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가 좀 해주고 가
토요일 오전 느지막이 일어나 거실에 누워 고양이와 TV를 보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부모님 방에서 아빠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아빠: PDF 알아?
말을 듣자마자 아득해져 옵니다. 하아.. 뭔가 감추려 노력했던 치부를 들킨 것 같았습니다.
나: PDF... 는 뭐라고 해야 되냐..
아빠: (핸드폰을 보며)이게 지금 같이 뜨는데 업데이트하지 않으면은 휴대전화에서 파일을 열 수가 없다 그래서 경고장이 떠, 이렇게.
나: 업데이트를 해. 아빠는 사실 이거 사용을 안 하는데..
아빠: 아, 안 하는 거야~?
나: 아빠는 안 해. 근데 내가 아빠 꺼 뭐 해줄 때 필요할 때가 있어. 그래서 업데이트 알람이 뜨면 업데이트하기 눌러.
아빠: 알람을 끄면?
나: 이 업데이트 창 알람이 뜨면.
아빠: 아~ 알람이 뜨면.
[그날 오후]
나: 아빠가 PDF를 물어봤어. 흠..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언니: 난 할 수 있을 것 같아.
나: 어떻게?
언니: 프린트하지 않고 인터넷상에서 옮기는 파일이다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
나: 그거로 안될 거 같은데. 하려면 word, 한글, ppt 다 설명해야 돼.
언니:하아.. 안 되겠는데
둘 다 웃음이 빵 하고 터졌습니다. 저희 아빠는 논리적이고 궁금한 게 많은 사람입니다. 1+1=2라는 결과보다 어떤 과정으로 2가 되는지 알아야 다음 단계로 넘어갑니다. 그 과정을 그려보니 언니와 저는 까마득해졌습니다. 안 그래도 요새 아빠가 주식에 관심을 크게 보여서 머리가 아프던 참이었습니다.
나: 그러면, 언니 미국 가기 전에 아빠 주식계좌만 열어주고 가
언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나 못해, 네가 해 하하하
나: 그것만 해주고 가 ~! 그 이후에 해야 할 일이 산더미인데 그건 내가 하잖아~!
< 아빠에게 쓰는 편지>
결국 우리는 PDF가 뭔지 설명하지 못했지. 일단.. 이건 미뤄두자. 여태껏 설명한 것도 기억이 안 나는데 잘 쓰는 거 위주로 하는 게 중요한 거 같아. ETF 공부 열심히 하는 아빠를 보면 대단하면서도 도망가게 돼.. 언젠가 해야 할 큰 숙제겠지? 하아.. 오늘은 이만 쓸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