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rade: 무역왕 김스타 9화

전시회 참가, 그리고 굴욕(상)

by 이설아빠

뷰티전문 국제 전시회 개최 하루 전, 늦은 밤인데도 불구하고 도현은 땀을 뻘뻘 흘리며 전시장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부스에 있는 테이블 높이를 맞추고, 진열대를 조립하는 일조차 도현에겐 생소했다. 옆 부스는 전문 시공업체가 와서 설치 중이었지만, 뷰티스타 코스메틱은 사다리와 테이프로 뚝딱거리며 직접 스스로 만들고 있었다.

‘진짜로 전시회에 왔구나...’

낯선 풍경 속에서 그는 마치 길을 잃은 여행자와 같았다. 그리고 새벽 5시 반, 전시회 참가 당일 아침부터 울린 전화였다.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걸려온 기석의 전화에 도현은 불길한 예감으로 전화를 받으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한 선생님, 무슨 일이실까요?”

“저... 미안합니다, 대표님.”

기석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힘이 없었다.

“어머님께서 갑자기 쓰러지셨습니다. 그래서 급히 병원으로 가는 중입니다. 오늘 전시회는... 함께 못 갈 것 같습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어머님 옆에 계셔야죠. 어르신 건강이 먼저예요. 걱정 마세요, 저희가 잘해볼게요.”

전화를 끊고 나자, 도현은 순간 현기증이 났다. 수십 번 시뮬레이션하며 준비했던 전시회지만 그 모든 설계에는 ‘한기석과 함께’라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 믿음의 기둥이 사라졌다.

'하...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러나 도현은 본인의 뺨을 힘껏 꼬집었다.

'정신 차리자! 할 수 있어!'


“괜찮아요, 대표님. 제가 옆에서 더 열심히 도와드릴게요.”

막내 직원인 효진이 작은 미소로 답하였지만, 도현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불안이 차올랐다. 뷰티 전문 국제 전시회 개최 장소는 서울 코엑스. 국내 최대 규모의 뷰티 전문 전시회답게 이미 아침부터 북적였다. 전시장을 둘러보며, 참가한 브랜드들을 보자 도현은 더욱 위축되었다.

L*생활건강, 아**퍼시픽, 클리*, 미*... 거대한 구조물과 함께 자리한 그들의 부스는 말 그대로 ‘전시장 속 견고한 성채’ 같았다. 중소기업들도 많이 참가하였는데, 그들도 2 ~ 3개 부수를 합쳐서 크기도 웅장하고 화려했다. 반면, 뷰티스타 코스메틱의 부스는 가로 3미터, 세로 3미터의 기본형에 테이블 하나, 제품 진열대 하나, 그리고 영문 카탈로그 몇 부가 전부였다. 그리고 전시회 신청을 늦게 하는 바람에 위치도 구석이었다.

'와... 정말로 멋진 부스들이 많구나... 저렇게 하니깐 확실히 이목이 확 쏠리네.'

도현의 가슴은 두근거렸지만, 뷰티스타 코스메틱의 부스를 보면서 조금씩 위축되는 자신을 느꼈다. 하지만 이제 물러설 수 없었다. 옷깃을 여미며 마지막으로 거울을 들여다봤다.

‘괜찮아, 준비한 만큼 열심히 해보자. 처음이잖아.’

첫 번째 바이어는 오전 11시 10분 도착 예정이었다. 이름은 마크 앤더슨, 스웨덴계 유통사 MD. 도현은 준비한 카탈로그와 제품을 손에 꼭 쥐고 바이어를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마크가 다가왔다.

“Hello, I’m Mark. Nice to meet you.”

(안녕하세요, 저는 마크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Ah, yes. Nice to meet you. I’m Do-Hyun, Kim. Our… product is…”

(아, 네. 반갑습니다. 저는 김도현입니다. 저희… 제품은…)

영어가 쉽게 나오지 않았다. 기석은 글로벌 비즈니스의 기본은 영어라며, 도현에게 영어 공부를 꾸준히 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래서 새벽마다 열심히 학원에 다니며 공부하였고, 예상 질의를 영어로 만들어 수십 번 연습하였다. 하지만, 수십 번 넘게 연습한 문장은 입 밖으로 쉽게 튀어나오지 않았다. 머릿속은 하얘졌고, 도현은 얼어붙은 채 손에 들고 있던 카탈로그만을 내밀었다. 카탈로그를 내미는 도현의 손끝이 떨렸고, 도현은 그걸 감추려 애썼다. 마크는 몇 초간 카탈로그를 들여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I see. Do you have a price list and MOQ?”

(알겠습니다. 혹시 가격표와 최소 주문 수량이 있나요?)

도현은 머뭇거리다 영어로 겨우 말했다.

“Um… MOQ is… one thousand units. Price… One set is… uh… fifteen dollars.”

(음… 최소 주문 수량은… 천 개입니다. 가격은… 어… 세트당 15달러입니다.)

그 말에 마크는 고민하더니, 별다른 말 없이 조용히 카탈로그를 접었다. 마크의 눈엔 부스 전체가 마치 동호회 발표회처럼 보였을 것이다. 테이블 하나, 카탈로그 몇 장, 설명하는 사람은 초조해 보였고, 브랜드의 개성도 뚜렷하게 보이지 않았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나며 ‘경험 부족’이라는 세 글자를 떠올렸다.

“Thank you.”

(감사합니다.)

그는 그렇게 말한 뒤, 아무 말 없이 자리를 떴다. 도현은 땀이 식지 않았다. 두 번째 바이어 스미스가 찾아왔다. 도현은 손에 땀이 흥건히 차오른 걸 느끼며 스미스를 부스 안으로 안내했다. 작은 부스 안에 마련된 테이블에 마주 앉자, 도현은 준비했던 멘트를 되뇌었다.

“Yes, Mr. Smith. This is our main product. It’s a men’s skincare product with natural ingredients. No aluminum, no paraben… and, uh… made in Korea.”

(네, 스미스 씨. 이것이 저희 주력 제품입니다. 천연 성분을 사용한 남성용 스킨케어 제품입니다. 알루미늄, 파라벤은 없고... 어... 그리고 한국에서 제조되었습니다.)

스미스는 카탈로그를 넘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Interesting. And what makes this product different from other Korean brands?”

(흥미롭네요. 그런데 이 제품이 다른 한국 브랜드들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도현은 당황했다. 예상치 못한 질문에 머릿속이 잠시 하얘졌다.

“Ah… difference… um… we… our design is more… masculine. And… price is competitive, and we target… uh… young men in urban area.”

(아… 차이점은… 음… 저희 디자인이 좀 더 남성적입니다. 그리고… 가격도 경쟁력이 있고요, 저희는… 어… 도시 지역의 젊은 남성을 타깃으로 하고 있습니다.)

스미스는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

“Do you have clinical test data? Or efficacy proof? And what certifications do you have? CPNP?”

(임상 시험 데이터나 효능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가 있나요? 그리고 어떤 인증을 보유하고 있나요? CPNP는요?)

도현은 순간 머뭇거렸다. CPNP 인증은 아직 조사만 해둔 상태였다.

“CPNP… not yet. But we can prepare soon. We have a domestic test report… but not clinical.”

(CPNP는… 아직 없습니다. 하지만 곧 준비할 수 있습니다. 국내 시험 성적서는 보유하고 있지만… 임상 시험 자료는 없습니다.)

스미스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I understand. But, to be honest, your product is not differentiated enough. Design is okay, but the packaging looks a bit cheap. For the European market, we need more data and a strong story. Good luck.”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귀사의 제품은 차별성이 부족해 보입니다. 디자인은 괜찮지만, 패키지는 다소 저렴해 보이네요. 유럽 시장을 위해서는 더 많은 데이터와 강력한 스토리가 필요합니다. 행운을 빌어요.)

그리고는 깍듯하게 고개를 숙인 후, 샘플만 가지고 부스를 떠났다. 도현은 잠시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땀인지, 기석이 없는 긴장감 때문인지 손바닥이 축축했다. 그가 떠난 자리엔 놓여있던 카탈로그 한 장만이 여전히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하... 그놈의 패키지... 그리고 인증. 하루라도 패키지 리디자인 완료하고, 빨리 인증을 신청해야겠어.'

세 번째 바이어는 부스 앞에 잠시 멈췄다가,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이고 돌아섰다. 정확히 10초 남짓이었다. 도현은 그 짧은 시간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마치 그가 말하지 않고도 이미 모든 판단을 끝낸 듯한 표정이었다.

네 번째 바이어는 한국 통역원과 함께 방문하였다. 그리고 제품을 손에 들어 보더니, 한 마디를 툭 내뱉었다.

“패키지가 너무 단순하네요. 유럽 소비자들은 첫인상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는 더 이상 설명을 듣지도 않고 돌아섰다. 도현은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며 “Thank you”를 중얼거렸지만, 가슴속 어딘가가 서서히 꺼져가는 느낌이었다. 손에 들고 있던 카탈로그는 땀으로 눅눅해졌고,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방울은 어느새 턱끝까지 내려와 있었다.

그 뒤로도 몇 명의 외국인 바이어가 스쳐 지나갔지만, 대부분은 뷰티스타 부스 앞에서 5초도 머물지 않았다. 이유는 분명했다. 화려한 부스들 사이에서 뷰티스타 코스메틱의 부스 디자인은 눈에 띄지 않았고, 제품 소개도 명확하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도현의 영어 실력 부족으로, 효과적으로 제품을 소개할 수 없었다.

“안녕하세요. 어… 홍보 영상 준비 안 하셨어요?"

오후 4시 즈음. 전시장을 돌아다니던 정부기관 수출지원 담당자가 부스를 방문했다. 파란색 명찰을 달고, 바이어들을 이끌고 다니던 그 담당자는 뷰티스타 코스메틱 부스를 힐끔 바라보다가 말을 걸었다.

“아니요. 그냥 제품 설명 중심의 영문 카탈로그만 준비했어요.”

“요즘은 영상이 거의 첫인상이에요. 부스를 지나가는 바이어들 중 절반 이상은 영상부터 본다고 해요. 영상이 있으면 멈춰 서고, 없으면 그냥 스킵해요.”

도현은 움찔했다. 기석이 왜 홍보 영상이 필요하다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렇군요...”

“제품이나 브랜드 소개 영상이 없으면 사람들이 그냥 스쳐 지나가요. 요즘엔 제대로 된 영상 없으면 눈길조차 안 줘요. 특히 외국 바이어들은 설명보다도 영상으로 제품 사용법이나 기능을 확인하고 싶어 하세요. 현장에 통역이 없거나, 언어 장벽이 있으면 영상이 유일한 ‘말’이 되는 거죠.”

담당자의 말은 친절했지만, 도현의 마음엔 또 하나의 화살이 박혔다.

“아, 그리고 제품 놓는 진열대도 조금 높였으면 좋겠어요.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기에 그들의 시야에서 안 보여요. 지금은 전단지 홍보 느낌이라 개인적으로 조금 아쉽네요.”

“감사합니다. 다음 전시회부터는 꼭 반영할게요.”

도현은 고개를 숙였지만, 안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자괴감을 눌러야 했다.

‘영문 카탈로그도 벅차서 힘들었는데... 영상, 디스플레이, 높이 조정까지 다 챙겨야만 하는 거였다니...’

모든 것 하나하나가 부족했다. 도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어깨를 떨궜다. 그는 전시회가 이렇게 경쟁적인 곳이라는 걸, 처음 실감하고 있었다. 오후 5시. 도현은 비틀거리며 전시장을 빠져나왔다. 효진과 함께 부스를 지키며 카탈로그와 샘플을 돌리고, 제품을 설명하고, 응대하며 버텼지만, 돌아온 건 단 한 건의 제대로 된 수출 상담도 없는, 무의미한 만남뿐이었다.


“대표님, 오늘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효진의 위로에도 도현은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대표님, 저희... 내일은 영상이라도 하나 틀까요? PPT 슬라이드를 이용해서 동영상처럼 만들어볼까요?”

도현은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할까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한 번 해볼게요... 근데 괜찮으시죠 대표님? 오늘은 그냥 우리가 배운 날이라고 생각해요. 실패도 데이터죠. 내일은 내일의 계획이 있잖아요. 영상도, 진열대도. 차근차근 가면 될 것 같아요.”

효진의 말은 단순했지만, 진심이 묻어났다.

“괜찮아요. 이 정도는 각오했어요.”

그러나 거짓이었다. 도현은 예상보다 훨씬 더 큰 충격을 받고 있었다. 숙소에 돌아온 도현은 샤워도 하지 않은 채 침대에 털썩 누웠다. 이불을 덮은 채, 핸드폰을 켰다. 불빛이 눈을 찔렀지만, 그는 무작정 메신저 앱을 켰다. 그때, 하나의 메시지가 눈에 들어왔다. 지우의 메시지였다.

“오늘 어떠셨어요? 이번엔 처음이라 조금 부족할 수도 있지만,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을 거예요!”

짧은 한 줄. 그러나 그 한 줄이, 도현의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쿡 찌르듯 뻐근하던 감정이, 그제야 터져 나왔다. 그는 조용히 눈을 감고, 핸드폰을 가슴에 품은 채 잠이 들었다.

내일이 오기를 기다리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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