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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 경제 : 거대한 기업이 끝없이 먹어 치우는 경제

by 최재혁

“삼성이 흔들리면 나라가 흔들린다. 이것이 정상인가?”

“삼성전자가 대한민국을 먹여 살린다.”


이 문장은 절대 과장이 아니다. 지금 대한민국 경제는 극단적인 ‘쏠림’ 구조 위에 놓여 있다. 특정 대기업이 흔들리면 국가 경제 전체가 요동친다. 기업의 흥망이 국가의 안정성과 직결되는 이 기묘한 관계, 우리는 이것을 독식 경제라 부른다. 한 손에 경제를 쥐고 있는 소수 대기업 중심의 체제는 과연 바람직한가?

2025년 현재, 국내 주요 대기업 집단들은 수십 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가장 계열사가 많은 기업은 삼성그룹으로,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2025년 5월 기준 63개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다. 그 뒤를 이어 SK그룹 51개, LG그룹 48개, 롯데그룹 44개, 한화그룹 34개 등으로 줄줄이 계열사를 거느린 재벌 대기업들이 국가 경제의 큰 줄기를 형성하고 있다.


이들 대기업은 단순히 제조업을 넘어서 보험, 금융, 유통, 건설, 물류, 반도체, 바이오, 에너지, 엔터테인먼트까지 전방위적으로 확장돼 있다. '문어발식 확장'은 단순한 사업 다각화를 넘어, 사실상 국가 산업 전반을 이들 그룹이 과점하고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문제는 이 구조 속에서 경제의 건강한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점이다. 자본력과 인프라, 정부와의 네트워크까지 갖춘 대기업은 대부분의 산업에 진입 장벽을 낮추지 않는다. 그 결과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은 ‘성장’이 아닌 ‘대기업에 흡수’되는 길 외에는 생존을 담보받기 어려운 현실에 직면한다.

정부는 대기업에 의존하고 있다. 한국 경제는 수출 의존도가 높다. 특히 반도체, 자동차, 석유화학 등 핵심 산업은 대부분 대기업에 의해 움직인다.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정부는 안정적 수출 실적을 확보하기 위해 오히려 대기업을 더욱 키워주는 전략을 택했다. 단기적인 위기 대응에는 효과적이었지만, 장기적으로는 경제 집중도를 심화시켰다.


대기업도 의지하고 있는 정부가 별 불만을 표하지 못하자, 공격적인 인수합병 전략을 펼치고 있다. 국내 스타트업이나 중견기업이 새로운 기술이나 플랫폼으로 주목을 받으면, 곧바로 대기업의 투자 또는 인수 대상이 된다. 결국 작은 기업은 기술 유출과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어 ‘대기업의 독식 구조’를 고착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생태계에서 다양한 기업이 자율적으로 성장하는 구조가 아니라, ‘대기업에 귀속되는 구조’로 전락한 것이다.


결국 법적 제도의 허술함이 문제다. 유럽 등에서는 대기업의 계열사 확장에 대해 철저한 심사와 제재가 이뤄진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총수 일가의 지배력 유지를 용인하는 구조 속에서, 내부거래와 편법 상속, 사익 추구가 수십 년간 관행처럼 굳어져 왔다. 일감 몰아주기, 순환출자, 지주회사 체계의 편법적 활용 등은 결국 대기업이 경제 전반을 포섭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되었다.


가장 큰 피해자는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이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나 기술이 있어도 독자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결국은 대기업과의 ‘파트너십’이라는 이름의 종속 관계에 놓인다. 기술을 넘기고, 인력을 뺏기고, 마침내 시장에서 밀려난다. 독식 경제는 혁신을 저해하는 구조이기도 하다.

우리네 노동시장 불균형 또한 심화된다. 청년들은 취업 시장에서 중소기업보다는 ‘대기업 공채’에 목을 맨다. 대기업이 주는 복지, 급여, 안정성이 압도적으로 우월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인재는 대기업에 쏠리고, 중소기업은 만성적인 인력난에 시달린다. 그 결과 기업 간 양극화는 더욱 심화된다.

정책 왜곡과 정치적 불균형은 대기업의 뒷배를 든든히 받친다. 대기업은 그 규모와 영향력 덕분에 정부 정책에 영향을 미치기 쉬운 위치에 있다. 로비, 후원, 협회 활동 등을 통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법과 제도를 조정한다. 한편, 이들의 이해관계는 시민 전체의 이익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정치와 자본이 밀착되면, 결국 국민은 정책의 수혜자가 아니라 방관자가 된다.


독식 경제는 단순히 기업의 탐욕 때문만은 아니다. 정부, 정치, 법제, 소비자 모두가 함께 만들어낸 구조적 결과다. 정부는 안정성과 실적을 이유로 대기업에 우호적인 정책을 펴고, 정치는 이들과의 유착을 통해 권력을 연장하려 한다. 소비자는 편리함과 가격만을 기준으로 대기업 제품을 선택하고, 미디어는 그들이 광고주이기에 비판에 인색하다.


대기업의 독식 경제로 인해 지금의 대한민국 경제가 완성됐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 대기업에만 의지하는 ‘편한 길’만을 걸을 수 없다. 중소기업 보호보다 효율을, 시장 다양성보다 집중을, 단기 성과보다 장기 안정성을 택하는 선택의 연속이 오늘날의 독식 경제를 만든 것이다.

독식 경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공정거래 질서 확립이 필수다. 대기업의 계열사 확장 및 내부거래에 대해 철저한 심사와 제재가 이뤄져야 한다. 공정위의 권한 강화는 물론, 이해충돌 방지를 위한 입법도 필요하다.

대기업이 기술을 장악하지 못하게 중소기업과 스타트업 보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기술 보호, 인력 유출 방지, 금융 접근성 보장 등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혁신을 이어갈 수 있도록 인수 외의 선택지를 열어주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


당연히 대기업 지배구조도 투명화해야 한다. 총수 일가의 전횡을 막고, 주주 및 소비자의 권리를 확대해야 한다. ESG 경영이 단순한 이미지 세탁이 아니라, 실질적인 지배구조 개선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경제는 모두가 참여하는 공동체의 생명줄이다. 특정 소수가 쥐고 흔드는 구조는 그 어떤 안정도 줄 수 없다.


건강한 생태계는 다양성과 공정성에서 온다. 대한민국 경제가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이제 독식이 아니라 공존과 분산의 경제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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