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존재다-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 가는 자, 자유로운 정신을 가진 자, 허무주의의 상태를 극복하는 자를 말해.
깊은 우울의 늪에 빠져 본 사람이라면 니체의 이 말이 너무 멀고도 차가운 이상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몇 년을 혹은 몇 달을 누워 생각해 본 적 있어?
누가 나 좀 이 침대에서 일으켜 주면 좋겠다.
혹은 내일 아침 영원히 눈뜨지 않고 고통 없이 나를 영원히 잠들게라도 해주면 더 좋고..
뭐 이런 생각들 말이야.
내 인생에서도 그런 깊은 어둠들이 몇 번이고 찾아왔었어.
그때마다 내 엉덩이를 힘껏 차서 삶으로 날 돌려세운 건
그 기억이야.
내 심장이 몸 밖으로 뽑아져 나올 것 같은 그 강렬한 느낌.. 너도 기억하겠지?
고통스럽다고?
한 번이라도 미친 듯 뛰어놀던 어린 너를 떠올려봐.
골목 구석구석을 누비던 네 뛰던 심장은
고통이었을까? 아니.
그건 벅찬 기쁨이었어.
터질 듯이 뛰던 그 심장과
한겨울에 생명력으로 뜨겁게 달아오르던 두 뺨이 생생해.
이제 50을 마주한 지금,
나는 매일 그 때로 돌아가.
대가 없이 온 심장을 세상에게 내어 맡기고
이유도 없이 웃음이 터지던 그 시절로.
생명력 즉 힘(내면의 신)을 추구하며 끊임없이 성장해 가는 이란
그가 바로 위버시멘이다.
그리고 그 성장이란
끊임없이 흔들리는 자신을
그대로 사랑하는 과정이야.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괴테는 [파우스트]
힘은 움직임에서 나와.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약동해.
몸무림 치고 노력하고 ,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가려고 애쓰고
그러면서 방황하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너를 사랑하는 과정이 삶이라면
크로스핏은 그 성장통과 너무나 닮아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