선거 이후에도 국정 운영에 필요한 정책 논쟁이 지속되어야 한다.


미디어 역시 ‘누가 더 센 말 했나’에 집착하기보다, 정책적 관점에서 정치인을 분석하고 검증하는 데 힘을 써야 한다. 유권자가 냉정하게 정보를 해석하고 평가할 수 있도록 돕는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한국 정치는 지금 팬덤이라는 이름의 감정 과잉 상태에 빠져 있다. 그 감정은 정치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사회를 분열시키며, 정당과 정치인의 자생력을 갉아먹는다. 팬덤 정치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가 팬이 아니라 ‘시민’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제는 정치인을 응원할 것이 아니라, 감시하고 평가해야 한다. 정치인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지키는 정치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야 진짜 정치를 다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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