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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출산은 없다-上

by LISA

# '안 가진 기간만큼 안 생긴다'


뭐 그리 엄청난 일을 하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으면서, 바쁜 부서에 있다는 핑계로 2년을 미뤘더니 정작 원할 때는 2년을 애태워야 했다. '안 가진 기간만큼 안 생긴다'는 속설은 현실이 됐다. 생리 주기가 불규칙했던 탓에 매달 한두번은 배란 초음파를 보러 직장 근처 산부인과에 들락날락했다. 다낭성 난소 증후군 증상이 있었던 터라 의사는 초반에 난임 병원을 권했지만 아직 자연적으로 해볼 만하다고 판단했던 나는 조금만 더 기다려 보겠다고 했고 의사는 그 생각을 존중해주었다. 그리고 예상보다 꽤 긴 시간이 흘러 산부인과 문턱이 닳을 때쯤에야 아기를 만날 수 있었다. 얼마나 기다렸던지, 보통은 임신 테스트기 두 줄을 보고 기뻐하는데 나는 산부인과에서 바로 소변검사로 확인했을 정도였다. 아기집을 본 순간부터 심장소리를 들을 때까지 과정 하나하나가 소중했다.


# 양수와 수중 분만


첫째의 태몽은 특이하게도 동물이나 과일 같은 게 아닌 물이었다. 여러가지로 심란해서 혼자 떠난 나트랑 여행 출발 하루 전, 아빠가 전화 와서는 "꿈에 네가 큰 호수 같은 물에 평온하게 벌러덩 눕더라"면서 불길하니 웬만하면 물놀이는 자중하라고 했다. 아빠의 걱정은 빗나가서, 그건 태몽이었다. 태몽의 영향인지 나는 책과 다큐를 뒤적거리다 갑자기 자연주의 출산, 그 중에서도 특히 수중 분만에 꽂혔다. 양수에서 열 달 있다가 나온 아이가 갑자기 공기와 맞닥뜨리는 것보다는 따뜻한 물을 통해 태어나면 충격이 덜하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생각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반은 잘한 일, 반은 무모한 일이었다.


수중 분만을 하는 대학병원은 시내에 두어 곳 있었고, 집에서 가까운 곳에 등록했다. '평화로운 출산 히프노버딩' 같은 교과서도 읽고, 남편과 같이 병원을 찾아 관련 수업도 들으면서 착착 준비가 되어가나 싶었지만 위기는 금방 찾아왔다. 초반부터 몸무게가 불어나는 것이 걱정됐던 나는 12주만 지나면 정말 안정기인 줄 알고 입덧도 없는 김에 바로 워킹머신을 샀다. 당시 부서 업무는 주로 콘텐츠를 모니터링하는 것이었는데, 프로그램을 보면서 걷다보니 힘든 줄도 모르고 한없이 걸은 게 화근이 됐다. 몇 주 되지 않아 양수가 샜고 결국 입원했다. 의사한테 혼난 것은 물론이고 태아의 생존 확률이 반반이라는 말까지 들은 후 병실에서 자책하며 매일 울었다. 화장실에 갈 때마다 더는 패드에 피가 안 비치길 기도하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 와중에 일이라도 안 하면 우울증에 걸릴 것 같아서 반쯤 누운 채로 노트북을 열고 닫았다. 다행히 몇 일 후, 양막이 아물었는지 퇴원할 수 있었다. 이후로 임신 기간에 다시는 설치지 않았다.


어렵게 얻은 아이인 만큼 바쁜 일상 속에서도 태교를 열심히 했다. 동화도 읽어주고, 노래도 불러주고, 틈날 때마다 말도 걸고, 시간이 빌 때면 클래식FM도 열심히 들었다. 하지만 좋지 않은 '이벤트'는 끝나지 않았다. 거의 막달이 됐을 때, 애를 이렇게 키워서 어떻게 자연주의 출산을 하냐며 나물만 먹으라고 구박하던 담당 의사가 갑자기 미국 연수를 떠났다. 의사는 다른 병원으로 가는 게 좋겠다고 했다. 하지만 막달 산모가 전원하기는 쉽지 않은 데다, 특히 수중 분만을 예정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의사가 권한 다른 대학병원은 집과 거리가 있어서 검색 끝에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수중 분만을 도입했다는 동네 병원에 연락했고 다행히 받아주었다. 병원에 24시간 상주하며 아이를 받아주시는 할머니뻘 원장이라 더 마음이 갔다.


# 완벽했던 순간, 기억나지 않는 고통


그날은 정확히 40주 0일, 예정일이었다. '딱 맞춰서 방을 빼려나' 하며 여느 때처럼 아침부터 모니터링을 하고 있었는데 생리통과 비슷한 통증이 슬슬 시작됐다. 주기가 점점 규칙적이어서 병원에 갔더니 아직 멀었다고 해서 다시 집에 와서 대기했다. 식이 제한에 노이로제가 걸렸던 나는 그 와중에도 '정말 오늘이라면 지금 왕창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바로 맥도날드로 향해 치즈버거와 콜라를 와구와구 먹었다. 오후가 되자 진통이 더 심해졌고, 저녁 무렵 입원했다. 나도 남편도 처음이라 걱정돼 미리 얘기해둔 둘라들도 와줬다.


분명히 자궁문이 한 3cm가 열렸다고 했는데 도통 더 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분만 환경은 내가 원하던 대로였다. 조명은 아늑했고, 목이 마를 때 물을 마실 수 있었으며, 힘이 들면 바나나도 먹을 수 있었다. 둘라들은 여러 아로마 오일을 써서 긴장을 완화해주었다. 남편도 감통 마사지에 열심이었다. 둘라들의 입식 마사지 후에 갑자기 진행이 빨라졌고 드디어 따뜻한 물을 받아놓은 욕조에 들어갈 수 있었다. 신기하게도 따뜻한 물에 들어가니 무통주사를 맞지 않았는데도 통증이 줄어드는 느낌이었다. 같이 욕조에 들어간 남편은 땀을 뻘뻘 흘리며 내 호흡과 자세를 도왔다.


의사는 정말 애가 나오기 직전에 나타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실제로 그랬다. 이제 정말 나올 것 같은데 대체 의사는 어디에 있나 하는 생각이 들 때 나타난 할머니 원장은 힘 주라는 말을 두 번 했고 아이는 바로 나왔다. 입원한 지 약 7시간만이었다. 그 순간 든 생각은 '아, 나 이 정도면 정말 우아하게 출산했다'였다. 산소 호흡기의 도움은 잠시 받았지만 정신도 꽤 있었기에 아직 팔딱팔딱 뛰는 탯줄로 연결된 아이를 안고 늘 들려주던 '에델바이스'도 불러줬다. 의사는 출산 체질인 것 같다며, 둘째도 여기서 낳아야겠다고 우스갯소리도 했다.


하지만 역시 넘치는 고통 없는 출산은 없는 건지 이후부터가 지옥이었다. 분명히 자연분만은 선불제, 제왕절개는 후불제랬는데 자연분만도 후불제일 수가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자연주의 출산의 핵심은 분만 시 아기의 '옥시토신 샤워'를 방해할 수 있는 무통주사를 맞지 않는 것인듯 하다. 굳이 회음부 절개와 제모, 관장 같은 안전과 위생을 위한 모든 절차까지 생략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전쟁통에서 한 임산부가 홀로 아이를 낳은 후 숨을 고르고 아이를 안고 다시 유유히 갈 길을 갔다더라'는 책 구절에 꽂혔던 나는 너무 교과서적인 자연주의 출산을 고집했다. 아무 사전 조치도 안 한 데다 아기는 3.6kg가 넘어갔던 탓에 회음부가 여러 갈래로 갈기갈기 찢어졌던 게 가장 타격이 컸다. 마취 주사는 듣질 않았고 여러 갈래로 찢어진 걸 꿰매느라 시간도 오래 걸려 그야 말로 일제시대 고문이라도 당하는 느낌이었다. 너무 고통스러웠는지 사실 기억도 다는 나지 않는다. 의사는 나중에 피가 잘 멈추지 않아 큰일날 뻔 했다고도 했다.


# 모자동실의 짜릿한 추억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병원에 딸린 조리원에 갔는데, 역시 초산모와 경산모의 차이는 컸다. 초산모였던 나는 잘 나오지도 않는 모유수유도 열심히, 쉬엄쉬엄해도 되는 모자동실도 과하게 열심히 했다. 나중에 보니 옆방 경산모는 침대에서 꼼짝도 하지 않은 채 핸드폰 고정 기계까지 갖다 놓고 열심히 넷플릭스를 보는 듯 했다. 그것도 모른 채 나는 첫날 호르몬의 영향으로 "내가 지금 왜 우는지 모르겠다"며 남편을 붙잡고 눈물을 줄줄 흘렸고, 남편이 출근했을 때는 우는 아기를 안고 좌욕을 하느라 진땀을 뺐다. 모유는 통 나오질 않아서 유축 후 모유 수납함에 놓을 때마다 다른 산모들의 젖병을 보고는 주눅이 들었다. 아기는 분만 때 물에서 감염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아구창에 걸려 가슴을 졸였다. 조리원은 하필 또 리모델링 직후라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아서였는지 청소도 시트 갈이도 제대로 되지 않아 더 괴로웠다. 2주 후 퇴소해 집에 왔을 때 너무 자유롭고 기뻤던 기억이 난다. 깨끗하고 쾌적한 집에는 엄마도 산후도우미도 있으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 태어나서 가장 잘한 일


사실 양가에서도 남편도 아이를 낳으라고 독촉한 사람은 없었다. 그럼에도 내가 간절히 아이를 바랐던 이유는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게 인생의 가장 큰 과업 중 하나라는 생각을 늘 했기 때문이다. 결혼을 한 이상 그 과업을 해보지 않는 것은 내 선택지에는 없었다. 남편은 이 얘기를 듣고 지극히 이기적인 생각이라고 했지만 지금도 나는 그 생각에 변함이 없다. 오히려 아이를 얻고 나서 그런 생각은 더 강해졌다.


아들이 없었던 아빠는 거의 내 아들을 당신 아들이라고 생각하는 듯 정말 예뻐한다. 그러면서 내게 종종 "네가 태어나서 제일 잘한 일이 얘를 낳은 것"이라고 한다. 그럴 때 순간적으로 '아니, 내가 태어나서 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라는 반감이 들기도 하지만 생각해보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배우 이하늬가 라디오 캠페인에 출연해 자신이 한 일 중 가장 잘한 일이 출산이었다고 했던 것이 기억 난다. 대략 세상의 어떤 일도 이렇게 완벽한 존재를 태어나게 하진 못했다는 의미였던 것 같다. 지극히 공감한다. 완벽한 임신과 출산, 육아는 없고 완벽한 엄마도 없겠지만 아이만큼은 완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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