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애들은..
요즘 아이들을 둔 부모님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아이들의 상상력, 사고력, 문해력, 그리고 주의 집중력입니다.
식당에 가보면 아이들 대부분이 작은 스마트폰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죠. 성장기 내내 틱톡, 숏츠, 릴스 같은 자극적이고 단순화된 정보에 노출되다 보면, 점점 깊이 있는 사고나 상상이 어려워집니다. 문해력과 집중력의 저하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릅니다.
초등학교 교사이신 저희 어머니는 자주 말씀하십니다. 요즘 아이들은 한자가 섞인 단어를 이해하기 힘들어하고, 중의적 표현이나 복합적인 감정을 담은 문장을 소화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요. 대신 줄임말이나 자극적인 밈을 흉내 내고, 책을 거의 읽지 않으며, 영화나 애니메이션조차 '길다'며 집중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참 무섭지 않으신가요?
이런 문제는 유아나 어린이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제 막 성인이 된 이들 사이에서도 같은 현상이 반복되고 있죠. 혼자 사고하는 능력, 상상하는 습관, 객관적인 판단력, 사회지능까지 약해지고, 지식의 양극화는 점점 극심해지고 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너무 쉽게 선동당하고, 너무 손쉽게 믿어버리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감히 제가 상상력이 풍부하거나 사고력이 뛰어나다고 장담하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나만의 세계관을 구축한 소설을 쓰고, 철학적 사유와 감정을 담은 에세이를 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능력은 선천적인 것일까요? 아니면 후천적으로 길러진 것일까요?
지금 인서울 법학과를 졸업한 스물일곱 살, 요즘아이들인 저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시겠어요?
어릴 적 저는, 참 산만한 아이였어요. 장난기도 많고, 활동량도 어찌나 많았던지 하루 종일 뛰어다니느라 발이 까지고, 무릎엔 늘 멍이 들어 있었어요. ADHD를 의심할 정도로 산만했지만, 그런 나를 두고 부모님은 걱정만 하진 않으셨죠.
오히려 그 산만함을 '길들일 수 있는 감각'이라 여긴 듯했나 봐요.
책 읽기 연습은 그 첫걸음이었어요.
처음엔 당연히 쉽지 않았죠.
가만히 앉아 글자를 보는 일보다, 뛰어노는 게 훨씬 좋았던 나는 책을 거들떠보지도 않았어요.
그런데도 부모님은 매일 밤, 번갈아가며 내 옆에 누워 전래동화, 그림책, 짧은 이야기를 꼭 세 권씩 읽어주셨죠. 반복된 이 시간들은, 결국 내 안의 무언가를 조용히 깨우기 시작했습니다.
그 무언가는, 제가 정말 좋아하는 것에 반응했습니다.
저는 공룡에 유난히 빠져들었고, 공룡 백과사전을 들여다보며 수백 종의 공룡 이름을 외우고, 특징을 구분하고, 시대를 나누며 읽고 또 읽었지요. 책은 다 닳도록 손때가 묻었고, 어느새 나는 공룡 도감이 펼치는 상상의 세계 안에서 놀고 있었답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은 '집중력이 없다'는 말은 절반의 진실일 뿐일지도 몰라요.
흥미가 생긴 분야에 대해서는, 놀라운 몰입력을 보여주죠.
단지 그 문을 열어주는 환경과 시간이 필요한 것뿐입니다.
물론 저도 식당 같은 곳에선 산만하고 시끄럽게 굴었어요. 어딜 가서 든 눈치 받고 혼나기 일쑤였죠.
하지만 엄격한 엄마 덕분에, 적어도 밖에서는 제법 얌전한 아이로 행동해야 했습니다. 혼이 나기도 많이 나서, ‘경계’를 배운 셈이었죠. 그리고 유아기는 생각보다 짧지만 정말 중요해요. 남들의 눈치보단 오롯이 아이에게 집중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책을 조금 읽게 되었다고 해서, 산만함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습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 친구들과의 관계가 생기자, 저는 다시 책 보다 노는 걸 더 좋아하는 아이가 되었죠.
그런 저에게 또 하나의 ‘자극’이 있었으니, 바로 형이었습니다.
얌전하고 조용한 성격의 형은 늘 전교 1, 2등을 다투는 모범생이었고, 과학과 수학에 유난히 강한 재능을 가진 학생이었어요.
부모님은 형을 무척 아끼셨고, 저는 자연스레 그에 대한 경쟁심과 동경을 품게 되었습니다.
형을 따라잡고 싶었고, 그래서 저도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제 앞에 앉아, 문제를 함께 풀고, 틀린 곳을 바로잡아 주셨습니다.
혹시 어머니가 시간적으로 여유로웠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그분은 당시에도 교사로 일하셨고, 외식을 거의 하지 않으며 직장과 집안일을 모두 책임지던 성실한 분이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저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절대 놓지 않으셨습니다.
특히 어머니는 저의 성격을 통제하려 하기보다는, 장점을 살리려 노력하셨습니다.
클래식 음악을 매일 틀어주셨고, 무료 정기 연주회에도 데려가 주셨습니다.
영화와 애니메이션도 마음껏 볼 수 있게 해 주셨죠.
또 피아노, 미술, 수학, 영어 학원 등 다양한 학원을 경험하게 해 주셨고,
제가 흥미가 없거나 재능이 없다고 판단되면 과감하게 중단해 주셨습니다.
덕분에 저는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분야를 탐색하며, 나중엔 그림도 곧잘 그리고,
기타, 플루트, 피아노를 다룰 줄 아는 취미까지 갖게 되었습니다.
블록, 레고, 과학상자 같은 조립 키트도 자주 접하며
만드는 것, 고치는 것, 설명서를 따라가는 즐거움을 익혔습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는 형을 따라,
학교 발명영재, 교육대 과학영재, 과학고 영재반, 생명과학 특별반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본래 활달하고 뛰어노는 걸 좋아하는 아이였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은 그 ‘움직이는 에너지’를 통제하려 하기보다,
‘호기심’이라는 방향으로 유도해 주셨습니다.
사실 그것은 엄청난 노동이었을 겁니다.
지방의 작은 군 단위 시골에 살며, 넉넉하지 않은 형편,
그리고 직장까지 병행하면서 아이에게 이토록 많은 것을 경험하게 해주는 일.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제가 가진 지금의 감각과 글쓰기, 상상력과 사고력의 뿌리는 어쩌면,
그 시절 “해보게 해 주신 모든 것” 안에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중학생이 되었을 무렵, 제게 작은 위기이자 큰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그 시기, 친구들 대부분이 하나둘 스마트폰을 갖기 시작했죠.
처음엔 단순한 소유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카톡이 안 되고, 게임을 못 하고, 단톡방에도 못 들어가는 저는
급속히 '소외된 아이'가 되어갔습니다.
울고불고 떼를 써봐도 소용없었습니다.
부모님은 단호하셨고,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절대 휴대폰을 주지 않겠다고 못 박으셨습니다.
결국 저는 중학교 내내
만화책을 읽고, 레고 블록을 조립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당시에는 그게 너무 억울했고, 불공평하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결정이 제 인생에서 가장 탁월한 선택 중 하나였다고 생각합니다.
부모님, 특히 어머니는 도덕적 기준이 아주 명확한 분이셨습니다.
작은 거짓말이라도 하면 내복 바람으로 바깥에 쫓겨났고,
말대꾸나 반항은 통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항상 제 편이던 아버지마저도, 그런 순간엔 단호하게 저를 꾸짖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이제껏 과학 영재 과정을 밟아오던 저는 당연하듯 이과를 선택했습니다.
형을 따라 나아가던 길이었고, 나름 익숙한 루트였으니까요.
하지만 내내 마음속에 의문이 맴돌았습니다.
“나는 정말 이과 체질일까?”
과학 영재 과정을 이수하면서도 물리는 지독히 어려웠고,
그에 반해 생명과학은 너무도 재미있었습니다. 특히 수학에 아주 재능이 없었죠.
게다가 각종 적성 검사 결과는 모두 문과 계열로 쏠려 있었습니다.
정체성의 혼돈.
어쩌면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진지하게 던진 질문이었습니다.
그 고민을 부모님께 털어놓자, 놀랍게도
그 단호하고 엄격했던 부모님은 이번엔 단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제 결정을 존중해 주셨습니다.
결국 저는, 문과반으로 오기를 희망하던 친구와 자리를 바꿔 문과로 전향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이, 제 인생의 커다란 변곡점이 되었습니다.
5. 자유와 통제, 그 균형 안에서 자란 나
수학에 대한 부담이 사라지자,
말하기와 토론을 좋아하고 잘하던 저의 성향이 자연스럽게 살아났습니다.
문과 과목에서 좋은 성적을 받게 되었고,
모의법정, 토론 동아리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학생부 종합전형으로 인서울의 한 법학과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지금까지,
상상력과 사고력, 집중력을 무기로 살아왔습니다.
대학교에서는
수많은 동아리 활동, 또 학회장활동.
다양한 취향과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의 깊은 대화,
그리고 예술과 사유가 가득한 시간들이
저를 훨씬 더 넓은 인간으로 만들어주었습니다.
또한, 어린 시절 엄격했던 부모님의 영향 덕에
자연스럽게 웃어른에 대한 존중, 예의, 책임감도 배워나갔습니다.
지금의 저는,
음악을 듣고 연주회에 가며,
미술관과 박물관을 즐겨 찾고,
영화를 보며 평론하고,
가끔 그림도 그리고,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6개의 장르로 나뉜 글을 브런치에 연재하고 있는 작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어디 내놓을 만한 뛰어난 엘리트도 아니고,
그렇다고 얌전하고 공부만 하던 모범생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도덕적으로는 단단한 기준을 갖고 계시면서도,
진로와 경험만큼은 넓은 자유를 허락해 주신 부모님 덕분에,
제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한 번쯤 고민해보셨으면 합니다.
혹시 지금 너무 통제하고 있지는 않나요?
혹은 너무 방임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자녀에 대한 진짜 관심이, 조금 부족하진 않나요?
저희 부모님은
생각의 단일화를 막아주시면서도,
도덕적으로는 강하게 통제하고,
감정적으로는 섬세한 공감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제 선택을, 끝까지 믿어주셨습니다.
이 모든 건, 부모님의 헌신 덕분이었습니다.
“당신도 그런 부모가 될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다면,
저는 단호하게 “아니요, 저는 못합니다.”라고 대답할 거예요.
하지만, 그 가르침과 사랑을 기억하며 노력은 해볼 겁니다.
이제는 그 사랑과 헌신에
제가 보답해 드릴 차례인 것 같습니다.
그게 바로, 제가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니까요.
“어릴 적 받은 감각적 경험의 씨앗은 지금도 제 안에서 자랍니다.
그림을 그리고, 무대에 서고, 글을 쓰며
그때 받았던 사랑과 가능성을 지금도 조금씩 꺼내 쓰고 있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