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영자 씨의 봄
영자 씨,
위대한 자연은 당신이 없는 이곳에도 봄을 때맞춰 보내주었고 올봄의 정점 4월도 다시 지나가고 있어.
지난 10년, 변함없이, 꼬박꼬박 돌아온 봄.
하지만 봄이 늘 똑같은 건 아니야. 해마다도 다르고, 날마다도 달라.
어떤 날은 봄 같고, 어떤 날은 여름 같고, 또 어떤 날은 가을 같은...
게 중에 난 오늘처럼 초여름 같은 4월의 봄이 정말 싫어.
찬란한 햇살이 눈부셔서 누군가를 그리워하다 울 것 같은...
'눈이 부시게 그리운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라는 서정주 님의 시구절이 자꾸 맴도는 오늘 같은 4월의 어느 하루가. 사실 [푸르른 날]이라는 이 시의 배경은 가을 혹은 초겨울일 텐데...
난 이상하게 꼭 눈부신 4월, 봄 햇살 아래서 이 시가 떠오르더라.
봄은 소생의 계절, 기쁨의 계절이라지만 햇살이 함박눈 내리듯 쏟아지는 4월의 봄은, 가을보다 스산하고 겨울보다 시려서, 눈물짓게 돼.
'4월은 정말이지 잔인한 달' 하고 삐쭉거리게 해.
여름엔 "도망쳐~(피서, 避暑)"하고 큰 소리로 외쳐라도 볼 텐데, 봄은 그러기도 쉽지 않아.
신이 선물한 파릇파릇한 생명의 계절이니까... 길지도 않으니 투덜 하면 안 돼.

10년째 접어두었던 맘을 이제야 펼쳐보네.
뭔가 굉장히 하고픈 말이 많은데 막상 써야지 하면 백지장처럼 머릿속이 하얘지고, 내일 해야지, 그래야지 하다가... 이렇게 강산이 한번 더 변하고, 나는 이제 그 어느 시절 '영자 씨'의 나이가 되었어.
봄을 너무 좋아하던 우리 영자 씨. 무슨 꽃을 봐도 예쁘다 감탄하던 영자 씨.
듣지도 않는 나를 붙잡고 꽃이름이며, 떠오르는 시를 읊어주던 영자 씨.
꽃이름을 모르면 그 자리에서 내키는 대로 지어 만들고, 시가 싫다면 유행가를 불러주던 영자 씨.
그런 영자 씨가 유난히 밝히던 봄.
올봄은 놓치지 않고 영자 씨에게 전하리라! 독하게 마음먹으니 이런 기회가 생겼어.
정말 우연히 만난 기회, [브런치스토리, 브런치 북]
세상의 무수한 누구 씨와 함께 당신을 불러볼 수 있는 아름다운 기회!
누구라도 마음속 어딘가에 한 명쯤의 '영자 씨'는 있을 테니까.
함께 불러볼 수 있지 않을까? 우리 모두의 영자 씨를...?
미안하고, 한스러워, 아파.
그래도 있었던 그대로 우리 삶을 꺼내보면서 슬픔, 고통, 즐거움, 기쁨...
그것이 무엇이든 당당히 맞서며 털어보려 해. 그래야 할 기억이라면...
10년을 돌아 난 이제야 알게 되었어. 영자 씨가 정말 원하는 건,
내가 미안해하며 머뭇거리고 주춤 서있는 게 아니라는 걸.
자꾸 뒤돌아 걸어가는 게 아니라는 걸.
당신의 삶을 자랑스러워하는 일이라는 걸.
함께 못 가서 미안해하지 않을게.
'남은 자'이기에 볼 수 있는 봄, 여름, 가을, 겨울 - 이곳 사계절의 향기를 그대에게 듬뿍 담아 편지를 쓸게.
보내기 전 큰 소리로 읽어도 줄게. 어디서라도 들을 수 있을 거야.
아픈 기억도 이젠 꺼내 펼치며 추억할 수 있을 거 같아.
"영자 씨, 나는 마침내 준비가 되었어."
우리 모두의 '영자 씨'와 남겨진 '우리'들에게 이 편지가 먼지 같은 위로라도 되어 닿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