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 파스타. 카치오 에 페페(Cacio e Pepe)

로마파스타의 정수 레시피

by 서도운

안녕하세요 저번 나폴리의 정수 알리오올리오에 이어서 오늘은 로마 더 나아가 이탈리아의 정수 카치오 에 페페(Cacio e Pepe) 레시피를 준비해 보았습니다.

카치오 에 페페(Cacio e Pepe)는 이름 그대로 ‘치즈와 후추’라는 뜻을 가진, 로마를 대표하는 파스타입니다. 불필요한 장식을 모두 덜어내고 오직 두 가지 재료와 파스타, 그리고 면수만으로 완성되는 이 요리는 단순함 속에서 깊이를 보여주는 이탈리아 요리의 철학을 가장 잘 드러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기원은 양치기들이 장기간 보관 가능한 페코리노 치즈와 후추, 그리고 말린 파스타를 챙겨 다니며 만들어 먹던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래서 ‘인류의 가장 원초적인 파스타’라 불리기도 하지요.

이번 글에서는 제가 직접 여러 번 실패와 성공을 거듭하며 얻은 노하우를 담아, 집에서도 레스토랑 못지않은 카치오 에 페페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을 공유해 드리려 합니다.

카치오 에 페페는 재료만 놓고 보면 알리오 올리오보다 훨씬 단순합니다. 하지만 단순하기에 오히려 더 섬세한 기술이 필요하고, 작은 차이에도 완성도가 크게 갈리는 고난도 파스타입니다. 그래서 한 번에 성공하기는 쉽지 않지요.

다행히도 제가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정리한 레시피와 팁을 따라오신다면, 실패 확률을 크게 줄이고 집에서도 완벽한 카치오 에 페페를 맛보실 수 있을 겁니다.


재료

1. 페코리노 로마노 치즈 40g

카치오 에 페페에 사용되는 치즈는 반드시 페코리노 로마노여야 합니다. 단순히 로마 지역에서 유래했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 치즈는 양젖으로 만들어져 특유의 강렬하고 짭조름한 풍미를 지니고 있는데, 바로 그 짠맛과 깊은 향이 후추와 만나면서 파스타 전체에 힘을 실어줍니다. 다른 치즈로는 이 균형을 결코 재현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는 은은하고 고소하지만 카치오 에 페페에는 다소 부드러워 힘이 부족합니다. 반면 페코리노 로마노는 짠맛과 풍미가 분명하고 직선적이어서, 단 세 가지 재료만으로도 완전한 맛을 완성해 내는 치즈라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이 요리를 성립시키는 뼈대는 바로 이 치즈인 셈이지요.


2. 후추
3. 소금
4. 파스타면 100g


…그리고 이게 다입니다. 네, 진짜로요. 치즈, 후추, 소금, 파스타면. 끝.



하지만 바로 그 단순함 때문에, 이 파스타는 ‘이탈리아의 정수’라 불리며 셰프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메뉴 중 하나이기도 하지요. 재료가 단순할수록 난이도는 더욱 커질 수도 있습니다. 특히 이 파스타가 그렇지요. 앞으로 설명해 드릴 레시피 부분에서 그 이유를 상세히 설명드리겠습니다.


레시피


1. 물을 끓입니다.

언제나 말씀드렸듯 소금은 과감하게. 맛을 보았을 때 짭짤하게 가 중요합니다.


​2. 치즈를 갈아줍니다.

상당히 곱게 갈린 모습이 보이시죠? 제가 사용하는 그라인더는 마이크로플레인 제품으로, 치즈를 아주 얇고 섬세하게 갈아낸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부분에서 카치오 에 페페의 성공 여부가 갈리게 됩니다.

사진을 자세히 보시면, 치즈가 곱게 갈리긴 했지만 입자가 길쭉한 형태를 띠고 있는 걸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치즈 입자가 길거나 굵을수록 소스로 녹일 때 서로 달라붙어 덩어리 지는 현상이 쉽게 발생하죠.
따라서 이 요리에서 반드시 명심해야 할 실패 요인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농도 조절.
둘째, 치즈의 덩어리짐 방지.
셋째, 온도의 균형 유지.​

이 세 가지만 잡아낸다면, 카치오 에 페페라는 까다로운 파스타도 충분히 매끈하고 부드럽게 완성하실 수 있습니다.

이어서 말씀드리자면, 이탈리아에서는 이미 곱게 갈려 있는 페코리노 치즈 가루를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보통 하드 치즈를 직접 그라인더로 갈아야 하기 때문에, 그 곱기가 이탈리아 현지 제품만큼 고운 상태로 나오기 쉽지 않죠. 제가 갈아놓은 치즈만 보더라도, 아직 ‘고운 가루’라 부르기엔 조금 부족한 상태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로 사진처럼 손으로 살살 비벼서, 길게 뽑힌 입자를 더 잘게 부스러뜨려 주는 겁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살살’입니다. 손의 온도가 너무 높거나, 치즈를 짓이기듯 힘껏 눌러버리면 오히려 치즈가 녹아 서로 들러붙어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피하려던 “덩어리 지는 현상”이 그대로 발생하죠.

결국, 손끝의 온도와 섬세한 터치가 이 파스타의 성패를 좌우하는 또 하나의 비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짜잔! 이렇게 곱디고운 가루 상태로 만들어 주시면 됩니다.

3. 치즈녹이기.

이제 본격적으로 치즈를 녹이는 과정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이 부분 역시 작은 실수 하나가 그대로 실패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합니다.

가장 먼저, 절대 팔팔 끓는 물을 바로 붓지 마세요. 치즈가 단숨에 열을 받아버리면 단백질이 응고되어 소스가 아니라 ‘치즈 떡’이 되어버립니다. (제가 처음 만들 때도 이 함정에 제대로 빠졌었죠…)

따라서 약 70도 정도의 따뜻한 물을 준비해 조금씩 나눠가며 섞어주셔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치즈가 부드럽게 녹으면서 전분과 만나 크리미 한 질감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중요한 포인트! 소스의 상태는 묽어서도 안 되고, 지나치게 되직해서도 안 됩니다. 딱 걸쭉한 페이스트 형태가 되었을 때 비로소 “성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통 이 치즈 녹이기 과정에서 첫 번째 성공과 실패가 갈립니다. 결과는 아주 냉정하죠.

1. 치즈 덩어리가 생겼다​
실패입니다. 네, 인정하셔야 합니다. 다시 처음부터 준비하세요. (치즈 떡볶이를 원하신 게 아니라면요…)

2. 치즈 소스가 주르륵 흐른다​
실패입니다. 이건 치즈 국물이지, 소스가 아닙니다. 다시 처음부터 준비하셔야 합니다.

결국 답은 딱 하나, 크리미 한 페이스트 상태를 만드는 겁니다. 거기까지 가야 비로소 카치오 에 페페의 문 앞에 선 거예요.

성공하시면 이런 요거트 스러운 끈덕한 피즈 페이스트가 만들어지실 겁니당.


4. 면 삶기

항상 강조하듯 면은 적어도 데체코 면을 사용하세요. 전 테프론 면 알레르기 있습니다. 특히 토냐렐리(기타라면)을 사용하는 게 좋습니다. 저는 기타라 면이 양이 부족해 부가티니 면을 섞었습니다. 아무튼 너무 얇은 파스타만 아니면 괜찮습니다.

항상 강조하지만, 면은 최소한 데체코 정도는 써주셔야 합니다. (저는 테프론 면은 알레르기가 있어서 못 씁니다… ) 전통적으로는 토냐렐리(기타라 면)을 쓰는 게 가장 이상적입니다. 다만 저는 이날 기타라 면이 애매하게 부족해서 부득이하게 부카티니를 살짝 섞어 썼습니다. 뭐, 너무 얇은 파스타만 아니면 괜찮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포인트! 카치오 에 페페는 유화(emulsion) 과정이 핵심이기 때문에, 원하시는 익힘 정도보다 3분 정도 덜 삶아 건져내셔야 합니다. 그래야 팬에서 치즈와 면수가 만나 완벽한 소스로 이어질 시간을 벌 수 있습니다.


5. 후추 볶기

후추는 반드시 굵직하게 갈아낸 것을 사용해 주세요. 곱게 갈면 소스 속에서 금방 사라져 버려 향과 식감을 살릴 수 없습니다. 굵은 입자는 치즈 소스에 은은하게 퍼지면서 씹을 때 톡 하고 터지는 향을 남겨주죠.

갈아낸 후추는 팬에 넣고 은은한 불에서 천천히 볶아 향을 깨워줍니다. 이때는 절대 태우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한순간 방심하면 매혹적인 향 대신 탄내만 가득 남습니다.

재미있는 건, 이렇게 후추를 볶아보면 우리가 흔히 아는 톡 쏘는 매운 향이 아니라, 의외로 싱그럽고 맑은 향이 올라온다는 겁니다. 저도 처음 해봤을 때 ‘이게 내가 알던 후추 맞아?’ 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6. 후추 차 만들기

이제 여기에 면수 한 국자를 넣어주세요. 그러면 후추의 향이 물속으로 스며들며 일종의 ‘후추차’가 만들어집니다. 이 면수는 곧 치즈와 섞이며 소스의 기본이 되지요.

다만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페코리노 로마노 자체가 꽤 짭조름한 치즈이기 때문에, 면수까지 쓰면 전체가 지나치게 짜질 수 있습니다. 만약 이미 소금 간이 센 파스타 물을 사용하셨다면, 이 과정에서는 생수를 사용해도 무방합니다. 결과적으로 중요한 건, 후추의 향이 충분히 우러나는 것과 최종 간의 균형입니다.


7. 팬에서 면 익히기.

이제 원하는 익힘까지 약 3분 정도 덜 삶아진 파스타를 팬으로 옮깁니다. 그리고 여기에 면수 혹은 생수를 조금씩 부어가며 마저 익혀 주세요.

중요한 건 한 번에 많은 양을 붓지 않는 것입니다. 물을 한꺼번에 넣어버리면 졸이는 과정이 길어져서 면이 과하게 익어버릴 수 있습니다. 또, 끓던 면수를 몽땅 버리고 새로 잡아 쓰면 그 안에 녹아 있던 전분이 손실되기 때문에 유화 과정이 어려워지죠.

따라서 조금씩, 여러 번 나눠서 넣으며 면을 익혀 주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래야 면은 원하는 알덴테 상태로 익고, 동시에 소스와 만나 크리미하게 유화될 준비가 갖춰집니다.


8. 1차로 면과 면수 식히기

약 3분 후, 사진처럼 팬에 살짝 남아 있는 면수 정도면 충분합니다. 카치오 에 페페는 소스가 묽어지면 바로 실패로 이어지기 때문에, 다른 파스타에 비해 만테까레 전의 면수 양을 훨씬 더 타이트하게 잡아주셔야 합니다.

이제 불을 끄고, 먼저 면과 남은 면수만으로 1차 만테까레를 해줍니다. 이 과정의 목적은 두 가지입니다.

1. 면수 속 전분이 면에 달라붙으면서 자연스럽게 유화의 기반을 만들어주고,

2. 팬의 열기를 조금 가라앉혀서 치즈가 들어갔을 때 덩어리 지지 않도록 온도를 조절해 주는 것이죠.

1차 만테까레를 마친 상태입니다.


9. 소스 넣고 2차 만테까레.

이제 면과 팬의 열기가 어느 정도 가라앉았을 때(그렇다고 미지근하면 안 됩니다), 준비해 둔 치즈 페이스트를 넣고 2차 만테까레를 해줍니다.

여기서 반드시 명심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절대 다시 불을 켜지 마세요.​

혹시 치즈가 덜 녹은 것 같다고 가열을 시도하는 순간, 소스는 되살릴 수 없는 길로 가버립니다. 왜냐하면 치즈 속 단백질과 지방은 일정 온도 이상에서 급격히 분리되기 때문입니다. 즉, 부드럽게 녹아야 할 치즈가 열을 받으면 서로 엉겨 붙으며 덩어리 진 치즈 뭉치로 변해버리는 것이죠.

따라서 이 과정에서 소스가 이미 덩어리 졌다? 그렇다면 솔직히 말씀드려야 합니다. 겸허히 실패를 받아들이시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성공하면 사진처럼 물기 없이 실키하고 크리미 한 치즈 소스가 면에 고르게 달라붙어 있게 됩니다. 소스는 흘러내리지 않고, 면을 감싸듯 매끈하게 코팅된 상태가 이상적이지요. 저도 이번에는 치즈가 조금 덜 곱게 갈려서 아주 작은 치즈알갱이가 보이긴 하지만, 이 정도는 크게 문제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집에서 만드는 카치오 에 페페의 자연스러운 개성이라 할 수도 있죠.


10. 마무리

이제 접시에 담아내면, 로마 현지에서도 바로 통할 정통 카치오 에 페페가 완성됩니다!


페코리노 로마노 특유의 향과 짠기가 다소 낯설게 느껴지실 수도 있지만, 한 입 드셔보시면 곧 또 다른 깊은 매력을 발견하게 되실 겁니다. 다만 카치오 에 페페의 가장 큰 단점은, 한 번 실패하면 되돌릴 수도, 타협할 수도 없다는 점이죠. 결국 완성도를 좌우하는 건 칼 같은 타이밍, 농도, 온도, 간 조절이기에 제법 높은 집중력이 필요한 파스타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저 역시 두 번이나 실패 끝에 성공했습니다. 여러분도 충분히 하실 수 있습니다.

보나 페티(Buon appeti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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