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르보나라의 아버지 그리치아 파스타 레시피

로마 정통 파스타 레시피

by 서도운

그리치아는 흔히 로마 4대 파스타 가운데 하나로 꼽히며, 위치상으로는 카치오 에 페페와 카르보나라, 아마트리치아나 사이 어딘가에 놓이는 과도기적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카치오 에 페페가 치즈와 후추만으로 완성되는 극도로 단순한 형태라면, 그리치아는 여기에 구안치알레(관찰레, 돼지 볼살 베이컨)라는 재료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지점입니다. 이로써 치즈 외에 기름과 풍미의 새로운 축이 더해지며, 맛의 깊이가 크게 달라지죠.


역사적으로는 그리치아가 나중에 카르보나라와 아마트리치아나로 이어지는 모태가 되었고, 그래서 종종 “아마트리치아나 비앙코(Amatriciana bianco)”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여기서 비앙코란 ‘하얀색’을 뜻하는데, 토마토가 들어가지 않은 상태의 아마트리치아나라는 의미죠. 즉, 토마토가 합류하면 아마트리치아나가 되고, 달걀이 합류하면 카르보나라가 되는 셈입니다.


이렇게 보면 그리치아는 단순한 레시피를 넘어, 로마 전통 파스타의 계보 속에서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요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바로 재료부터 설명드리겠습니다!.


재료

1. 관찰레 80g

2. 페코리노 로마노 치즈 60g

3. 파스타 면 150g

4. 소금

5. 후추


이번 그리치아의 재료는 이전에 소개드린 카치오 에 페페와 거의 동일합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이번에는 관찰레라는 중요한 재료가 새롭게 합류한다는 점이죠. 이 재료 하나가 더해지면서 풍미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확장됩니다.

관찰레는 돼지 볼살을 소금과 향신료로 절여 숙성한 이탈리아 전통 식재료로, 특유의 기름과 짙은 풍미가 파스타 소스의 근간이 됩니다. 한국에서도 몇몇 수입 식재료 상점이나 온라인몰에서 구입할 수 있으니, 정통 로마 파스타를 직접 재현해보고 싶으시다면 한 번 꼭 찾아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치즈는 제가 늘 애용하는 기데티(Ghidetti) 페코리노 로마노를 사용했습니다. 특유의 짭짤함과 묵직한 풍미가 파스타의 뼈대를 단단히 잡아줍니다.

파스타 면은 이번에 가로팔로(Garofalo) 제품을 써보았습니다. 마트에서도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고 가격도 부담이 적은 편인데, 실제로 삶아보니 표면 질감이 준수하고 전분감은 부족하지만 나름 안정적이었습니다. 맛은 전반적으로 순한 데체코(De Cecco) 면과 유사했는데, 가성비 면으로는 충분히 데일리로 즐길 수 있는 선택지라 생각됩니다.



레시피


1. 물 끓이기

언제나 그렇듯, 파스타의 첫 단계는 면수입니다.

제가 늘 강조드리는 부분인데요, 파스타의 맛은 이 면수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물을 넉넉하게 잡아 끓인 뒤, 반드시 소금을 넣어 간을 맞춰주세요.

이때 중요한 포인트는 “바닷물보다 살짝 싱거운 정도”라는 기준입니다.

바닷물처럼 짜버리면 치즈와 구안치알레의 염도가 더해졌을 때 균형이 깨지고, 반대로 싱겁게 잡으면 파스타 본연의 감칠맛이 살아나지 않죠.

면수는 단순히 파스타를 삶는 용도가 아니라, 나중에 소스를 유화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그러니 간은 절대 잊지 마시고, ‘면수는 소스의 일부’라는 사실을 꼭 기억해 두세요.


2. 후추 가열하기

그리치아에서 또 하나 중요한 포인트는 후추입니다.

후추는 단순한 양념이 아니라, 치즈와 관찰레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합니다.

굵게 빻은 후추를 팬에 넣고 은은하게 가열해 주세요.

이 과정에서 후추의 깊은 향과 매운 기운이 활성화되며, 나중에 파스타 전체에 은은하게 퍼지는 풍미를 만들어 줍니다.

주의할 점은 태우지 않는 것입니다.

너무 오래 가열하면 후추 특유의 날카로운 향이 사라지고, 쓴맛이 올라오기 때문에 살짝 볶아 향을 피워내는 정도로만 해주시면 됩니다.


3. 치즈갈기

이번에도 카치오 에 페페 때 말씀드린 것처럼, 치즈는 반드시 곱고 균일한 가루 상태로 준비해 주셔야 합니다.

핸드 그라인더로만 갈면 입자가 굵게 나오기 때문에, 그대로 쓰면 물에 잘 녹지 않고 서로 엉켜서 질긴 치즈 덩이가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갈아낸 뒤 반드시 추가로 부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때 손으로 비벼 부수는 방법을 쓰실 수 있는데,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절대로 힘을 줘서 뭉치게 만들면 안 됩니다.
손의 온도가 치즈에 전해지면 지방이 녹아버려 쉽게 덩어리 지고 질척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손끝으로 살살 흩뜨리듯 가볍게, 그리고 빠르게 비벼 주셔야 합니다.

이 과정을 거치면 완벽하게 고운 가루 형태가 되어, 면수에 섞였을 때 매끈하게 녹아들며 페이스트화가 안정적으로 이루어집니다.


4. 후추 치즈 페이스트 만들기

곱게 갈아둔 페코리노 로마노 치즈에 약 70도 정도의 따뜻한 물을 아주 조금씩 나누어 부어주며 섞어줍니다.

이때 목표는 요거트와 비슷한 질감을 가진 치즈 페이스트를 만드는 것입니다.

절대로 끓는 물을 사용하지 마세요. 치즈가 과열되면 단백질이 뭉쳐 덩어리 져버리고, 다시는 되돌릴 수 없습니다.

물을 넣는 과정에서 치즈가 뭉쳐버리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묽어져 버린다면 그 순간은 실패입니다. 이 경우에는 처음부터 치즈를 다시 갈아 준비해야 합니다.

만약 적절한 점도의 치즈 페이스트가 완성되었다면, 이전 단계에서 가열해 둔 후추를 이 페이스트와 섞어 주세요.

그러면 치즈의 짭짤함과 크리미함, 후추의 향과 매운 기운이 어우러진 완전한 치즈 소스가 준비됩니다.


5. 면 삶기와 관찰레 굽기

효율적인 조리를 위해서는 면을 삶는 과정과 관찰레 굽기를 동시에 진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먼저, 파스타 면은 포장지에 적힌 시간에서 약 2분 전까지만 삶아주세요.
알 덴테 상태로 마무리해야 이후 소스와 합쳐지는 과정에서 딱 맞는 익힘이 됩니다.

한편, 옆에서는 관찰레를 준비합니다.

관찰레는 지방 함량이 매우 높고, 바로 이 지방이 파스타 풍미의 핵심을 좌우합니다. 따라서 단순히 익히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의 지방을 빼내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불은 중불과 약불을 번갈아가며 조절해 주세요.

기름이 서서히 빠져나오면서 관찰레가 바삭하게 튀겨지듯 구워져야 합니다.

너무 센 불에 급히 구우면 겉만 타고 속은 기름이 그대로 남아버리며, 반대로 약한 불만 쓰면 충분히 기름이 빠져나오지 않아 풍미가 떨어집니다.

결국 이 단계는 불 조절이 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관찰레의 겉은 바삭하게, 속은 고소한 향을 품은 채 적절히 익었을 때 비로소 완성입니다.

잘 구워진 관찰레는 짙은 갈색을 띠며 겉이 빠삭한 식감을 보여야 합니다. 따로 빼놓아 주세요.​

팬에는 어느새 노랗고 투명한 라드(지방 기름)가 고여 있을 텐데, 이 기름이 바로 그리치아의 핵심 소스로 쓰이게 됩니다.


이때 팬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은 까만 가루들이 섞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관찰레 표면에 묻어 있던 향신료나 껍질 부분이 타면서 생긴 것으로, 거슬린다면 관찰레의 껍질을 미리 제거하고 구우시면 보다 깔끔한 기름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다만 저는 이 작은 불순물조차도 하나의 풍미의 층위라고 생각합니다. 특유의 구수한 향과 깊이를 더해주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그대로 두고 조리에 활용하는 편입니다.


6. 면 팬에서 마무리하기

이제 팬에 남겨둔 관찰레 라드에 면수를 두세 국자 정도 부어줍니다. 이때 라드와 면수가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유화가 시작되죠. 곧이어 익힘이 2분 정도 남은 파스타 면을 팬으로 옮겨와 남은 시간을 라드와 함께 졸여주듯 마저 익혀줍니다.

카치오 에 페페와 그리치아의 중요한 공통점 중 하나는 바로 소스의 질감입니다.


면수를 넉넉히 잡아 국물처럼 주르륵 흐르는 형태는 지양해야 하고, 타이트하게 농도를 맞춰 재료와 면에 밀착된 상태가 이상적입니다. 라드와 면수의 비율, 그리고 졸이는 시간에서 완성도의 차이가 드러나니 집중할 부분입니다.


7. 1차 만테까레

사진에서처럼 팬에 면수가 조금 남아 있고, 면이 알맞게 익었을 때 불을 끄고 첫 번째 만테까레(버무림)를 해줍니다.

이 단계는 단순히 섞는 작업이 아니라 중요한 두 가지 역할을 합니다.


1. 면수의 유화를 본격적으로 활성화하여 라드와 면수, 면 자체가 하나로 섞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2. 팬과 면을 살짝 식혀주는 과정으로서, 이후 치즈 소스를 넣을 때 과열로 인해 치즈가 뭉치거나 덩어리 지는 것을 막아줍니다.​


즉, 이 1차 만테까레는 본격적으로 치즈를 투입하기 위한 안정화 작업이자, 최종 소스를 완벽하게 만들기 위한 준비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8. 2차 만테까레

팬과 면이 적당히 식어 손으로 느꼈을 때 너무 뜨겁지 않은 정도가 되면, 미리 준비해 둔 치즈 소스를 넣어줍니다.

이제 다시 한번 만테까레(버무림)를 해주는데, 이 과정이 그리치아의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치즈 소스가 면수와 라드에 완전히 섞이며, 면을 감싸는 크리미 하면서도 매끄러운 질감이 완성됩니다.

이때는 절대 조급하게 저어서는 안 되고, 부드럽고 일정한 리듬으로 저어주어야 소스가 뭉치지 않고 고르게 코팅됩니다.


결과적으로 파스타 전체가 윤기 있게 감싸질 때까지 차분히 버무려주면, 그리치아 특유의 진득하고도 정갈한 풍미가 살아납니다.

주의사항

이 과정에서 가장 흔히 하는 실수가 바로 치즈가 덩어리 지는 경우입니다. 혹시라도 치즈가 잘 녹지 않는다고 해서 물을 더 넣거나 팬을 다시 가열하는 행동은 절대 금물입니다.

그렇게 하면 소스의 질감은 더욱 묽어지고, 치즈는 오히려 더 심하게 뭉쳐버립니다.

만약 불행히도 그런 상황이 오더라도, 그 상태에서 최대한 부드럽게 섞어주는 수밖에 없습니다.

처음부터 치즈를 곱게 갈아 준비하는 것과, 팬과 면을 충분히 식힌 상태에서 섞는 과정이 바로 그리치아 성공의 열쇠입니다.


9. 플레이팅 및 마무리

이제 모든 과정이 끝났습니다.

윤기 있게 버무려진 파스타를 접시에 옮겨 담고, 아까 따로 빼두었던 구운 관찰레를 위에 올려 토핑으로 얹어줍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풍미를 머금은 관찰레가 크리미 한 소스와 대비를 이루며, 그리치아 특유의 단순하면서도 깊은 매력을 완성해 줍니다.


마지막으로 원한다면 후추를 살짝 갈아 뿌려 마무리해도 좋습니다.

이 순간, 한 접시의 정통 로마 파스타 그리치아가 완성됩니다.


직접 드셔보시면 카치오 에 페페의 담백하고 짭짤한 맛 위에, 숙성된 돼지 지방에서만 느낄 수 있는 깊은 감칠맛과 고소함, 그리고 특유의 꼬릿 한 향이 더해져 한층 풍성한 풍미를 즐기실 수 있을 겁니다.

물론 그리치아는 다소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파스타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이 점이 흥미롭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한 치즈와 후추의 세계에서 벗어나, 구체적인 풍미가 더해지면서 카르보나라와 아마트리치아나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파스타이기 때문이죠.


여러분도 기회가 된다면 꼭 한 번 도전해 보시길 권합니다.

정통 로마의 맛을 직접 경험해 보실 수 있을 거예요.


Buon appeti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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