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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 정치 : 상대를 죽여, 내가 사는 정치

by 최재혁

“정치를 잘하는 대신, 상대가 얼마나 못났는지를 외친다”

“‘나는 이런 정치를 하려 한다’가 아니라 ‘쟤는 쓰레기다’”라는 문장이 오늘날 대한민국 정치의 민낯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표현일 것이다. 선거철이 되면, 거리에는 공약보다 상대 후보의 과거를 비난하는 전단이 넘쳐나고, 뉴스의 헤드라인은 "누가 누구를 고발했다"는 보도로 가득 찬다. 정치는 경쟁이지만, 대한민국의 정치는 혐오를 통해 상대를 파괴하는 ‘혐오 정치’로 진화했다.

과거에는 유권자의 표를 얻기 위해 ‘이런 나라를 만들겠다’는 비전과 정책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정당이나 정치인은 미래를 이야기하기보다 오로지 상대의 잘못된 과거를 들추고, 상대를 공격함으로써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려 든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라는 거대 양당 구조는 혐오 정치를 더욱 고착화시킨다. 양당 체제에선 나를 좋아하지 않아도 상대가 더 싫다면 표는 나에게 온다. 정치가 '누가 더 낫냐'의 경쟁이 아닌, '누가 더 덜 혐오스럽냐'는 경쟁으로 바뀐 것이다.


혐오 정치의 증거는 뉴스 속 정치인들의 발언을 보면 쉽게 드러난다. "너희 의원들은 전과자가 수두룩하다", "비리에 눈감은 무능한 정권"과 같은 표현이 일상처럼 쓰인다. 상대를 깎아먹는 발언은 단순한 감정의 분출이 아니라, 계산된 전략이다. 비릿한 감정을 자극하면 지지층은 결집하고, 상대에 대한 혐오는 우리를 향한 투표로 이어진다.


혐오 정치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승자 독식 구조'다. 대한민국 정치에서 한 번 정권을 잡으면 인사, 예산, 정책 방향까지 사실상 전권을 쥐게 된다. 대통령제를 기반으로 하는 중앙집중형 권력 구조 속에서, 권력의 크기는 승리와 패배의 간극을 극단적으로 만들었다. 이기면 모든 것을 갖고, 지면 모든 것을 잃는다. 그러니 정치를 ‘잘하는 것’보다 ‘상대를 죽 것’이 더 효율적인 전략이 된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도 한 몫한다. 클릭 수와 시청률 경쟁에 치 언론은 깊이 있는 분석보다는 자극적인 충돌 장면을 앞세운다. 정치인의 막말이 기사화되고, 그 기사에 달린 댓글이 또 다른 정치 콘텐츠가 된다.

SNS 역시 정치 혐오의 배양장이다. 상대의 실수는 수백 개의 이미지와 영상으로 조롱당하고, 알고리즘은 혐오 콘텐츠를 사용자에게 끊임없이 추천한다. 혐오가 확산될수록 정치에 대한 무관심은 깊어지고, 결국 그 자리를 극단적인 지지층이 채운다.


혐오 정치는 유권자의 피로감까지 불러온다. 정책은 복잡하고, 이해하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반면 혐오는 단순하고 즉각적이다. “저 사람은 적폐다”, “사기꾼이다”라는 말은 판단을 쉽게 해주고, 감정을 대신 표현해준다. 복잡한 고민 없이 ‘싫은 사람을 고르면 된다’는 방식은 유권자의 정치 참여를 간편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정치의 질을 떨어뜨린다.


혐오 정치의 가장 큰 피해자는 국민이다. 혐오 정치가 일상이 되면, 정치는 국민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정당의 생존 수단으로 전락한다. 정책 경쟁은 실종되고, 정치인의 도덕성보다 충성도만이 평가 기준이 된다. 국민은 ‘누가 덜 혐오스러운가’에 따라 투표하고, 정치는 ‘누가 더 극단적인가’로 흘러간다.

정책은 갈등만 부추기고, 중요한 사회 문제는 뒷전으로 밀린다. 청년 실업, 고령화, 저출산, 지방 소멸 같은 구조적 문제는 뉴스의 뒷면으로 사라진다. 정치가 국민을 향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쌓여만 간다. 결국, 국민은 정치에 대한 기대를 버리게 되고, ‘정치는 원래 그런 것’이라는 체념만 남는다.

더 큰 문제는 혐오 정치가 정치인을 ‘소모품’으로 만든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의 역대 대통령들만 봐도 그렇다. 하야, 감옥, 자살, 암살까지 정치의 정점에 오른 인물의 말로는 비극적이었던 것이 대부분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임 대통령을 단죄하는 관행은 '정치 보복'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혐오 정치를 낳는다. 청와대에서 벌어지는 끝없는 전쟁은 결국 정치인을 위축시키고, 유능한 인재가 정치를 기피하게끔 만든다.

혐오 정치의 근본적인 원인은 권력 구조와 정치 시스템에 있다. 양당제가 고착화된 현재의 정치 지형에선 혐오와 대결 구도가 구조적으로 내재되어 있다. 다당제가 성숙하지 못한 환경에서 제3의 정치세력은 번번이 사라졌고, 살아남기 위해선 기존 양당 중 하나로 흡수되거나 극단적인 메시지로 존재감을 드러내야 했다.

또 하나의 원인은 유권자 자신이다. 정치인을 욕하면서도 ‘쟤보단 낫지’라는 기준으로 투표하고, 자극적인 정치 콘텐츠에 ‘좋아요’를 누른다. 정치 혐오를 키운 것은 정치인만이 아니다. 언론, 유권자, 교육, 정치 시스템 모두가 이 구조에 기여하고 있다.


혐오 정치를 이겨내기 위해선 ‘양당 체제’라는 프레임을 깨야 한다. 다당제가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다양한 정치 세력이 자신의 정책으로 평가받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비례대표 확대,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개선, 국회의원 정수 조정 등의 논의가 필요하다.


또한 미디어의 역할도 중요하다. 정치인의 막말만 퍼뜨리는 ‘전달자’가 아니라, 그 발언의 맥락과 진실을 분석하는 ‘필터’로 기능해야 한다. 유권자 역시 혐오의 목소리에 반응하지 않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정책을 보고, 진심을 듣고, 후보자의 가치관을 판단하는 유권자가 많아질수록 혐오 정치의 설 자리는 줄어들 것이다.

정치는 혐오의 도구가 아니라 변화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 ‘누가 더 나쁜가’가 아니라, ‘누가 더 나은가’를 묻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치는 국민의 삶을 바꾸는 힘이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갉아먹는 존재로 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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