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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 정치 : 엘레강스가 파괴된 잔혹한 정치

by 최재혁

“정치는 국민의 삶을 위한 도구였지만, 지금은 갈라놓는 무기다”

정치는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고, 다양한 의견을 조율하며, 국민의 삶을 조금 더 나아지게 만드는 수단이다. 국어사전도 그렇게 정의하고 있다.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으로,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따위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작금의 대한민국 정치는 정의와 완전히 어긋난다. 정치가 국민을 위한 활동이라면, 왜 이토록 많은 국민이 정치에 지치고, 실망하고, 심지어 분노하는가?


정치가 더 이상 '공존'이 아닌 '대결'을 지향하고, '조정'이 아닌 '파괴'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파괴 정치의 시대다.


오늘날의 정치는 국민을 설득하지 않는다. 오히려 국민을 이분법으로 나눈다. 지지자와 반대자, 애국자와 종북, 개혁파와 수구꼴통, 공정과 불공정. 다양한 의견 사이에 회색지대는 존재하지 않고,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려는 노력도 없다. 여야는 언제나 전면전을 벌인다. 입법, 예산, 인사청문회, 국정감사 모든 정치 일정이 상대를 공격하고 꺾기 위한 장이 된다. 협상은 타협이 아니라 패배로 간주되고, 합의는 배신으로 비난받는다.

파괴 정치에 따라 정치의 본질은 사라지고, ‘이기기 위한 정치’만 남았다. 여당은 야당을 무력화시켜야 하고, 야당은 정권 타도를 외쳐야 존재 의미를 갖는다. 여야가 바뀌어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자리를 바꿔 서로를 향해 같은 방식으로 싸울 뿐이다.


작금의 정치는 국민을 피곤하게 만든다. 진영 논리에 갇힌 정치는 실체 없는 분노를 키운다. 국민 개개인은 복잡하고 다양한 삶을 살아가지만, 정치권은 모든 문제를 좌와 우로 단순화시킨다. 복지 논쟁조차 진영의 문제가 되고 외교, 안보, 교육, 부동산, 환경 등 실생활과 직결된 사안들조차 이념 전쟁의 소재가 된다.

파괴 정치의 목적이 ‘국정 운영’이 아니라 ‘권력 유지’로 바뀌었다. 과거에는 정권을 잡은 뒤 정책을 추진하고, 국민의 삶을 개선하는 데 집중했다. 그러나 지금은 정권을 잡고 나서도 다음 선거만을 바라보며, 정치의 방향을 전략적으로 설정한다. 정책의 효과보다 지지율을 우선하고, 성과보다 이미지가 중요해졌다. 모든 정치적 결정은 다음 선거를 위한 포석이 되었다.


정당 구조의 고착화와 진영 정치의 극단화는 파괴 정치의 중심으로 변모했다. 대한민국의 양당 체제는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다. 상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정치는 공존과 협치가 불가능하다. 정치인은 정책보다 ‘적을 무너뜨리는 일’에 집중한다. 비판은 곧 ‘내부 총질’로 낙인찍히고, 타협은 ‘배신’이 된다. 결국 정치인은 유권자의 삶보다 정당 내부의 정치 지형에 더 관심을 둔다.

품격 있는 정치의 언어도 사라졌다. 정치는 본래 타협의 언어로 이뤄지는 작업이다. 그러나 지금은 적대의 언어, 조롱의 언어, 혐오의 언어가 정치의 중심이 되었다. 토론은 실종되고, 대화는 없다. 대신 정쟁이 있고, 감정의 배설이 있다. 언론과 SNS는 이 언어를 확대 재생산하며, 정치의 품격을 끝없이 끌어내린다.

정치의 파괴는 사회의 분열로 이어진다. 국민은 점점 진영 논리에 갇히고, 서로에 대한 신뢰를 잃는다. 가족 내에서도 정치 성향이 다르면 말다툼이 벌어지고, 온라인에서는 이견이 폭력적인 언어로 이어진다. 국가가 해결해야 할 진짜 문제들인 ▲저출산 ▲고령화 ▲경제 양극화 ▲주거 불안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정치권은 서로의 실책을 들추는 데 몰두한다.


파괴 정치는 사회 전반의 갈등을 증폭시킨다. 경제적 불만은 이념 갈등으로 전이되고, 세대 간 대립도 정치 성향의 차이로 확대된다. 정치는 문제 해결의 플랫폼이 아니라, 갈등 유발의 촉매가 되어버렸다.

무엇보다 파괴 정치는 국민의 정치 혐오를 심화시킨다. 정치에 관심을 끊는 국민이 늘어나고, 정치 참여율은 낮아진다. 선거는 극단적 지지층의 결집으로만 치러지고, 중도와 무당층은 점점 더 정치와 멀어진다. 정치가 국민의 삶과 유리되면, 국정 운영은 엘리트 중심의 폐쇄적 구조로 변한다. 결국 민주주의는 점점 왜곡된다.

파괴 정치의 근본 원인은 정치 시스템과 문화의 구조적 결함에 있다. 정치인이 정책보다 갈등을 통해 더 많은 지지를 얻는 시스템, 언론이 갈등을 팔아 클릭을 유도하는 구조, 유권자가 정책보다 정당 색깔에 따라 투표하는 문화가 함께 얽혀 있다. 정치인의 언행이 거칠어질수록 더 많은 관심을 받고, 갈등이 커질수록 지지층은 더 결집한다. 파괴 정치는 비효율적이지만, 정치적으로는 ‘유리한 전략’이 되어버렸다.

또 하나의 원인은 정치의 책임 회피성이다. 파괴 정치는 항상 타인을 탓한다. 책임을 지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상대를 공격함으로써 위기를 벗어나려 한다. 이런 방식은 국민의 불안을 해소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불안을 정치적 무기로 만든다.


파괴된 정치는 단순한 수선으로는 회복되지 않는다. 때로는 오래된 건물을 고치는 것보다 새로 짓는 것이 낫다. 마찬가지로, 지금의 정치 문법을 완전히 새롭게 쓰는 대전환이 필요하다.

가장 먼저 정치의 본질을 회복해야 한다. 정치의 목표는 상대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일하는 것이다. 정쟁 중심의 의회 운영이 아니라, 정책 중심의 국정 운영으로 전환해야 한다.

정당 구조도 개혁해야 한다. 양당 중심 정치의 구조를 다당제로 바꾸고, 소수 정당이 실질적인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정당 내 민주주의도 강화되어야 한다. 다양한 의견이 허용되고, 당내에서도 합리적 토론이 가능한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아울러 정치 언어를 정화해야 한다. 언론과 정치인이 사용하는 언어부터 바뀌어야 한다. 혐오와 조롱이 아닌, 존중과 합리의 언어가 필요하다. 토론 문화의 회복이 시급하다.


정치는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다. 파괴 정치의 시대를 끝내고, 상생 정치, 회복 정치, 통합 정치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정치의 존재 이유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 이제는 정치의 건축 설계를 다시 짜야 할 때다. 철거와 재건축은 불편하지만, 그 과정 없 새로운 정치는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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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수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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