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엄마의 밥상이 아니면 어때.
새로운 계절이 오고 갈 때마다
꼭 생각나는 음식들이 있다.
바로 엄마의 손 맛이 가득 밴 음식들이다.
여름이면 엄마는 호박잎을 쪄서 볶음된장과 함께 내오곤 했다.
호박잎을 다듬는 건 손이 많이 가는 일이다.
여린 잎을 따고, 줄기 끝을 꺾어,
솜털이 보송한 껍질을 하나하나 벗겨내야 한다.
엄마의 수고로 만든 반찬 한 접시면,
공깃밥 두 그릇쯤은 거뜬히 해치우는 딸이었기에
엄마는 지금도 호박잎을 쪄서 보내주신다.
가을이면 항구에서 갓 잡은 꽃게를 사다가
야채를 한가득 넣고 무쳐 내오셨다.
나에게 ‘엄마표 꽃게무침’은 계절을 기억하게 하는
유일한 맛이다.
이렇게 나는 제철마다 엄마의 음식을 맛보며
계절을 맞이했고, 때로는 되돌아보았다.
그 음식들은 단지 끼니를 채우는 게 아니었다.
살면서 숨이 턱턱 막힐 때마다
엄마의 밥상은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엄마의 음식은
말 대신 전하는 응원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도 내 아이에게,
살면서 위로가 될 수 있는 ‘엄마의 음식’을 남겨주고 싶었다.
이유식을 하나하나 다 만들어 먹이던 시절,
맞벌이를 하면서도 부지런히 반찬을 해보려
노력했던 날들.
하지만 매 끼니를 집에서 해 먹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게다가, 된장찌개를 끓였던 어느 날.
아이는 말했다.
“엄마… 맛없어. 된장찌개는 ㅇㅇ반찬에서 사 먹자!”
그 한마디에, 내 마음이 툭 꺾였다.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엄마처럼 요리를 잘하지 못했고,
같은 음식을 만들어도 매번 맛이 달랐다.
요리엔 흥미도 없고, 실력도 없었다.
그 이후로 나는 요리에서 자연스레 손을 놓게 됐다.
그때부터 우리 집 요리사는 남편이 되었다.
초반엔 부엌에서 나가지 못하는 것 같다고 투덜거리던 그도
요리 외의 모든 집안일을 내가 맡자
이제는 제법 능숙하게 조리대를 지키고 있다.
가끔은 슬쩍 즐기는 듯한 얼굴로 말이다.
지난 주말, 거실에서 뒹굴거리던 아이가 소리쳤다.
“아빠 손맛 국수 먹고 싶다~~”
그 말을 들은 신랑은,
아이에겐 따끈한 잔치국수를
나에겐 매콤한 비빔국수를
뚝딱 만들어 대령했다.
“역시 아빠 국수야! 사 먹는 거보다 훨씬 맛있어!”
아이가 엄지를 척 올리며 하는 말에
남편은 쑥스러운 듯 웃었고,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조용히 생각했다.
‘그래, 꼭 엄마의 손맛이어야만 하나 뭐.
아이가 힘들고 지칠 때 떠오를 누군가의 음식,
그게 아빠의 국수여도 충분하지 않을까.’
내 아이 인생에 힘이 되어줄 맛이
우리 둘 중 누군가의 손끝에서 전해진다면,
그걸로도 참 다행인 일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계절이 바뀔 때 문득 생각나는,
그런 한 그릇쯤은
나도 내 손으로 만들어주고 싶다.
어느 날, 내 삶에 조금의 여유가 생긴다면
요리를 배워볼까 한다.
아이가 훗날,
‘그때 엄마가 끓여준 그 맛’ 을 한 번쯤 떠올려 볼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