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이 글을 쓰는 내내 나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물었다.
'그래서 어쩌라고?'
'결국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나는 억울하고 그들은 악당이고 나는 피해자다….이런 말을 하려는 건가?'
분명히 말하고 싶다. 이 글은 그런 단순한 피해자의 자기변명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의도 또한 전혀 없다. 그러니 혹시라도 이 글을 끝까지 읽은 당신이 그런 식으로 생각했다면 아마도 내 글 재주가 아직 한참 부족하다는 뜻일 거다.
사실, 지금도 자주 퇴사한 것을 후회한다.
그 당시 내가 겪었던 모욕과 수치심은 지금의 고통에 비하면 견딜 만했던 것 같다.
‘그냥 참고 남아있었다면…’
‘내가 좀 더 견뎠다면…’
아마 모두가 다 행복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여전히 대기업의 부장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남편이자, 아빠이자, 아들로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들은 늘 쉽게 말한다.
참으면,
“왜 바보처럼 참았어?”
참지 않으면,
“조금만 더 참지 그랬어?”
정말, 어쩌라는 건지….
혹시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직장에서의 괴롭힘이나 정신적인 고통 속에 있다면… 나는 진심으로 이 말을 건네고 싶다.
"절대 섣불리 퇴사부터 하지 말라."
괴롭힘 신고나 산재 준비도 가능한 한 현 직장을 유지하면서 진행하길 바란다.
물론 그 과정은 엄청나게 힘들고 외로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오로지 당신 혼자만의 괴로움이다.
하지만 퇴사를 하면 그 괴로움은 당신 혼자가 아닌, 가족 모두의 고통이 된다는 것을 명심하길 바란다.
당장 그만두고 싶을 만큼 힘들더라도 잠시 미뤄두자.
그리고 회사에 남아 다음의 두 가지를 동시에 준비하라.
하나. 이직을 준비하라.
둘. 괴롭힘과 산재를 입증할 증거를 차곡차곡 모아라.
어쩌면 당신은 매일 비좁은 회의실에서 숨죽이며 앉아 있을 것이다.
상사의 말 한 마디에 심장이 조여오고 문득 건조한 복도 끝이 너무 길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 순간마다 스스로에게 말하라. ‘나는 지금, 싸우고 있다.’
마치 스스로가 탐정이나 비밀요원이 된 것처럼 회사에서 벌어지는 모든 부당함을 꼼꼼히 기록하고 저장하라.
누군가 당신을 무너뜨리려 들면 당신은 더욱 조용히 준비하라.
노동법 책 한 권을 책상에 올려두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사람이 된다.
그 과정이 결코 즐겁진 않겠지만 최소한 무기력한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벗어 날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당신을 멀리 하겠지만 내가 사표 쓰는 날, 그날이 너희 모두, 특히 너에게 한방 먹이는 날이 될 거라고 생각하며 그렇게 스스로 준비가 끝날 때까지 조용히 버텨라.
퇴근 후엔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좋아하는 커피를 마시고 작게라도 자신만의 일상을 회복하라.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내다 보면
당신이 회사를 떠날 시점은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게 바로 이 글의 핵심이다. 이 글은 단지 나 홀로 산재 신청을 승인받은 기록이 아니다.
나는 이 글을 통해 당신이 나보다 더 나은 선택을 하길 바라고 나보다 덜 아프길 바란다.
나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은 위로를...
나보다 덜한 사람은 안도감을...
그리고 나보다 더 깊은 고통 속에 있는 누군가는 희망을 얻길 바란다.
당신이 괴롭힘을 당하는 이유는 그만큼 당신이 착하고 순수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부당한 대우에 침묵하지 마라. 침묵은 어느 순간 당신의 잘못이 되고 조직은 그런 침묵하는 사람부터 내친다. 왜냐하면 저항하지 않을 거라 믿기 때문이다.
회사에게 당신은 단지 언제든지 넣고 뺄 수 있는 숫자일 뿐이다.
회사는 숫자를 다룰 뿐 감정을 이해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신은 숫자가 아니라 사람이다.
감정을 가진, 삶을 지닌, 의미 있는 존재다.
일본 영화 <츠레가 우울증에 걸려서>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골동품 가게 주인이 오래되고 낡은 술잔을 가리키며 말한다.
“이 술잔은 평범한 잔입니다. 하지만 오랜 세월 지금까지 깨지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습니다.”
당신이 평범하다고 해도 여전히 깨지지 않고 버텨왔다는 것만으로 이미 충분히 훌륭하고 가치 있는 사람이다.
에필로그를 마치며…
"처음 쓴 글이라 많이 부족했을 텐데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 글은 지금도 어딘가에서 조용히 견디고 있을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와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내성적이고 도움을 청하는 게 익숙하지 않은 분들이 이 이야기를 더 쉽게 만나볼 수 있도록 널리 알려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