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슬리 엔초비 버터 파스타
안녕하세요.
원래는 정통 로마 파스타 레시피를 이어서 소개하려 했지만, 이번에는 조금 특별한 메뉴를 준비했습니다. 새로 들여온 재료들이 예쁘게 빛나서, 사진 찍기 좋은 날이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오늘은 제가 평소 즐겨 만드는
‘궁극의 오일 파스타’ 레시피를 공유하려 합니다.
오일 파스타라고 하면 대부분 알리오 올리오 에 페페론치노(Aglio e Olio e Peperoncino)를 떠올리실 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접하는 많은 오일 파스타가 사실 이 레시피의 변형이지요. 오늘 소개할 파스타 역시, Aglio e Olio e Peperoncino를 제 취향대로 변형한 버전입니다.
이름하여 파슬리 엔초비 버터 파스타,
Spaghetti al Prezzemolo e Acciughe al Burro.
파슬리 파스타라고 하면, 아무래도 많은 분들이 아메리칸 셰프 스타일의 파슬리 파스타를 떠올리실 겁니다. 저 역시 그 레시피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제 방식대로 해석해 밸런스를 다듬고 풍미를 한층 더 깊게 살린 파스타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아메리칸 셰프의 파슬리 파스타와 제 버전의 가장 큰 차이는 재료의 다양성과 테크닉, 그리고 감성의 방향입니다.
저는 앤초비, 케이퍼, 레몬 껍질, 페코리노 치즈 등 다양한 재료를 단계별로 더해 풍미를 확장했습니다. 또한 면수와 버터를 활용한 다단계 만테까레로 소스를 완벽하게 유화시켜, 오일이 겉돌지 않고 부드럽고 크리미 하면서도 신선한 맛이 살아나도록 했습니다.
아메리칸 셰프의 파슬리 파스타는 미국식 감성에 가깝습니다. 인스턴트처럼 빠르고 간단하게 ‘휘리릭’ 완성할 수 있어 가벼운 한 끼로 좋지만, 유화가 덜 되어 오일감이 그대로 남는 편입니다. 반면 제 버전은 이탈리아식 감성을 담았습니다. 재료와 조리 순서를 세심하게 구분하고, 다단계 만테까레를 거쳐 완벽히 유화된 크리미 한 소스를 완성합니다. 그 과정에서 앤초비의 잡내는 사라지고, 레몬의 산미와 파슬리의 신선한 향이 그대로 살아납니다.
사진 속 아메리칸 셰프의 파스타는 확실히 오일감이 느껴집니다.
나중에 제 파스타와 비교해 보시면, 그 차이를 분명히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정성의 정도나 재료의 차이가 궁극적인 맛을 결정한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사람마다 취향은 다르니까요. 저는 단지, 어떤 스타일의 감성을 담았는가에 차이를 두었을 뿐입니다.
자, 각설하고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지금부터 제 스타일의 파슬리 엔초비 버터 파스타 레시피를 소개하겠습니다.
사진과 함께 보시면, 조리 과정 하나하나가 왜 중요한지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스파게티 200g
엑스트라버진 올리브 오일
무염 버터 한 덩이
앤초비 필레 4 덩이
케이퍼 15알
다진 마늘 8알
레몬
이탈리안 파슬리
페코리노 로마노 치즈
페퍼론치노
소금, 후추
사진에는 깜빡하고 마늘과 페퍼론치노를 빼먹었네요 ㅠ
너무 잘게 다질 필요는 없으며 저는 10줄기 정도 사용한 듯합니다. 파슬리는 줄기에도 향이 좋지만 식감을 방해할 수 있기에 과감히 떼어냅니다.
(남은 파슬리 줄기는 따로 얼려서 모아두었다 다른 음식의 육수를 낼 때 사용하시면 됩니다.)
오일 파스타에는 보통 ‘이탈리안 파슬리(Flat-leaf parsley)’를 사용합니다. 우리가 흔히 마트에서 접하는 곱슬한 형태의 컬리 파슬리(Curly parsley)보다 향이 깊고, 허브 특유의 풀향이 부드럽게 퍼지기 때문입니다.
컬리 파슬리는 장식용으로는 좋지만, 잎 표면이 울퉁불퉁해 오일과 잘 어우러지지 않고 식감이 다소 거칠게 남습니다. 반면 이탈리안 파슬리는 넓고 매끈한 잎 덕분에 오일과 잘 섞이며, 열을 가했을 때도 향이 살아나 파스타 전체에 균일하게 퍼집니다.
특히 이번 레시피처럼 케이퍼·레몬·앤초비 등 향이 강한 재료와 함께 사용할 때, 이탈리안 파슬리의 은은하면서도 선명한 허브향이 전체 맛을 정리해 주는 ‘마무리 터치’ 역할을 합니다.
레몬 껍질은 강판에 곱게 갈아 넣는 방법도 있지만, 어차피 레몬즙이 들어가 풍미는 충분합니다.
저는 오히려 잘게 다져서 사용해, 씹을 때마다 살짝씩 퍼지는 상큼함을 살립니다.
이는 취향에 따라 선택하시면 됩니다.
양은 레몬 반 개 혹은 1/3개 분량 사용하시면 됩니다.
다만 레몬 껍질을 다질 때는 흰색 속살(알베도)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얇게 벗기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흰 부분은 쓴맛이 강해 전체 맛을 해칠 수 있으니 주의하세요.
사진은 레몬 반 개 정도 분량을 짠 것인데 큰 숟가락으로 한 스푼 정도만 사용하시면 됩니다.
이때 불은 절대 강하게 올리지 마세요.
불이 너무 세면 패페론치노가 쉽게 타고, 특히 마늘이 노릇해질수록 감칠맛은 강해지지만 동시에 쓴맛이 생기고 특유의 알싸한 향이 줄어듭니다.
약불에서 천천히 향을 우려내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마늘은 노릇하게 굽는 것이 아니라, 약간 콩피(confit)한다는 느낌으로 조리하면 됩니다.
약불에서 오일 속에 천천히 익혀 마늘 향을 부드럽게 우려내는 것이 핵심입니다.
제가 사용한 올리브오일은 프란토이 쿠트레라 프리모 DOP(Frantoi Cutrera Primo DOP)입니다.
이 오일은 이탈리아 시칠리아 남동부, 라구사(Ragusa) 근교의 키아라몬테 굴피(Chiaramonte Gulfi)라는 작은 마을에서 만들어집니다. 이곳은 ‘몬티 이블레이(Monti Iblei)’라 불리는 언덕 지대로, 올리브 재배에 최적의 기후와 토양을 지닌 지역입니다. 프란토이 쿠트레라 가문은 1906년부터 이 땅에서 올리브를 재배하고 오일을 짜내며, 세대를 이어온 장인 정신을 지금까지 지켜오고 있습니다.
프리모 DOP에 사용되는 올리브 품종은 시칠리아 토착종인 톤다 이블레아(Tonda Iblea)입니다. 이 품종은 신선하게 짜냈을 때 녹색 토마토와 허브 향이 강하게 퍼지고, 은은한 쓴맛과 매콤함이 뒤따라오는 것이 특징입니다. 덕분에 파스타에 사용할 경우, 오일 자체만으로도 풍부한 향과 깊이를 더해줍니다.
또한 이 오일은 DOP(원산지 보호 명칭) 인증을 받았습니다. 이는 원산지, 품종, 생산 방식까지 엄격히 관리된 고품질 제품에만 부여되는 이탈리아의 품질 보증입니다. 덕분에 사용하는 순간부터 맛과 향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죠. 무엇보다, 프란토이 쿠트레라 프리모 DOP는 세계 각지의 국제 올리브유 대회에서 수많은 상을 받아 그 품질을 증명해 왔습니다.
아시다시피 이탈리아 요리의 핵심은 ‘재료’에 있습니다.
좋은 재료를 사용할수록 요리의 퀄리티는 눈에 띄게 상승하죠.
앤초비는 넣자마자 부드럽게 풀어주어, 오일 속에 감칠맛이 스며들도록 합니다.
천천히 풀어주면서 익히면
사진처럼 앤초비는 이미 오일 속에 완전히 풀어져 감칠맛을 더하고, 마늘은 갈변 없이 부드럽게 콩피 된 상태를 유지합니다. 페퍼론치노 역시 타지 않고 은은한 매운 향만 배어 있는, 조리 과정에서 가장 이상적인 시점입니다.
이번에는 바닷물보다 살짝 덜 짭짤한 정도로만 소금을 넣어 간을 맞췄습니다.
면수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하고, 앤초비·케이퍼·치즈에도 충분한 염도가 있기 때문에, 평소 알리오 올리오를 만들 때보다 소금 양을 줄여 염도를 낮췄습니다.
항상 강조하지만, 파스타 면수에 간을 하는 것은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과정입니다.
면에 기본 간이 되어 있지 않으면, 소스와 면이 따로 놀아 절대로 맛있는 파스타가 완성되지 않습니다.
실제로 이탈리아 셰프들은 “면수의 간이 요리 맛의 절반을 결정한다”라고 말합니다.
그만큼 면수의 염도는 파스타 완성도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제가 사용한 파스타는 젠틸레(Gentile) 사의 기타라(Chitarra) 면입니다.
어쩌면 제 파스타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젠틸레는 이탈리아 캄파니아 주 그라냐노(Gragnano)에서 1876년부터 전통 방식으로 파스타를 만들어온 장인 브랜드로, ‘파스타의 성지’라 불리는 그라냐노의 명성을 대표합니다.
기타라 면은 네모난 단면을 가진 특수한 형태로, 표면에 미세한 거칠기가 있어 소스가 훨씬 잘 달라붙습니다. 저는 특히 젠틸레의 기타라를 좋아하는데, 저온 장시간 건조 방식으로 만들어져 밀의 풍미가 깊고, 씹을 때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 식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전통 청동 다이(copper die)로 압출해 표면이 거칠고 다공성이 높아, 오일 파스타처럼 가벼운 소스에서도 완벽한 유화를 만들어줍니다.
특히, 이런 면수와 유화가 중요한 오일 파스타에서는 절대 테프론 공정으로 만든 매끈한 면을 사용하면 안 됩니다.
테프론 면은 표면이 매끄러워 소스가 쉽게 흘러내리고, 유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반면, 브론즈(청동) 다이로 뽑아낸 면은 표면에 미세한 거칠기가 있어 소스가 고르게 달라붙으며, 면수의 전분이 잘 배어 나와 유화가 훨씬 수월해집니다.
결국, 좋은 재료와 소스가 만나도 면이 밭쳐주지 않으면 완성도가 떨어집니다.
한 번에 많이 넣기보다, 여러 번 나누어 넣어야 오일과 면수가 잘 섞이며 유화가 안정적으로 진행됩니다.
그러면서 오일의 온도를 서서히 높여, 결국 끓는점에 도달하도록 해주세요.
이렇게 하면 오일과 면수의 전분이 완전히 결합해 부드럽고 크리미 한 소스를 만들어줍니다.
저는 면수를 세 국자 정도 넣었고, 사용한 젠틸레 기타라면의 총 조리 시간이 12분이기에, 알 덴테에 맞추기 위해 약 7분 즈음에 팬으로 옮겼습니다. 적혀있는 면의 조리시간의 5분 정도 전(알덴테) 7분 정도 전(벤코토)에 넣어주시면 됩니다.
이 과정에서 면이 익으면서 전분이 최대한 배어 나와, 소스가 더욱 걸쭉하고 크리미 하게 유화됩니다.
대략 이 정도의 농도가 생겼을 때 (면을 옮기고 2분 끓인 뒤)
레몬껍질과 케이퍼는 너무 오래 끓이면 특유의 산뜻한 향과 식감이 손상될 수 있고, 반대로 너무 덜 익히면 풋내가 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1분 정도가 가장 이상적인 시간입니다. 이 짧은 시간 동안, 레몬의 상큼한 향과 케이퍼의 감칠맛이 소스 속으로 은은하게 스며듭니다.
파슬리는 끓이는 순간 수축하며 거칠고 꺼끌한 식감으로 변하고, 신선한 향이 사라집니다.
버터 역시 가열하면 유화가 어렵고, 본래의 깊고 부드러운 풍미가 줄어들어 단순히 ‘고소한 맛’으로만 남게 됩니다.
따라서 불을 끈 상태에서 넣어야, 파슬리의 상큼한 향과 버터의 크리미 한 질감이 그대로 살아납니다.
제가 사용한 버터는 애쉬레 버터(Beurre d’Échiré AOP)입니다. 한국에서 구할 수 있는 버터 중에서는 풍미 면에서 단연 손꼽히는 제품이라 생각합니다.
프랑스 서부 푸아투-샤랑트(Poitou-Charentes) 지역의 애쉬레 마을에서 전통 방식으로 생산되며, AOP(원산지 명칭 보호) 인증을 받은 버터입니다. 이 인증은 원유 생산부터 가공, 숙성까지 모든 과정을 해당 지역에서, 엄격한 전통 기준에 맞춰 진행해야만 받을 수 있습니다.
애쉬레 버터는 특유의 은은한 발효 향, 깊고 진한 고소함, 부드럽고 크리미 한 질감은 다른 버터와 확연히 차별화됩니다. 특히 오일 파스타의 만테까레 단계에서 넣으면, 소스가 완벽하게 유화되며 질감이 한층 매끄러워지고, 입안에서 오랫동안 지속되는 고급스러운 풍미를 더해줍니다.
이때 레몬즙과 올리브오일이 소스의 온도를 살짝 낮추며, 레몬즙의 수분과 올리브오일의 기름이 기존의 버터·파슬리·앤초비 소스와 더욱 끈덕하게 융화됩니다.
그러는 순간 주방 가득 엄청난 향이 퍼지고, 앤초비의 비릿한 향은 감쪽같이 사라진 채 모든 맛이 깊은 감칠맛으로 변해 하나의 완벽한 소스로 탄생합니다.
마지막에 더해준 덕분에 레몬과 올리브오일의 신선한 향은 그대로 살아 있어, 한 입 머금는 순간 코와 혀가 동시에 깨어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소스의 농도는 사진에서 보시듯 뽀얗고 크리미 합니다.
아메리칸 셰프의 파스타보다 오히려 더 많은 기름이 들어갔을지도 모르지만, 질감은 확연히 다릅니다.
오일이 겉돌지 않고 면과 완벽하게 유화되어, 한 가닥 한 가닥에 부드러운 소스가 촘촘히 감싸고 있죠.
이 파스타는 산뜻한 허브 향과 진한 소스의 풍미가 뚜렷해, 개성이 강한 페코리노 로마노 치즈와도 완벽한 밸런스를 이룹니다.
한 입 머금으면 상큼한 레몬과 신선한 파슬리 향, 고소한 버터와 앤초비의 깊은 감칠맛이 차례로 밀려와, 입안 가득 궁극의 오일 파스타를 경험하게 됩니다.
사실 재료의 특별함을 제외하면, 조리 방식은 기존 파스타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훌륭한 재료들이 만나 만들어내는 시너지는 결코 가볍게 볼 수 없습니다.
좋은 재료가 줄 수 있는 깊이와 풍미를 한 번 경험해 보시면, 왜 제가 이 조합을 ‘궁극의 오일 파스타’라 부르는지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여러분도 꼭 한 번 시도해 보세요!
※ 본 글은 어떠한 제품 광고나 협찬도 포함하지 않으며, 소개된 모든 재료는 전부 제가 직접 구매하여 사용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