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기억 속으로
영자 씨, 5월이 되었어.
어린이날도 있고, 어버이날도 있고, 스승의 날도 있는 가정의 달 오월.
난 이 오월이 참 싫었어. 특별한 날이 있는 달은 난 다 싫었던 것 같아.
그 오월 중 가장 싫은 나의 기억은...
잊히지 않는 나의 기억은...
4학년 때 그러니까 11살 때. 그해 내가 부회장이 되었잖아.
오월 어린이날을 맞이하여 *부통을 받았는데 어린이날 행사에 대한 안내가 있는 통신문이었지.
그 행사에 엄마가 와야 했어. 아니면 얼마 정도의 회비를 제출하라는 안내가 되어있었던 걸로 기억해.
사실 부모님이 꼭 오셔야 한다는 말은 부통 어디에도 없었지만 나를 제외한 학급 간부 어머님들이 오셨고 간부가 아닌 아이의 어머님까지 오셔서 담임한테 눈도장을 찍으려고 애를 쓰셨지.
그 이후로 선생님은 아니, 그날부터 그녀는 나를 대놓고 무시하고 미워하는 게 느껴졌어.
다른 임원들처럼 똑 소리 나게 일처리를 잘하지 못하는 어리숙한 내가 가장 큰 문제였지만 난 그게 그때는 영자 씨 때문이라고 생각했어.
'얼마 정도의 회비'라는 안내에 정말 최소한의 회비만을 덜렁 담아 보내주신 영자 씨.
그걸 받아 들며 어이없어하시던 담임선생님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
눈도 약간 사시 같은 분이셔서 쳐다보는 자체로 이상하게 무시받는 느낌이 들게 하는 분이었는데 말투마저 차가워지니 바로 알 수 있겠더라. 내가 미움받고 있다는 것을.
유난히 학부모님 관심을 좋아하셨던 그녀와, 지독히도 학교일엔 관심이 없는 영자 씨!
그 사이에 있던 어리숙한 나의 운명은 어쩌면 이미 정해진 것을.
신데렐라가 되는 그런 운명말이야.
그날 행사엔 맛있는 과자, 빵, 음료수가 제공되었고 노래하고 게임하고 춤도 추었지만...
난, 그 행사가 어서 끝나기만을 내내 기다리고 기다렸어.
부통확인서를 제출하는 그 순간부터, 선생님의 방향을 가름하기 힘든 그 눈빛과 날카롭고 짧은 한숨을 느낀 그 순간부터.
"너만 잘하면 된다"라고 영자 씨는 항상 같은 말씀을 하셨지만, 그게 바로 문제였어.
내가 그런 애가 못된다는 것! 영자 씨도 모르지 않았지?
1-3학년까지 뜻하지 않게 이사와 전학이 잦아지며 번번이 기회를 놓쳤기에, 4학년 때는 그냥 뽑히면 무조건 해야지 싶었어. 하고 싶었거든, 임원. 나도...
그러나 그 한 번의 경험으로 충분했어.
난 미련을 싹 버렸고 다시는 임원선거에 나가지 않기로 결심했어. 호명이 되어도 기권했어.
솔직히 영자 씨가 학교에 오는 것도 난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그때부터였을까?
스스로 판단해서 그 이상을 욕심내지 않는, 나의 이 도전의식 없는, 방어형 성격이 형성된 것은? : )
그땐 무척 속상했던 거 같은데...
지금까지도 그 선생님의 얼굴만큼은 똑똑히 기억나지만 이젠 맘이 아프진 않아. 그 감정은 흐릿해진 거 같아.
좋은 선생님과의 행복한 인연들이 맑은 물살이 되어 맘속에 고인 흙탕물을 자꾸 흘려보내나 봐.
그래도 내 말이 신경 쓰이셨는지 얼마뒤에 있는 스승의 날엔 맛있는 김밥 도시락이랑 예쁜 꽃다발을 준비해 주셨잖아, 영자 씨가. 기억나?
영자 씨로서는 최선이고 최고의 선물이었는데. 하하
그 선물이 날 살려주었어. 그 후에 조금 나아지셨거든.
그래도 1년 내내 날 크게 예뻐하시지는 않으셨어.
영자 씨, 지금은 어리숙한 내가 문제였다고 인정해.
유난히 영리하고 똑소리 나는 회장하고 난 참 많이 비교되었어.
나 하나 하면 회장은 2개도 아니고 10개쯤 하는 아이였으니까.
석은경. 이름도 잊히질 않네. ㅎㅎ

아프냐고? 이미 지나간 일, 아니라고 했쟈~나~
그때는 영자 씨가 부족한 날 채워주었으면 좋겠다 싶었지. 어렸으니까.
아니다, 솔직 고백하면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 그랬어.
그게 늘 속상했던 것 같아. 그럼 내가 조금은 더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을 거 같은데...
난 왜 그럴 수 없는 부모님을 만났을까? 하고...
어느 날, 감정을 숨기지 못해 막 뱉어버리던 그날 영자 씨가 그랬잖아.
"내가 너라면, 너만 되면 날아다니겠다"고...
"그만큼 가졌는데 뭐가 맨날 불만이냐"고..."
그 말도 어이없어서, 짜증 나서 엉엉 울었는데...
조심스레 문을 닫고 나간 영자 씨도 조용히 울고 있었다는 거 나 알고 있었어.
영자 씨, 미안해! 못되게 굴어서...
이제야 사과를 하다니... 너무 늦었는데...
그때 영자 씨가 되어보니... 보지 못했던걸 보게 되네. 알지 못한 걸 알게 되고.
내가 그렇게 당신에게 화풀이를 하면 안 되는 거. 였. 어. 그렇지?
영자 씨, 부디 용서해 주라. 응?
아, 큰일이다. 앞으로도 용서받을 일이 너무 많을 거 같은데... 어쩌란 말이냐.
그래도, 서툴지만, 이제는 도망치지 않아. 그럴거야.
영자 씨의 말, "나로서는 최선이었다."
이제는 이해할 수도 있을 거 같아요. 그대로 전해지는 거 같아요.
영자 씨, 너무 늦었지만... "고마워요. 그리고, 미안했어요."
이렇게, 또 하나의 기억을 꺼내놓습니다.
*그 당시 학급 임원에게만 주어지던 학부모 통신문(부통)이 있었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